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에세이의 원조!

 

 

《한편》을 같이 읽어요! 지난 주 보내 드린 설문조사에 책을 볼 때 ‘소장’, ‘대여’, ‘구독’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묻는 문항이 있었지요. (아직 설문조사 안 한 사람 여기여기모여라) 그중 소장한다는 답변이 다수를 차지했어요. 저도 책더미 사이에서 허덕이지만 굳건한 ‘소장’파인데요. 비용과 공간의 압박이 있지만 책을 사 두면 뿌듯하고, 마음대로 밑줄도 칠 수 있죠!
오늘은 어쩐지 대여나 구독보다는 소장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려요. 세 권 통틀어 2000여 쪽에 달하는 몽테뉴의 『에세』인데요. 담당 편집자님이 “하루 15분씩 연필로 밑줄을 그어 가며 읽어 보세요. 뜻밖의 문장에서 언뜻 떠오른 고민의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답니다.” 하고 은근슬쩍 소장을 권유한 책! 에세이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몽테뉴의 『에세』를 소개해 드려요.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몽테뉴는 서른여덟 살에 공직에서 물러나 몽테뉴 성 서재에 칩거해 죽기 전까지 107편의 글을 집필했다고 해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7년째 이것들을 묶어 ‘에세’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요. 에세(essai)는 ‘시험하다’, ‘경험하다’, ‘처음 해 보다’ 등을 뜻하는 동사 ‘에세이예(essayer)’에서 몽테뉴가 만들어낸 명사로, 오늘날 글쓰기 장르인 ‘에세이’의 기원이 됩니다.

독자에게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진솔하게 쓴 것이다. 처음부터 내 집안에만 관련된 사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없었음을 밝혀 둔다. 그대를 위해서나 내 영광을 위해서 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역량은 그런 계획을 세울 만하지 못하다. 나는 그저 내 집안사람들과 친구들을 위해, 내가 세상을 떠난 뒤(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니) 내 처신이나 성격의 특징들을 여기서 찾아보며 그렇게 해서 그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더 온전하고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게 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호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나를 더 잘 장식하고 공들여 제시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여기서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보통 때의 내 모습을 봐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그려 보이는 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공공에 대한 예의가 내게 허락했던 한에서, 내 결점이며 생긴 그대로의 내 모양이 여기서 읽힐 것이다. 여전히 대자연의 원초적인 규범 아래 아늑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저쪽 나라들에서 태어났다면 장담컨대 나는 정녕 기꺼이 나를 통째로 적나라하게 그렸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여,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않다.


그럼 안녕, 몽테뉴로부터,
1580년 3월 1일

 

 

―미셸 드 몽테뉴, 심민화 ·최권행 옮김,

『에세』 1권, 35~36쪽에서

“나 자신을 재료로” “진솔하게 쓴” 책. 어젯밤 연필을 들고 읽다가 몽테뉴의 진솔함에 쿡쿡 웃었던 부분을 소개해 드려요. 기억력이 끔찍하기로는 빠질 수 없다고 말하는 몽테뉴가 자신에 대한 친구들의 비난이 왜 부당한지 항변하는 내용이에요. 그럼에도 기억력 부족에는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으며, “생각보다 기억을 더 잘한다는 것은 안된 일이다.”라고도 덧붙이고 있네요
본문에서 A가 처음 출판된 버전, B가 1588년 추가로 첨가된 부분, C는 몽테뉴가 소장하고 있던 1588년판에 수기로 첨언한 부분이라는 걸 생각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어요.

9장 거짓말쟁이들에 관하여

 

A기억력에 대한 이야기에 끼어들기에 나보다 더 적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게서는 기억력의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이며 그 심각한 처지가 나만큼 끔찍할 정도인 사람을 찾기도 어려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다른 능력은 어느 것이라 할 것 없이 모자라거나 남과 비슷하지만, 기억력만은 내가 유별나고 희귀한 경우여서 그 점에서는 가히 이름을 얻고 명성을 떨칠 만하다고 생각한다.

B 기억력 부족으로 내가 겪는 불편함이 적지 않은 것 말고도 — C 기억력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플라톤이 그것을 위대하고 강력한 여신으로 부른 것도 옳은 일이다.— B 우리 지방에서는 누군가가 분별력이 없다는 말을 하려면 그 사람의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말하는 까닭에, 내가 나 자신의 기억력 부족을 한탄하면 사람들은 나를 나무라며 못 믿겠다고 한다. 내가 나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기억력과 이해력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를 훨씬 더 불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부당하다. 경험에 비춰 보면 오히려 빼어난 기억력이 한심한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 무엇보다 친구 노릇을 제일 잘하는 나인데, 내 병을 자책하는 바로 그 말을 내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대단히 부당하다. 기억력이 없는 것을 가지고 그들은 내 마음가짐을 비난하며, 타고난 결점을 가지고 양심이 삐뚤어졌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 사람 이런 부탁, 저런 약속을 잊어버렸어.” “그 사람 자기 친구들을 전혀 기억 못 해. 그 사람 나를 위해 이 말 하는 걸, 이 일 하는 걸, 이 말 하지 말아야 할 걸 전혀 생각 못 했어.” 하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확실히 쉽게 잊곤 한다. 그러나 친구가 맡긴 일을 소홀히 하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가련한 내 처지를 받아 주어야지, 그걸 악의로 여겨서는, 더구나 내 기질과는 상극인 그런 악의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래도 나로서는 좀 위안되는 것이 있다. 첫째로 C 나의 그런 약점 덕에 쉽게 빠져들 수도 있었을 잘못, 즉 야심이라는 더 나쁜 결점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세상 일로 타협과 교섭을 맡게 된 자에게 기억력 부족은 견딜 수 없는 결점이기 때문이다. 또 자연이 하는 일에서 보이는 몇 가지 비슷한 사례가 이야기해 주듯, 자연은 내게 기억력이 희미해져 가는 정도만큼 다른 능력들은 일부러 더 강화해 놓았다. 기억력 덕분에 남들의 착상과 견해가 또렷이 생각났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그러듯이, 나 자신의 정신과 판단력이 가진 힘을 써 볼 생각도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자취를 따라가기만 하면서 내 정신과 판단력은 편히 쉬고 늘어지게 놔두었을 것이다. B 기억력이 부족하다 보니 내가 하는 말은 더욱 짧아지는데, 기억의 창고는 생각의 창고보다 늘 물건이 더 많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C 만약 내 기억력이 좋았다면 내 친구 모두를 온갖 수다로 귀가 먹먹하게 만들어 놓았으리라. 이야깃거리를 다루고 써먹는 재주야 타고났으니, 무궁한 소재가 이 재주를 깨어나게 해 내 이야기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이리저리 사방으로 끌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미셸 드 몽테뉴, 심민화 ·최권행 옮김,

『에세』 1권, 83~91쪽에서

 

 

 

 

끝까지 보고 싶은 편집자님이 소개해 준 9장을 보며 저도 피식피식 웃음이 났어요. ‘나는 기억력이 부족합니다.’를 이렇게 재미있고 솔직하게 표현하다니! 몽테뉴는 “가련한 내 처지를 받아 주어야지, 그걸 악의로 여겨서는, 더구나 내 기질과는 상극인 그런 악의로 여겨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을 과연 어떤 표정으로 써 내려갔을까요?
전부터 『에세』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던 저는 1장부터 차례로 독파하기보다 눈길을 끄는 주제를 하나씩 뽑아 읽는 독법을 택했어요. ‘외모’ 편 청탁을 고민 중인 오늘은 1권 36장 「옷 입는 풍습에 관하여」와 3권 12장 「외모에 관하여」를 읽었는데요. 앞의 장은 한겨울에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면서도 기운찬 거지의 말(“나리, 나리도 얼굴은 내놓고 계시잖아요. 나는 온몸이 얼굴인 거죠.”)을 스치며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있었다면, 뒤의 장에서는 뜻밖의 영혼과 외모와 전쟁과 지병 이야기를 만나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했답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인물의 솔직함과 마주하며 ‘정말 사람 사는 게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신기해요. 이러한 공감 포인트가 “자기 안에서 인간 정신의 잡다함과 유동성을, 인간 감각과 이성의 허술함과 편파성을 발견하고, 그 한계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인식”(15쪽)하려 한 몽테뉴의 시도가 아니었나 싶네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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