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은하 제국은 왜 안 돼?

SF 작가 배명훈의 새로운 세계 만드는 법
지난 편지의 정세랑 작가님 이야기에, SF를 좋아하는 우리 독자 님들이 여러 재밌는 화답을 보내 주셨어요! 
[인류애 대충전]
“작가님 책을 읽으며 우리 세상은 부디 친절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길 바라요. 우리 모두가 이 세계에 던져져서 살아가게 된 거 이왕이면 사랑하며 살면 좋잖아요! 우리 모두 사랑하기로 한걸로 합시다! 그렇다고 합시다!”
디스토피아를 쓰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원치 않기에 쓴다고 생각한다는 정세랑 작가님의 인류애에 감동하신 분들이 속출했죠! 이런 마음은 전염성이 강한 것 같아요. 끔찍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를 위하고 공동체를 생각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까지 선한 사랑의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존속해 왔겠지요.

[이야기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주변인들에게 소설을 추천할때 다정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이번 에세이에서도 다정하다는 단어가 몇 번 등장해서 평소에 좋아하시는 단어인지 궁금해요.
“작가님이 쓰신 SF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담기면 좋겠어요! 작품에 이 내용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부분들, 이야기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걸 듣고 싶어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뒷이야기도 궁금하기 마련입니다. 편지로 미리 공개한 인터뷰는 정말 일부고요!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는 책 속에 작가가 직접 말하는 자신의 작품 이야기, 창조적 일상, 글쓰기 관련 팁 등이 정말 많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편지의 주인공은 한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을 정말 멋지고 흥미롭게 해내는 분이죠. 우주 제국이 왜 불가능한지부터 팬데믹 시기의 작가라는 직업은 어떤지 등 재밌는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SF 작가 배명훈과의 대화에 초대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곧 나올 인터뷰집 단행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에세이 SF 작가입니다중에 가내 등단이야기가 있어요. 작가들은 대개 집에서 작업하니, 집안에서 작가라는 직업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집에 있어도 노는 게 아니라 작가로서 일하는 중이라고요. 가내 등단 경험자로서 전수할 만한 요령이 있을까요?

 

여기저기 농담으로 썼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걸 어머니 친구가 어머니에게 말해 주는 거예요. 어른들의 경우는 《조선일보》가 제일 잘 먹히더라고요. 저는 박완서 선생님 심사평을 받았을 때 가내 등단이 됐죠.

 

작가와 같이 사는 사람은 작가가 직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제가 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겉으로 보면 노는 모습이랑 똑같잖아요. 실제로 많이 놀기도 해야 하고요. 놀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생각을 계속하는 거잖아요. 그게 창작 과정의 일부니까요. 그것도 다 작가로서 일하는 과정이라고 주변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어요.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약속을 줄이는 수밖에 없고요. 친구들에게 ‘넌 시간 많잖아.’ 이런 소리를 듣는데, 제가 일정을 조정할 여지가 많은 거지, 정말 빈 시간이 많은 건 아니잖아요. 일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쓰는 흐름을 한번 놓치면 다시 돌아가는 데 오래 걸리고요. 그러니 내 리듬대로 지내야 하죠. 리듬이 정말 중요해요. 프리랜서가 회사원과 같이 있으면 종종 회사원의 리듬에 끌려가요. 그러면 안 돼요. 내 글이 만들어지는 리듬은 다르니까요. 영감이 오는 때라고 해야 하나,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는 주기는 24시간도 아니에요. 20시간일 때도 있죠. 그러면 하루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요. 리듬이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 주기로 글이 써지면 거기에 맞춰야죠.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맞추다 보면 잘 안 써져요. 규칙적인 리듬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리듬을 유지하는 상태가 좋아요. 그러려면 또 주변인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고요. 이 사람은 작가고, 노는 것처럼 보여도 일하는 중이라고.

 

 


작가로서 직업 만족도는 어떤가요?
직업 만족도는 전체적으로 안 좋은데, 매우 좋은 순간들이 있어요. 성취감이 있고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계속할 수 있는 일이죠.
그리고 제가 쓴 글이 저를 자꾸 다른 곳으로 보내요.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님과 대담했을 때 그분이 저보고 천문연구원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천문연구원에서 행성과학자 분들을 모셔놓고 강연을 했죠. 제가 그분들께 강연을 하다니! 이런 경험이 특별합니다.
“실제로 많이 놀기도 해야 하고요. 놀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생각을 계속하는 거잖아요. 그게 창작 과정의 일부니까요.”
작년에 화성에 관한 연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한국 외교부 의뢰로 ‘인간이 정착한 이후 화성에서 펼쳐질 행성 규모의 거버넌스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하셨다고요. SF 작가로서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해요.
외교부 전략기획관실 국장님이 화성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어요. ‘미래에 화성에 사람이 살게 되면 그곳의 거버넌스는 어떻게 될까’ 하고요. 이를 연구할 만한 사람이 많진 않잖아요.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과학책을 들여다보고, SF적인 상상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의뢰를 받아서 2020년에 파일럿 연구를 했죠. 다행히 파일럿 연구가 잘 통과되어서 2021년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했어요.
국제정치학으로 SF를 다루는 건 제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배명훈 작가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 편집자 주)특히 요즘의 국제정치학은 SF와 많이 맞닿아 있어요. 국제정치학의 첨단에서 다루는 주제가 미래국가론이나 우주 진출이거든요. SF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요.
저는 예전에 단편 「스윙바이」에 서술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에 관해 썼는데요. 그때만 해도 자동서술은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이제 실현될 가능성이 보이죠. 화성의 거버넌스 연구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가 한 100년 후에 정말로 화성에 살게 되면 고민거리가 많이 생길 거예요. 하지만 누가 미리 고민을 시작해두면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잖아요. 기초가 이미 마련된 셈이니까요. 이를 염두에 두고 연구보고서를 썼어요.

작품을 보면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경험이 세계를 보는 관점을 형성했다는 느낌이 나요. 에세이 『SF 작가입니다』에서도 국제정치학을 공부해서 SF 작가가 되었다는 내용을 쓰셨죠.

네, 제가 SF를 쓰는 이유는 국제정치학 소설을 쓰면 SF가 되기 때문이에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국제정치학의 질문을 풀어가는 것이 제 목적이고요. 소설에서는 현실에서보다 질문을 자유롭게 던지게 되죠. 현실은 국가 중심 체제가 견고한 상태지만 소설은 현실과 다르니까요.

예전에 은하 제국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셨죠. 화성과 지구만 해도 시차가 나고, 「외합절 휴가」나 『빙글빙글 우주군』을 보면 그 몇 분의 시차부터 불화가 생기잖아요. 우주에서 중앙집권형 국가는 불가능하고 봉건제 형태 정도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와요. 하지만 SF 소설 중에는 거리를 뛰어넘어 연결되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SF에 과학적 고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예시로 드는 SF 작품을 보면 과학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사회과학적으로는 틀린 경우가 많아요. 우주 제국은 있을 수 없거든요. 제국이라면 현재의 국가보다 옛날 체제인데, 국가 체제조차 지구 하나를 커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구연방도 말은 안 되거든요. 봉건제는 가능하죠. 권력을 지방에서 보유하는 보유하는 형태요.

제국이 되려면 지방과 소통하는 속도가 중요해요. 도로를 깔든 봉화를 만들든 연락이 충분히 빨리 이루어져야 해요. 급한 상황에 바로 대처하도록. 그러지 못하면 통제력이 없어져요. 그러면 분권해서 병력을 각 지역에 주둔시켜야겠죠. 지구와 화성 정도로만 멀어져도 통신에 시차가 생기고, 이동에는 더 큰 시차가 생겨요. 화성보다 더 멀면 당연히 분권해야죠. 그럼 제국 시스템은 불가능해요. 하지만 다들 그냥 넘어가죠. 과학 부분도 그렇게 틀려도 되지 않나 싶어요. SF에서는 과학적으로 정확한지가 아니라, 틀린 과학을 통해 작가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지가 중요하잖아요.
“소설에서는 현실에서보다 질문을 자유롭게 던지게 되죠.
전쟁을 회피하는 이야기, 전쟁을 억제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맛집 폭격은 전쟁을 앞둔 양쪽 국가 사람이 서로 전쟁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내용이고요.

 

국제정치학에서 전쟁을 뺄 수는 없어요. 제가 제1차 세계대전을 전공했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이 전쟁을 뺀 상태로 세계를 생각해요. 화성만 해도 그래요. 화성에 사람이 살게 되면 당연히 군인도 가겠죠. 우주에 진출할 능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미국 국방부고요. 군인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만 생각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걸 배웠으니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어떤 상황에 폭력 내지는 권력이 작용하리라는 가정을 하죠. 세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고 믿고 있어요.

 

전쟁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전혀 안 좋아해요. 그냥 전쟁이라는 게 존재할 뿐이에요. 이걸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잖아요.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를 실현할 수는 없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정치학의 중심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옮겨 갔는데요. 미국 국제정치학계가 우선했던 고민이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방법이었어요. E. H. 카의 『20년의 위기』라는 책이 고전이 됐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나온 책인데, 그 시기에는 이상주의가 득세했거든요. 강대국끼리 더는 전쟁하지 말자는 완벽한 합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카는 전쟁하지 말자는 합의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했고요. 엄연히 존재하는 위험이니까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죠.

 

전쟁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 제일 흥미로워요. 작중에서 군인다운 사람이 나오면 문제가 생기고, 군인답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야 평화가 유지되잖아요. 단편 티켓팅 & 타겟팅도 핵잠수함이 배경이라 진지해야 하는데, 군인 조직이 요구하는 엄숙함과 개인이 꾸리는 일상적인 소소함이 따로 놀고 있으니까 그런 격차에서 웃음이 나와요.

 

「티켓팅 & 타겟팅」은 군 조직에 있으면서 아이돌 공연 티켓을 원하는 사람의 이야기였죠. 공연에 가는 게 목표인데, 목표를 향해 똑바로 갈 수가 없어요. 세계 자체가 구부러져 있어서 그래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세계가 기울어져 있으니까요. 자기는 티켓팅을 하고 싶은데 그게 군이라는 조직이 요구하는 바와는 어긋나니까요. 『타워』도 권력장 때문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이야기잖아요. 자기는 직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휘어진 길을 가는 사람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판타지일 때는 달라요. 제가 쓰는 판타지에서는 세계가 구부러져 있지 않아요. 캐릭터가 훨씬 자유로워요. 단편 「냉방노조 진압작전」이나 단편집 『총통각하』의 판타지를 읽어보면 인물이 저의 다른 SF 소설 속 인물보다 확고해요.SF의 인물은 복잡하고 골치가 아파요. 하지만 그게 제가 쓰는 SF 같아요. 인물이 세계의 제약을 받아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요.


본인의 글에서는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 좋아하는 점이 있다면?

 

잘 모르겠어요. 웃긴 소설을 쓰고 싶어요. 단편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같은 거요. 팬데믹 때문에 남에게 침이 튀기는 소리인 ㅊㅋㅌㅍ가 사라진다는 설정인데, 그래서 글에서도 ㅊㅋㅌㅍ가 없죠. 모두 ㅈㄱㄷㅂ로 바꿔 썼어요. 흔히들 무거운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저는 웃긴 소설이 좋아요. 웃긴 소설이 희소하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안 웃겨요. 그러니 웃기고 싶으면 살필 점이 많아요. 게다가 해피엔딩이면서 좋은 결말을 내려면 노력이 많이 필요해요. 행복하면서도 현실성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요새 한국소설에서 불편한 부분을 없애려는 경향이 과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다들 비슷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요. 물론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글을 쓰고 있으면 가치가 떨어지잖아요. SF는 아직 충분히 다양성이 확보되어 있고, 그건 다행한 일이에요. 


요즘 팬데믹으로 변한 점이 있나요? 생활의 변화, 생각의 변화 등이요.

많이 변하긴 했지만, 소설가들은 대체로 비대면 업무를 하잖아요. 이전 연구를 보니 현재 팬데믹 시대에 하는 업무처리 방식을 이미 예견했더라고요. 그 시절 연구보고서를 보면 ‘이거 내가 지금 하고 있는데’ 싶어요. 작가가 의외로 미래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몇 년 전부터 이미 책을 내기까지 편집자를 한 번도 안 만나도 됐어요. 종이가 오갈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맥락에서 일거리는 계속 있을 것 같아요.

ㅊㅋㅌㅍ 없는 SF 읽어 봤어?
그 순간 나는 개달았다. “가다르시스를 느겼다”라는 말은 반드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라고 발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침이 잔뜩 튀도록.
위의 문장은 오탈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시작된지도 벌써 두 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은 많은 면에서 크게 변했는데요. 배명훈 작가의 단편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그러한 변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주요 전파 원인인 ‘비말’에 대한 공포를 설정으로 넣은 유머러스한 작품입니다. 듀나, 정소연, 김초엽 등 여섯 명의 SF 작가가 그린 팬데믹을 주제로 쓴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에 실려 있어요!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후인 2113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관습과 질서가 자리잡은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배경입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발음하다 보면 침이 튀기 마련인 격음과 경음 ‘ㅊㅋㅍㅌㄲㄸㅃㅆㅉ’를 발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 소설의 문장도 ‘-았/었-’의 받침을 제외하고 ‘ㅊㅋㅌㅍㄲㄸㅃㅆㅉ’가 모두 평음으로 처리되어 있는데요! 배명훈 작가 특유의 사고실험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쓰면서도 너무 재미있고 골치 아팠을 것 같은 이 소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문학과지성사, 2020)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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