#156 해리포터와 마수리의 차이

 

 

밀레니얼인 나의 마음은
정월 대보름 잘 보내셨어요? 입춘도 지나 길어진 해 속에서 다들 분주한 마음인 듯해요. 《한편》 편집부도 ‘대학’ 호를 내놓고 이 모든 대학 이야기를 어떻게 함께 나눌지 이리저리 이야기 중입니다.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면 좋을까요? 인문잡지의 역할은 무엇인지 늘 고민이다가 이번에 새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인터뷰를 읽었는데요. 클래식 음악계에서 당신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피아니스트는 “하고 싶은 역할은 없다. 없었으면 좋겠고……”라고 대답하고, 이에 “천하의 조성진도 ‘MZ 세대’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라는 기자의 평으로 마무리되는 거였어요. MZ란 무엇인가. 아래 책을 또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밀레니얼의 삶에서는 현실에서 모험이나 성장을 이뤄 낸 경험이 부재했다. 국가를 설계하거나, 정치적 아버지를 끌어내리거나, 새로운 협약을 탄생시킨 적이 없었다. 국가와 부모의 통제 아래 ‘자녀’로서만 존재하는 한국 밀레니얼의 삶은 그들 삶을 지배한 대중문화에도 각인되어 있었다. 국가와 부모는 밀레니얼의 유년기에, 어쩌면 성인기까지도 계속해서 펄떡거리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즐겨 본 「해리 포터」 시리즈와 그것을 한국형으로 번안한 「매직키드 마수리」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하다. 해리 포터는 부모가 죽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해리는 삼촌 부부 집에 얹혀 살고 있는데, 해리에게는 ‘방’이 없어서 계단 밑 창고에서 살아간다. 그는 삼촌의 아들이 기념일마다 선물을 받거나 축하받는 동안 소외되고, 중산층 정상 가족 모델에서 박탈감을 느끼고 이탈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마법사임을, 그것도 아주 유명한 마법사임을 알게 된다. 해리는 가족 모델 ‘바깥’에서 적대자와 싸우면서 성장하며, 그에게는 퀴디치 빗자루를 잘 타는 능력과 마법이 있어 ‘자녀’의 상태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해리에게 마법이 주어진 이후 그에게는 더 이상 삼촌 부부마저도 특별히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마법은 충분히 강력하고, 호그와트의 친구들 또한 부모에 기대서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10대 아이인 해리는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직접’ 볼드모트와 싸운다. 7학년제인 호그와트에서 7년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해리는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난다. 이처럼 서양의 ‘모험’ 이야기에서는 부모의 도움 없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청소년 캐릭터를 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고아인 프로도는 삼촌의 보살핌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그가 모험을 떠날 때 그를 지켜 주는 것은 삼촌이 아니라 ‘원정대’의 동료들이다. 그에 반해 ‘밀레니얼의 국민드라마’였던 「매직키드 마수리」나 「요정 컴미」를 떠올릴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구도는 집의 거실이다. 거실에는 으레 소파와 텔레비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부모가 쓰는 안방, 거실과 이어진 부엌,(그리고 큰 식탁에서 모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계단으로 올라가 주로 2층에 있는 주인공의 방이 있다. 우리는 판타지 작품에서조차 ‘혼자 떨어진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집’, 더 정확히 말하면 ‘주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그것은 ‘집’에서 일어난다. 물론 그 집은 주인공의 집이 아니라 부모의 집이다. 2000년대 한국의 가족 시트콤도 동일한 설정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이킥」은 할아버지를 정점으로 구축된 대가족의 틀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고등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조차 주인공의 삼촌이며, 다른 교사(서민정)도 삼촌의 전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하우스메이트다. 여기에서 혈연관계로 이어지지 않은 등장인물은 거의 찾기 힘들다. 주인공의 학교 친구(김범)는 마치 ‘가족’처럼 친구 집을 드나든다.
만약 사회적인 갈등이 가족의 형태로 해석되고 전이될 때, 오늘날 한국처럼 가족 내부에서 또래에 대한 감각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이러한 전이는 결국 부모-자식이라는 수직축의 감각에 따라서 해석된다. 내가 겪는 문제는 나와 또래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부모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고립된 단위로 존재하는 평균 가족 모델이 심화된 상태라면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해도, 그들을 사회문제를 투영하고 함께 고민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88만원세대가 작동하는 배경에는 아이를 가두는 평균적인 가족 모델이 자리한다. 2010년대 세대론이 사회의 문제를 ‘자녀’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전제 속에서는 자녀-취준생-청년에 대한 표상은 과잉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인 차원의 고민이 불가능해진다.
― 강덕구, 「세대론 오페라」,
『밀레니얼의 마음』 151~153쪽 중에서
해리포터와 마수리의 비교 너무 재밌어요. 저자는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밀레니얼들은 또래를 향하지 못하고 부모만을 바라본다고 지적하는데요. 부모 세대, 윗세대,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과, 주변 동년배들을 모두 경쟁자로 괄시하는 마음을 줄리엣 미첼의 『동기간』을 통해 분석하는 마지막 글 「수많은 ‘나’에 관해: 밀레니얼세대의 정신병리」은 뜨끔따끔합니다.
《한편》 ‘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독립 이야기였다면, ‘대학’ 편은 같은 밀레니얼 세대더라도 막상 학력과 직업이 다르고 관점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학교 이야기를 엮었는데요.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서로 차이를 느끼고 부딪치기도 했죠…….
1호와 10호의 만남이라니! 아 다르고 어 다른 편집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호를 통해서 대학이 ‘한국에서 성인 되기’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의 구체적이고 생생하고 서로 다른 형태를 확인했다는 걸 상기하게 돼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청년기 서사”가 지역, 계급, 학력 면에서 편향되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기도 하고요. 대학이라는 문제는 학문과 연구, 학계에 관한 것인 동시에 “차별과 배제”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쉽게 알 수 있잖아요? “새로운 대학 서사를 쓰자”라는 발간사의 목소리가 인상 깊은 가운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의 시작점에서 ‘대학’ 편의 첫 글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가 전해 주는 울림을 나누고 싶어요. “‘학력무관’의 삶”이라는 말에 생각이 오래 머무는데요. 더 많은 “바깥의 사람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학력 차별과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아 가는 투명가방끈의 구체적인 실천에서 대학을 둘러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동력을 발견할 수 있어요.
대학 비진학자, 비대졸자로 살면서 내가 마주하게 된 또 다른 ‘학력무관’의 삶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학력이 그리 중요치 않은 일자리, 출신 학교를 따지지 않는 분야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영역은 역설적으로 학력에 따른 철저한 차별과 배제가 한차례 이루어진 결과다. 몇 년 전 일터에서 겪은 학력 차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학 거부 이후 작은 회사에 취직한 한 회원은 ‘내가 있는 곳은 거의 다 고졸 사원’이라며 일터에서 학력 차별을 별로 경험한 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을 가지 않거나 중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력 학벌 차별 사례조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대졸 이상이라는 조건을 두고 있어서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례도 있고 ‘같은 일을 하는데 대졸자는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고, 대졸자가 아닌 경우에는 하청 업체 비정규직으로 간접 채용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구직을 할 때부터 대졸 미만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와 대학 졸업자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고, 일터에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점점 쉽지 않다. 약한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일수록 불안정한 환경에 살기에 시간도 없고 과로하느라 몸과 마음이 튼튼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안하고 불행한 오늘과 내일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 요즘 투명가방끈은 다양한 계기와 이유로 ‘탈학교’를 선택(당)한 청소년, 대학을 그만둔 사람 등 대학 바깥의 사람들을 비롯해 지방대에 다니는 학생, 학력과 학벌에서 벗어나려는 사람 등 능력주의 질서 바깥의 사람들과 연결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겪는 문제이지만 그중에서도 대학 밖의 이들이 특히 더 부딪히는 주거 문제를 덜어 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있다. 투명가방끈 사회주택팀에서 발전한 ‘다다다 협동조합’ 활동이다. 비진학자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보장하고 이들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려는 시도로 다다다 협동조합은 서울 구로지역에서 ‘DA(다)같이 사는 집’이라는 이름의 1호 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주거 정책의 대상이 주로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라면 이 집의 주요 입주민은 보편적 생애주기에서 벗어난 대학 비진학자, 탈학교·탈가정 청소년이다. 주거 같은 삶의 문제를 협력해 해결하며 보이지 않는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에 학력 차별, 능력주의를 극복할 실마리가 있다.
― 난다,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한편》 10호 ‘대학’중에서
아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애주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한 집 마련하기. 주거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 나날이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와닿습니다. 저는 이런 실천의 바탕인 난다 활동가의 이런 문장도 잊지 못해요. 학력무관의 사회란 “각자가 가진 능력들의 차이가 차별의 조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이 기대고 소통하는 힘이 되는 사회다. 능력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와 사회적 기반 위에서만 발휘될 수 있기에, 우리는 함께 능력을 구성하고 실현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공유할 수 있다.” 차이는 소통의 조건이라는 이 문장에 기대서 낯선 또래들과 만나야겠어요.(솔루션 획득!) 그럼 3월 초에 있을 한편 특별 대담의 초대장을 다음 편지에 보내드릴게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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