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레터인 거 아세요? 매주 수요일 보내드린 레터가 이제 150통째. 2022년의 마지막 주는 홀가분하게 옛 시 몇 편을 읽으며 보내면 어떨까요. 매년 선보이는 민음사 인생일력 중 이런 구절처럼요. “내달려 가는 세월이여, 훌훌 해가 저물었네.”(정약용 「가는 세월」)
정약용은 구도자다.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온 뒤 4언시 「가는 세월(徂年)」을 지어 스스로의 허물을 반성했다. 이 시의 소서(小序)에서 그는 “‘가는 세월’이란 늙음을 애석히 여긴 것이다. 허물과 후회가 깊이 쌓이기만 하고 선으로 옮아갈 날은 남아 있지 않기에, 근심스레 스스로 애도하고 벗에게 불쌍히 여겨 주길 바라는 바다.”라고 했다. 모두 3장이고, 장마다 12구로 되어 있다. 첫 장만 보면 이러하다.
내달려 가는 세월이여 훌훌 해가 저물었네. 눈과 얼음 켜로 쌓여 평지를 막았구나. 총각 때 명성 있더니 흰머리에는 명예 없어라. 저녁에도 잘못 저지르니 아침에 어찌 깨달았으랴.
깨닫고도 고치지 않음은 진흙에다 진흙 더함이라. 저 어진 선비를 생각노라 가서 진정으로 하소하리라.
『시경』 「소아 각궁(角弓)」 편에 “원숭이에게 나무 올라가는 법을 가르치지 말라, 진흙에다 진흙을 더하는 셈이다(毋敎猱升木, 如塗塗附)”라고 했다. 원숭이에게 나무 올라가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착하지 못하다고 가르칠 것도 없다. 왜냐하면 가르친다는 것은 더러운 진흙에다 진흙을 바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란 것이다.
정약용은 이 시에서 과거를 뉘우치며 마음 아파했다. 늘그막에 찾아드는 막연한 뉘우침은 아닌 듯하다. 나라에 죄를 얻었던 사실을 정치적 관점에서 포장해서 후회한다고 말한 것도 아닌 듯하다. 벗님에게조차 하소할 수 없을 절절한 그 뉘우침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 심경호, 『내면기행: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중에서
심경호 선생님의 해설에 따르면 정약용의 시에서 아쉬워한 건 훌훌 내달려 가는 세월만이 아니라 “벗님에게조차 하소할 수 없을 절절한 그 뉘우침”이었네요. 무거워지는 마음. 한편 같은 ‘기행 연작’인 『산문기행』을 펼치면 벗이 없더라도 혼자 즐겁게 노니는 다채로운 방법이 나와요. 한겨울에 꽃을 보는 시도 좋겠죠.
김수증은 때때로 산수 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엿보고 환희했다. 연작시의 제28수를 보면 『주역』에서 말한 “사물들이 서로 바라보고 조화를 느낀다.”라는 사상이 담겨 있다.
비 그치고 개어서 또한 좋아서 만물이 모두 우줄우줄 즐겁다. 높은 버드나무에선 친근한 새가 울고 산골 물에는 여린 풀이 향기롭기에, 꽃을 찾아 바윗길을 오르고
물고기 보러 물가 여울에 임하네. 외론 지팡이로 한 골짜기에 살면서 애오라지 아침저녁을 보내련다.
곡운과 화음동은 김수증 이후 노론계 지식인에게 귀거래의 이상향을 상징했다. 송시열은 생전에 곡운과 화음동을 예찬한 글을 여럿 남겼다. 화음동은 송시열이 강학하던 청주 화양동에 견주어진다.
─ 심경호, 『산문기행:
산에 오르며 내면을 채우는 조선 선비의 산행기 65편』 중에서
이상향을 어디 먼 데가 아니라 자기가 깃들어 사는 초가집 뒷산으로 삼은 게 소박한데요. 평자의 표현처럼 소박한 ‘환희’가 담긴 시네요. 이 소박한 환희를 선사하는 가장 가까운 예로 역시 옛 시의 주요 주제인 술타령이 나와야겠는데요. 연말 주취사고가 곳곳에서 보고되는 가운데 오늘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시를 띄우겠습니다.
왕창령, 이 창조의 집에서 밤에 술을 마시며
늦가을 붙잡고 술 마시며 옛정을 나누니 은 촛대 금 화로 있어 밤이라도 춥지 않네. 오강*과 이별하는 마음이 어떤지 묻는다면 푸른 산 밝은 달빛을 꿈속에서 보겠다 하리라.
*오강(吳江)은 소주(蘇州)에서 상해(上海)로 흘러가는 오송강(吳淞江)으로 진(晉)의 장한(張翰)이 낙양에 들어가 벼슬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와 오강의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던 고사가 있다.
깊어 가는 가을날 벗과 어울려 기쁜 마음으로 정담을 나누며 술을 마신다. 촛불과 화로가 곁에 있어 춥지 않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벗과의 정담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 것이다. 이런 곳이기에 차마 잊지 못하고 꿈속에서도 고향 오강의 푸른 산과 맑은 달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이 구절로 보아 756년 무렵 강녕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 이종묵,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 중에서
저는 이 당시 한 수에서 은 촛대 금 화로의 화려함도 눈에 들지만, 벗과 이별하는 심경을 묻자 꿈속에서 “푸른 산 밝은 달빛”을 보리라고 선명한 색으로 답하는 게 마음에 남네요. 조선 사람들도 이 시를 좋아했대요. 따다 쓰고 이어 쓴 조선 사람들의 몇 수를 마지막으로 띄워 보냅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벗과의 이별 떠올리니 남녘 강에 가을 다할 때였지. 푸른 산은 양 언덕에 아득한데 밝은 달은 온 하늘에 차가웠지. 희미한 그 당시의 일은 가물가물 어젯밤 꿈에서 본 듯. 다시 만날 기약은 묻지 마세 술 있으니 자네와 실컷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