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탐구로 이어지는 탐구

 

 

민음사 동계 학술대회의 뜨거운 현장
12월 15~16일 이틀 동안 민음사 동계 학술대회가 열렸어요. 탐구 5종의 저자가 모두 모인 자리! 탐구 시리즈와 함께 한국의 문제를 이해하고 세계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는데요. 정치학 연구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까지, 기후위기의 철학에서 재난 대응을 탐구하는 환경사회학까지 이야기가 겹쳐지고 이어졌답니다. 뜨거웠던 민음사 스튜디오의 현장을 보여 드려요.
학술대회 첫째 날의 테마는 ‘한국의 문제 이해하기’였어요. 정치학자 조무원 선생님의 『우리를 바꾸는 우리』를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을 쓴 평론가 윤아랑 선생님과,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김아미 선생님의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을 《한편》 6회 ‘권위’에 「당신을 위한 문해력」을 쓴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박유신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학술대회 1일차 라운드 테이블 현장입니다.
질문 중인 신새벽 편집자 쪽으로 조무원, 김아미 연구자의 시선 집중!
미디어 환경을 탐구하는 김아미 선생님은 온라인에 ‘노 키즈 존’을 만들지 말고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온라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자고 말해요. 또 급변하는 미디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어린이들인 만큼, 어린이들에게 ‘결핍된’ 문해력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정치와 약속을 탐구하는 『우리를 바꾸는 우리』에서는 「오징어 게임」 속 생존 게임이 ‘인위적 자연상태’라고 분석합니다. 완전히 질서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개인들이 대화할 수 없도록 설계된 인위적인 상태라는 거죠.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은 각자도생하도록 만들어진 온라인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름의 원칙들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김아미 선생님은 그렇게 쌓아 올린 어린이들의 지식을 어른들이 듣고, 그것들을 반영한 온라인 환경에서의 원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김아미 선생님은 어린이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와의 대화를 통해 길어 올린 지식의 보고라 할 수 있겠네요.

과연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온라인 세상이 한창 자신을 찾아 나가고, 시행착오를 겪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성장하는 어린이 청소년에게 친화적인 공간일까요. 성인을 주요 이용자로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어린이 청소년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안전장치는 너무 부족하지 않나요. 나와 소통하던 온라인 지인이 알고 보니 어린이거나 어린 청소년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간의 행동을 돌아보게 될까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온라인 세상이 어린이 청소년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 ‘탐구하는 생활’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김아미의
10문 10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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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와 결핍의 연관 이야기가 너무 와닿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이 굉장히 많네요!!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온라인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요? 조무원 선생님은 우리가 새로운 약속을 맺으며 우리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해요. 그런데 어른과 어린이가 동등하게 마주 서서 약속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잼민이’ 같은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온라인 환경에서 말이에요. 

 

서로 다른 개인들이 자연상태에 이르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요?

 

독자 질문에 조무원 선생님은 좌중을 술렁이게 한 답을 주셨는데요. 바로 모두가 벽돌을 들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벽돌을 들고 있다면 아무리 힘센 어른이라도 잠든 사이에 공격당할 수 있지요. 이렇게 공포스럽고 외로운 상황에서 우리는 벽돌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나눠 보자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되기로 약속하는 거지요.

 

이런저런 것들을 지키자고 약속하는 일은 우리가 동등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에요.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른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릴 테니까요.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의 본질이 힘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지금 내가 놓인 상황이 정당하지 않다는 데 있다면, ‘아니오! 약속을 다시 맺읍시다.’ 혹은 ‘약속한 것을 내어놓아라!’ 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분명 그 이후를 이전과 같지 않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집에 돌아와 조용히 혼자 생각할 때면 찝찝하고 뭔가 바보가 되는 기분. “내가 사실은 동의하지 않았던 목록”을 작성해 보고 가정과 일터에서, 친구와 동료 사이에서 그 목록을 공유하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런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 같기도 합니다. 타자와 대화를 시도한다면 자연상태가 도래하지 않도록 물론 심대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 ‘탐구하는 생활’ 정치학 연구자 조무원
10문 10답 중에서
『우리를 바꾸는 우리』는 정치와 약속에 대한 탐구인 동시에 17세기의 중요한 사상가인 홉스를 직접 읽어 보자는 제안이기도 한데요. 이 책은 개인이 만나서 약속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민주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리바이어던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던 홉스의 이중적인 면모를 흥미진진하게 해석해 내고 있어요. 말로만 들었던 홉스…… 궁금하신 분들은 『우리를 바꾸는 우리』를 읽고 자신만의 벽돌을 쥐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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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더 듣고 싶어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엔 문학적 감성과 철학이 부족해요……

벽돌 잘 얻어 갑니다!

학술대회 두 번째 날에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 선생님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철학책 독서 모임』의 박동수 편집자님과 함께 읽어 봤어요. 내년 상반기에 탐구 시리즈로 출간될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 선생님의 ‘재난 대응 탐구’에 대해 《한편》 3호 ‘환상’에 「포스트 코로나라는 상상」을 써 주신 맹미선 편집자님과 함께 이야기했고요.
2일차 라운드 테이블에서 열띤 대화 중인 박진영, 전현우 연구자
기후위기 시대의 철학책인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자동차화’라는 말을 ‘자동차 지배’라고 바꿔 부르자고 제안해요. 우리의 걷기 공간이 자동차에 ‘납치’되었다고 분석하고요. 신도시에서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길부터 도시 외곽의 마트에 가는 일까지 자동차가 없어서는 안 되는 현실, 삶 깊숙이 자동차가 들어와 있는 상황을 포착해 내기에 ‘자동차화’보다 더 정확한 개념을 던져 놓은 거예요.
자동차와 비행기로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바로 그것들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어요. 전현우 선생님은 이를 ‘이동의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수 있을까요? 현실을 달리 보는 형이상학과 새로운 인식론, 그 현실을 바꿔 나갈 윤리학까지를 아우르는 기후위기 시대의 철학이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에 들어 있답니다.

 

이 책에서 나는 기후위기 시대의 철학을 시도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고, 이 존재자를 알아보는 방법, 이 존재자의 가치를 현실에 구현할 방법까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존재자의 도입을 형이상학, 이들을 알아보는 방법을 인식론, 가치를 구현할 실천법을 윤리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런 총체적인 시도에 관심이 있다면 그는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득 시도는 수사적으로도 적중해야 한다.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다가 날이 새거나, 문제의 존재자를 확인하기 어렵다거나, 가치가 모호해 보인다면 갈 길 바쁜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로 떠나가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괜히 끌려왔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하기란 욕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기후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후 문제는 21세기의 남은 시간 동안 수습해야 하며 그다음 수백 년 이상 관리해야 할 우리 행성의 문제다. 나는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문제가 철학사를 지배했던 몇몇 문제만큼이나 무수한 방식으로 변주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 속에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출장길까지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 전현우,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들어가며’에서
한편 환경재난과 이에 대한 대응을 연구하는 박진영 선생님은 오래 연구해 온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느린 재난’이라고 말해요. 눈에 보이는 사고가 있었던 게 아니라 마트 진열대에 아무렇지 않게 놓인 독성물질이 조용하고 빠르게 퍼져 나갔고, 오랜 시간 동안 점차 피해가 커져 갔어요. 참사의 원인을 파악하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고요.
피해의 규모가 크고 그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데도 오래 걸렸던 재난인 만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다’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실제로 재난에 따른 피해에는 우연이 작용하지만,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에서 말하듯 “우연에만 의존해서는 대형 사고를 마주한 사람들의 비감을 설명하기 어렵”겠죠. 재난을 마주하는 연구자에 태도에 대해 박진영 선생님이 학술대회 때 낭독해 주었던 서문을 통해 알아 봐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익숙한 문구를 소환하는 재난 사례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다시 생각해보고 내 선에서 그 안전망을 촘촘하게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있다면 한번 해보자는 것에 가깝다. 어떤 특별한 사명감이나 정의감이 아닌 내가, 내 주변이, 우리 동네가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감각, 만에 하나 피해를 보게 되더라도 내가 속한 이곳이 피해자의 경험에 귀 기울이고 충분히 조사하길 바라는 평범한 마음이 환경재난이라는 문제를 더 들여다보게 한다. 환경재난과 피해를 더 떠들썩하게 말하자. 그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참사 없이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환경재난을 보고 듣고 읽고 쓴다.

─ 박진영,
‘재난 대응 탐구’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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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도 아기를 재운 방에 가습기를 틀어 놨는데……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이라는 말이 많이 와닿아요!!

 

 

기후위기 역시 느린 재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현우 선생님과 박진영 선생님이 만난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철학과 환경사회학의 웅장한 만남이 이루어졌어요. 위의 질문에 대해 전현우 선생님은 기후위기 역시 ‘천년을 내다 보아야 하는’ 느린 재난이라고 답변했어요. 현실 문제의 가장 거대한 축을 찾아내고 새롭게 이름 붙이는 철학과 재난을 둘러싼 행위자들을 파헤치며 이들 사이의 갈등을 들여다보는 사회학이 강렬한 시너지를 낸 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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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연결된 인문학이 더 튼튼하다!철학과 사회학과 인류학을 어떻게 연결할까? 학문들 간의 연결이 서로가 서로의 방법론에 폐쇄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 같아요.
위기는 일상 도처에 있고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적 감각을 통해 느슨하지만 연결된 감각을 갖는 인식론이 느린 위기/재난을 대처하는 자연스러운 윤리학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지……

 

 

짧은 휴식 시간 박동수 편집자, 전현우 연구자. 쫙 펼친 손바닥의 의미는 무엇일지?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학술 대회가 끝난 뒤 활짝 웃는 박진영, 전현우 연구자의 모습도 보내 드려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동계 학술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학술대회 이후 근 반년 동안 실물 책이 여섯 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네요……. 제게 이번 행사는 ‘탐구’의 저자, 《한편》의 필자 분들을 연결해 연구자의 시선에서 책의 의미를 새로 짚어 볼 수 있어 각별한 시간이었어요. 한국의 문제, 세계의 위기라는 거대한 키워드에 각자의 탐구 주제를 가진 여덟 명의 참가자라니. ‘충분히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틀도 짧다!’라는 느낌일까요.
저는 박진영 연구자가 준비 중인 ‘재난 대응 탐구’의 편집자이자 《한편》 3호 ‘환상’의 필자로서 여러분 앞에 나섰는데요. 화학 제품인 가습기살균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미생물은 분명 그 탄생 배경은 다르지만 더는 이런 거대한 문제를 ‘인간 대 자연’의 구분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참조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인류가 우리 자신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만한 비인간 존재의 탄생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비인간 존재와의 적절한 상호작용을 위한 대비책을 그때그때 복잡한 주체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점은 전현우 연구자를 비롯한 우리 현대인들의 화두인 기후위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특징이지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 포항 지진 등 최근 10년 사이 벌어진 재난의 여파가 쉬이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런 세계의 위기를 인간, 환경, 물질, 지식 등이 총체적으로 얽힌 현상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학술대회를 온라인으로 참관했지만 미처 코멘트를 남기지 못했던 분이 계시다면 어떤 생각을 갖고 가셨을지 궁금합니다. 이 레터를 읽으며 ‘나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고 생각한 분이라면 이제는 책을 통해 내 고민과의 같고 다른 점을 확인해 보실 수 있겠어요.
만났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출발하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학술대회가 무사히 마무리되어 기뻐요. 생각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던 여러 탐구들! 학술대회 때 나왔던 여러 질문들을 이어 갈 자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어요.
탐구 시리즈가 궁금했던 독자분들에게 이번 학술대회가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3종 중 평소 내가 가진 질문과 가장 가까운 한 권을 먼저 집어 들고, 그 탐구를 디딤돌 삼아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탐구로 나아가 보면 어떨까요?
민음사
1p@minum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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