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두 손 가볍게 떠나기

 

 

어디에도 매이지 않기란 가능할까?
안녕하세요? 만약 중독이 무언가에 끊임없이 얽매여 있는 상태라면, 그 반대의 상태는 무엇일지 생각해 볼까요?
오늘 같이 읽어 볼 책의 한 대목은 완벽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최소한의 짐만 싸서 훌쩍 여행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예요. 과연 놓여남은 가능할까요? 내가 사는 곳, 쓰는 물건, 일상, 나 자신의 성격 등으로부터요. 무민의 작가로 잘 알려진 토베 얀손의 아주 짧은 단편 소설 「두 손 가벼운 여행」입니다. 
배가 드디어 잔교를 빠져나갈 때 나의 마음에 밀려오는 안도감을 묘사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그때다. 아니 불러도 소용없을 만큼 배가 멀리 떨어진 다음에…… 아무도 내 주소를 물어볼 수도,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소리를 칠 수도 없을 때…… 사실 여러분은 내가 느끼는 어지러울 정도의 해방감을 상상할 수 없다.
세상에 둘도 없이 최고로 마음 편한 관광객처럼 난간에 기대어 섰다. 맑은 하늘의 작은 구름들은 장난스럽고 기분 좋게 무질서해 보였다. 모든 것이 멀어졌고, 지나갔고, 아무 의미도 없었다. 더 이상 아무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전화도 편지도 초인종도 없다. 써야 하는 편지들도 다 썼다. 사실 나는 이미 그 전날 편지를 다 쓰고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고 알렸다. 설명도 하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든 나의 행동에 대해 해명하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걸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밝히지 않았고, 내가 돌아올 시점을 암시하지도 않았다.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으니까. 건물 관리인의 부인이 집 안의 식물들을 맡아 주었다. 어떻게 다루어도 잘 자라지 않고 지쳐 보이는 식물들이 슬슬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제 뭐,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는 식물들이었다.
여러분은 내가 짐에 무엇을 넣었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최소한만 챙기는 거다! 짐이 가벼운 여행은 언제나 내 꿈이었다. 신경 안 쓴 듯이 손에 달랑 들 수 있는, 공항 출국장 같은 데서 무거운 가방을 끌고 초조해하는 사람들을 서두르지 않고도 빨리 걸어서 추월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가방. 이제야 처음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가지고 가는 데 성공했다. 우리 집안의 보물이나 누군가를 기억하게 해 주는 사랑스러운 소품들, 감정적인 인생의 조각들 때문에 주저하지도 않았다. 아니, 이런 것에 가장 마음을 덜 썼다.
나는 어떠한 부탁도 하지 않고 집을 떠났지만 청소는 했다. 아주 꼼꼼하게. 나는 청소를 잘한다. 끝으로 전기를 끄고 냉장고를 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전화선을 뽑고 나니 다 끝났다. 그러는 내내 전화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좋은 징표다. 하나도, 이런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 하지만 나는 지금 전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은 한순간도 그쪽을 향하지 않는다.
하여튼 나는 전화선을 뽑고 여권, 티켓, 여행자 수표, 은퇴자 카드 같은 중요한 서류를 다 챙겼는지 지갑도 확인한 다음, 모퉁이의 택시 정류장에 택시들이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밖을 내다본 뒤 문을 잠그고 편지 구멍을 통해 열쇠를 안으로 던졌다. 오랜 습관대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4층에서 발을 헛디디고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잠시 그대로 서 있었는데, 갑자기 몸 전체가 뜨겁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시라. 내가 정말로 넘어져서 발을 삐거나 더한 사고를 당한다면 모든 게 영영 돌이킬 수 없는 헛일이 될 뻔했다. 다시 준비를 하고 마음을 다잡아 떠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온통 들뜬 나는 택시에서 기사와 열띤 대화를 했지만, 그의 대답은 짧았고 나도 자제했다. 바로 이런 걸 그만하기로 작정한 게 아닌가. 이 순간부터 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다.
─ 토베 얀손, 안미란 옮김, 「두 손 가벼운 여행」,
『두 손 가벼운 여행』, 77~79쪽에서
 “사실 여러분은 내가 느끼는 어지러울 정도의 해방감을 상상할 수 없다.”라는 말이 마음 깊이 들어와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네요. 저는 예전에 무언가에 지독하게 얽매여 봤어요. 그리고 그걸 놓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나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는 출발하자마자 후회했어요. 왜 진작 떠나지 않았을까? SNS를 한 번도 열지 않은 채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여행은 ‘어지러울 정도’의 해방감을 가져다주었어요.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지만, 정말 살면서 느껴본 적 없던 최고의 자유를 맛보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언가로부터 얽매여 있는 상황을 벗어난다는 건, 다르게 말해 얽매임 속에 있는 안락함을 버리고 떠나야 하거든요. 하지만 그 잠깐의 두려움과 안락함을 이겨내고 떠나오니 “세상에 둘도 없이 최고로 마음 편한 관광객”으로 더없는 행복감을 느껴 볼 수 있었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도 무언가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면! 한 번쯤은 뒤돌아보지 말고 자유와 해방을 찾아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스마트폰으로 메일과 메신저,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 실행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화선을 뽑으며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이 부럽습니다.
저는 요즘 긴 휴가를 앞두고 있어요. 이 책을 휘리릭 읽다가 눈에 들어온 건 “전화도 편지도 초인종도 없다. 써야 하는 편지들도 다 썼다. (……) 하루 종일 걸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요. 저도 휴가를 가기 전 제 사정에 대한 편지도 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도 해야 하는데 아직 거의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결국 써야 하는 편지를 다 써 내고야 마는 주인공의 기질에서 뭔가가 느껴지지 않나요?
화자가 한마디로 표현하는 자기 성격: “나는 청소를 잘한다.” 꺄아아 저도 언젠가 기차 여행길에서 가벼운 이 책 『두 손 가벼운 여행』을 읽었는데, “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다.”고 거듭해 말하는 주인공의 여정에 지쳐서 책을 덮고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나요.
오늘 한편의 편지는 긴 휴가를 앞둔 노란 고양이 편집자 님의 인사 편지 중 하나인 셈이네요. 역시 여행길에서 쓴 허균의 글도 같이 보실래요? 홀홀 떠난 여행에서는 꼭 두고 온 사람들과 지난 일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산 중의 산 금강산에 유람 가서 먼 데 있는 벗을 그리는 마음이 정답고 슬퍼요.
서울에 있을 때 형이 강도(江都)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 보니, 내가 벼슬 잃은 것을 위로한 내용이었소. 이때 나는 이미 수레를 채비해서 도성 문을 나선 참이라, 심부름 온 하인이 두고 가겠다고 하기에 경황없는 중에 답장을 미처 하지 못했소. 게을리 늑장을 부린 죄를 어찌 피하겠소.
집을 떠난 지 이틀 만에 김정경(金正卿)의 영평(永平) 별장에 도착했소. 시내와 골짜기와 산의 아름다움은 예전 못지않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허물어진 건물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은 점이었소. 방으로 들어서자 진한 술이 동이에 가득한데 향의(香蟻, 술독 위에 뜬 쌀알을 벌레에 비유한 표현)가 굼실굼실해서, 형을 데려다가 큰 술잔으로 권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웠다오.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군침을 흘리겠지요. 지금까지도 성벽에는 최경창(崔慶昌)과 허봉(許篈)의 시가 남아 있는데 맑고도 상큼해서 읊조릴 만했소. 또 이안눌(李安訥)의 시도 있더군요. 하지만 길이 바빠 화운하지는 못했소.
비를 만나 통구(通溝)에서 자고 단발령(斷髮嶺)을 넘었지요. 멀리 일만 이천 봉을 바라보니, 에워싼 봉우리들이 손을 모아 읍하며 마치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듯하여 유람의 흥취가 절로 솟구침을 금할 수가 없었다오. 말을 재촉해서 장안사(長安寺)로 들어가니 날은 이미 저물고 말았소.
승려 도관(道觀)이 호남에서 왔다는데, 자못 글을 아는지라 함께 대화하기가 아주 좋았소. 이튿날 아침 일찍 그를 데리고 시왕백천동(十王百川洞)으로 들어갔소. 가파른 바위는 삐죽 솟고 땅은 온통 돌인 데다, 물은 솟구쳐 쏟아져 부딪치고 단풍과 노송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빼곡하였소. 십오 리를 가서야 영원(靈源)에 당도하여 거기서 하루를 묵었소.
새벽에 망고대(望高臺)를 향하는데, 골짜기는 좁고 벼랑은 깎아지른 듯해서 쇠줄을 더위잡고서야 겨우 오를 수 있었소. 송라(松蘿) 그늘 아래서 잠깐 쉬다가 마침내 만폭동으로 들어갔다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쓴 여덟 자의 큰 글씨를 감상하니, 붓의 기세가 마치 날고 뛰는 것만 같아서 이 산과 더불어 자웅을 다툴 만했소. 되돌아 명연(鳴淵)에 이르고, 저녁에는 표훈사(表訓寺)에서 쉬었는데, 주지인 담유(曇裕)가 자리와 음식상을 차려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튿날은 진헐대(眞歇臺)에 올랐소. 남여(藍輿)를 버리고 걸어서 개심대(開心臺)로 올라갔지요. 일만의 봉우리가 눈 아래 빼곡한 모습을 뭐라 형용할 수가 없었소. 우뚝 솟아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은 그대가 빼어난 자태로 홀로 서 있는 것만 같았고, 비스듬히 기울어 무너질 듯한 모양은 그대가 술에 취해 옥산(玉山)이 무너지는 듯한 모습과 방불했다오. 이것을 마주하고서야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지요. 이날은 열이레 밤이어서, 정양루(正陽樓)의 동편에서 달이 뜨기를 기다렸더랬소. (중략)
인하여 예전에 머물던 낙산(洛山)을 찾아가자 그 고장의 원로들이 모두 술병을 가지고 와서 다리를 덥혀 주고, 태수는 또 기생과 악공으로 호사를 더해 주니, 거나하여 왕안석(王安石)이 동산(東山)에서 노닐던 흥취가 있었소. 말이 발을 저는 바람에 닷새를 붙들렸다가 강릉 외갓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이곳을 찾아뵙지 않은 지가 어느덧 여덟 해나 되어 서리 이슬의 서글픈 감회가 배나 절절하더이다. 고을 동편에 작은 서당이 있어 학생 대여섯과 함께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으며 남은 해를 마치고 싶은데, 하늘이 사람의 욕심을 따라 줄지 모르겠소이다.
바다와 산의 장쾌한 유람이 대략 이와 같았소. 이때 만약 그대가 함께 있었다면 이 사이에 지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시 주머니 속에 마땅히 많았을 것이오. 형께서 이 말을 듣는다면 반드시 크게 유쾌해하고 또한 크게 안타까워할 것이오.
벼슬길을 향한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하고, 세상 사는 맛은 씀바귀인 양 쓰구려. 조용히 지내는 즐거움이 화려한 벼슬살이보다 낫거늘, 어찌 즐겨 나의 편안함을 버리고 남을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단 말이오. 다만 먼 데 벗을 향한 생각이 속마음에 얽혔어도 땅이 멀어 만나기가 어려운지라 회포를 다 풀 수가 없구려. 가을 날씨가 점점 차지니 양친을 잘 모시고 양지(養志)를 다하기 바라오.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하오. 이만 줄이오.
─ 허균, 이종묵, 장유승, 정민, 이홍식, 안대회, 이현일 옮김,
「금강산 유람길에서」, 『팔도 유람기』, 66~70쪽에서
여행 가방을 꾸려본 지가 너무 오래라 낯선 기분으로 글을 읽었어요. 자리를 비울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가는 토베 얀손의 글에서 여행 전의 차분한 설렘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허균의 편지를 읽으면서는 과거에 여행을 자주 다니던 때가 생각났어요. 왜, 여행지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 누구랑 같이 먹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괜히 슬퍼지고 멋진 풍경을 보면 꼭 친구에게 엽서를 써야만 하잖아요. 허균에게 ‘괜히 벗이 생각나는 좋은 것’이 바로 진한 술과 금강산의 절경이었던 게 아닐까요.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하오.”라는 문장에서 벗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느껴져요. 역시 무언가로부터 완벽히 떠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노란고양이 편집자님도 긴 휴가의 와중에 혹시 떠나온 직장 동료가 떠오르신다면……
민음사
1p@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