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새로운 대학 이야기

 

 

한편 10호 목차 공개
《한편》 10호 ‘대학’과 특별부록이 제작 중입니다. 이른바 일류 대학이라는 한국 사회의 틀에 박힌 이야기의 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학 서사를 쓰자고 제안하는 신간의 미리보기를 보내드려요. 정기구독자 여러분에게 설 연휴 뒤에 발송되는 잡지와 부록입니다. 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바로 정기구독 신청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반 열에 일곱이 대학에 진학한다. 서대 합격생 수를 그해의 성과로 삼는 지방 사립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아침 여덟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매일 열여섯 시간씩 학교에 있었다. 고3의 기억은 월별 모의고사와 월별 도서관 자리 배치표와 문제 풀이의 반복에서 수능 날 저녁 담임 선생님에게 걸려 온 전화로 끝난다. “가채점 몇 점 나왔니?”
나의 경험은 지금 대입을 준비하는 여느 학생과 다르지 않다. ‘일류 대학’이 목표인 아이들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대학 간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어른들의 말에 자유 시간을 유예한다. 이야기의 세부는 학생의 학습 태도와 그때그때의 운, 양육자의 정보력과 사교육비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학군, 좋은 학교 선생님, 좋은 학원과 인강, 좋은 과외 선생님들이 6년 안팎의 시간을 촘촘히 채운다. 스카이, 인서울, 4년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쓰는 다음 편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스펙 쌓기부터 시작된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청년기 서사다. 그 첫 번째 장은 마치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면 승리하는 게임처럼 대학 간판이라는 결과로 승패를 가리는 듯하다. 그런데 현실의 대학 경험은 훨씬 복잡하다. 나는 대학에 못 간 것이 평생 한인 어른을, 일찌감치 대학을 자퇴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사는 동생을, 대학에 가지 않기로 정한 누군가를 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이 저마다 다르듯 20대면 누구나 다 간다는 대학 이야기의 속사정은 수만 가지일 수밖에 없다. 권위가 무너진 대학 너머에 어른거리는 후광을 보며 나는 알고 싶었다. 오늘의 대학에서 우리가 잃은 것과 앞으로 얻을 것은 무엇인가?
─ 맹미선, 「새로운 대학 서사를 쓰자」
《한편》 ‘대학’ 10호를 펴내며 중에서
‘대학’은 특히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어요. 인문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대학 사람들은 영원한 협업자인데요. 내가 다녔던 대학, 동료가 다니는 대학원, 저자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이제 와 어떤 관점을 세워야 할지가 헷갈렸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겪는 입시 지옥과 대학 구성원을 누르는 실적 압박을 생각하자면 비판해야 마땅한데, 우리의 지면을 채우는 지식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대학에서 보증받기도 하니까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대학원에 가지 않은 편집자는 전문성을 어떻게 확립하고 인정받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저의 꿈은 《한편》 자체가 모두에게 열린 대학으로 다가가는 것이지만 말이에요.
‘공부하는 일’은 인문사회 출판 현장에서 만난 저자와 편집자의 공부 이야기입니다. 그냥 공부라고만 하면 막연하고 부담스러우니까 차라리 일을 덧붙였어요. 일하기 위해 공부하고, 공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거든요. 그중에서도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했던 연구자들을 만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캐물었습니다.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고, 내가 속한 곳의 고유명사를 언급해야 한다는 《한편》의 편집 방향을 인터뷰에서도 관철했는데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에 반대해 출신 대학을 밝히지 않는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2023년 시점에서는 실제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는 게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연구자 김선기, 《에피》 편집위원 강연실, 《교차》 편집자 남수빈, 정치학 연구자 조무원,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김아미, 교통·철학 연구자 전현우 여섯 사람을 인터뷰습니다. 김세영, 맹미선 편집자 또한 자기 이야기를 꺼내서 진솔하고 아낌
없는 답변으로 보답받았는데요. 내용이 때로 너무 학술적이거나 이상적이라면 편집자들이 쓰는 다음 방법처럼 독자 의견을 전해 주세요. 공부에 관해서는 모르면 더 물어보자, 일에 관해서는 무르면 더 요구하자……. 대학 안에서든 밖에서든 공부하는 일은 끝날 수 없으니까요.
─ 신새벽, 「들어가는 이야기」
《한편》 ‘대학’ 특별부록 『공부하는 일』 중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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