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F 좋아하는 사람 모여라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SF를 좋아하시나요? 

너무 너무 좋아한다고요?
앗, 아앗!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요?
어느 쪽이더라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여섯 번의 편지를 받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음이 점점 더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게 될 테니까요!
그 누구보다도 차곡차곡 SF를 좋아하는 마음을 성실히 쌓아 온 SF 평론가 심완선이 오늘을 쓰는 SF 작가 여섯 명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지금 무엇을, 그리고 왜 쓰고 있나요?”
“당신이 만드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요?”
“더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때에도 계속 글로 돌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가능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술, 그리고 이어지는 마감에 맞서 창조적 생활을 유지하는 법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들어 보세요. SF를 쓰고, 읽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좋아하는 작가 여섯 명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실 거예요, 좋아하는 마음이란 금방 전염된다는 것을. 
오늘은 늘 진심을 다해 쓰는 김보영 작가와 함께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곧 나올 인터뷰집 단행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작가로서 경력이 이제 거의 20년이 되셨잖아요. 자기만의 일하는 방식을 찾았을 것 같아요. 작업 공간은 어떤지, 작업 시간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합니다. 정해진 한 곳에서 하지 않아요. 제가 처음 들어간 게임 회사가 자리에 칸막이도 없고, 제 자리가 문 바로 옆자리인데다가, 판옵티콘처럼 다 보이도록 동그랗게 앉아 일하는 환경이었거든요. 글을 쓰는 내내 모든 팀원이 옆을 지나다녔고 뒤에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놀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1년 일하고 나니까 아무 데서나 쓸 수 있게 되더군요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글은 사실이 아니어도 진실이고 진심이어야 한다고. 사실 내가 쓴 이야기라도 그 내용이 내 가치관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소설 속 인물과 나는 별개지요. 그렇더라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이야기가 내게 진짜여야 하는 거죠. 쓰는 동안에는 인물이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하는 거예요. 물론 다 거짓말이죠. 하지만 쓸 때 내가 진짜라고 믿고 쓰지 않으면 읽는 사람 누구에게도 진짜가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진심으로 쓰려고 하죠. 이 문장이 지금 나에게 진짜인가, 그걸 매 순간 검토하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원래 어느 독자분의 청혼 선물로 의뢰받은 로맨스 소설이잖아요. 그래서 강력한 사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쓰면서 사랑 부분도 많이 몰입하셨나요?
당연히 했죠. 최선을 다해 몰입했고요. 다 쓸 때쯤엔 진짜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기분이 들었을 때 아싸, 내가 제대로 몰입했구나.” 했어요.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아녜요. 포기한 시간이 더 길어요. 그래서 직장도 다녔고.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컸어요. 다음 달에 굶어 죽어도 이달에는 써야 했죠. 안 쓰면 다음 달이 아니라 이달에 죽을 것 같으니까. 이달에 죽는 것보다는 다음 달에 죽는 게 낫죠.무위(無爲)로 쓴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쓴다고. 왜냐하면 내가 쓰는 소설은 출간도 못하고,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확신이 분명했는데, 그런데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썼으니까요. 거꾸로 여기에 낭비한 시간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질 것이 분명하더라도 써야겠다, 그게 그때 내린 결론이었어요. 내가 소설로 무엇을 얻으려 했다면 한 줄도 쓰지 못했겠지요.그렇다고 고료를 안 받겠다는 건 아니고(웃음), 가족을 먹여야 하니 열심히 벌어야지요. 그래도 무위는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행함에서 더 큰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라, 모순적이지만 그 글귀를 좋아해요.
보영 님이 SF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세계의 규칙을 창조한다는 점이 좋다고 할까요아마 판타지 작가가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그런데 어째서인지 제게 판타지는 많은 이야기가 비슷해 보였어요이미 존재하는 설정을 차용하는 느낌이었죠당연히 그게 장르 규칙이지만저는 내 세계를 만들고 싶었어요그런데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조하는 판타지는 많은 경우 SF로 해석돼요저는 데뷔하고 판타지를 여러 편 썼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들도 다 SF로 분류되니까요.
그리고 SF는 판타지 이상의 환상을 주죠새뮤얼 딜레이니가 말했잖아요. ‘판타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다루는 장르고, SF는 일어나지 않은 일하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다루는 장르라고. ‘일어날 수 있다는’ 그 지점이 얼마나 매력적이에요둘 중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라개인적인 선호에서 이렇게 된 거죠.
저는 제가 사는 사회 공동체전혀 만날 일 없는 다른 사람들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지구에 사는 생물에 대해 종종 생각하거든요혹시 마음이 가는 생물종이 있나요?
고양이?(웃음
그 외에는 가끔 그 생각을 하죠혹시 내가 인류의 마지막 시기를 사는 것은 아닐까내가 인류의 마지막 전성기를 보고 떠나는 것은 아닐까하고요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제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도 넘쳐나는데한편으로 지금 환경이 파괴되는 속도나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멀리 가 버렸으니까요.
우리는 실상 앞이 안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생각하다 보면아무래도 예정된 죽음 앞에서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가꾸자는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곤 해요여기서 한 발 더 생각하는 분들은 많이 싸우고 활동하고 있겠지요.
 
 

김보영 작가와 함께 지내는 고양이
지구는 SF다운 주제이기도 하죠. 옛날 영미 SF를 보면 인류나 지구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잖아요. 매우 제국주의적인 태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류나 지구로 시야를 넓히는 것도 SF가 해내는 중요한 효과이기도 합니다. SF를 쓰면서 그렇게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이나 환경 파괴의 영향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지요. 언제나 그랬지만 옛날에는 원인을 몰랐죠. 이제는 우리가 다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요. 다른 나라에서 일으킨 온실효과로 어느 나라는 바다에 잠겨 없어질 수 있어요. 애초에 이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SF를 쓰지 않을까요. 과학은 아무래도 세계가 돌아가는 규칙을 설명하려 하니까요. 내 일상이 세계의 어떤 규칙으로 생겨났는지 생각하다 보면 시야가 지구로, 우주로, 세계 전체로 가기도 하지요.
아마 앞으로도 지구에는 재난이 계속 일어나겠지요.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공해도 계속 심해질 거고, 그러다 또 지금처럼, 한순간에 전 세계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다른 재난이 일어날지 모르지요. 그런데 아마 그때도 어찌어찌 대응은 하지 않을까. 전 인류가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보며 했어요. 우리가 나중에는 방호복을 입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필요하다면 방호복을 입고 살도록 세계를 재편할 수 있겠지요.
SF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익숙하지 않은 거죠. 문단 문학도 익숙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이야기가 바로 시작하지 않고 한참 있다 시작하잖아요. SF가 어려운 이유는 과학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독법이 좀 다르죠. 이를테면, 로맨스는 사랑이 결말에서 이루어지는 장르인데, ‘왜 사랑이 이루어지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아니면 이 두 사람은 왜 사랑하느냐물어 보면 그게 로맨스의 법칙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잖아요. 법칙은 어느 장르나 있고,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베스트셀러를 내고 계시는 SF 작가님들께 열심히 박수치고 있어요. 저분들이 독자들에게 SF를 익숙하게 만들어줄 테니 저도 살기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청혼 SF 읽어 봤어?
“안녕하세요, 사실 제가 곧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프러포즈를 못 하고 있어요, 그래서 청혼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낭독하려고 하는데 기발표된 작품들 중에서는 도저히 못 찾겠어요, 마침 여자친구가 작가님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고 해서 부탁을 드리는 건데요, 소설 하나만 써 주세요.”
 
전대미문의 청혼 SF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김보영 작가에게 도착한 어느 팬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이번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김보영 작가는 최선을 다해 몰입해서 소설을 썼고, 아주 강력한 사랑 이야기가 탄생했죠. 결혼식을 앞둔 남자는 우주여행을 떠난 여자를 기다리며 편지를 씁니다. 처음에는 4년 남짓이면 될 줄 알았던 기다림의 시간은 여러 우연한 사고가 겹치며 11년으로 늘어나 버리는데요. 이들은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새파란상상, 2020)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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