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중독자 앞에 선 인류학자

 

 

‘중독’ 첫 번째 세미나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주 목요일에 있었던 ‘중독’ 첫 번째 세미나 후기를 들려드려요. 《한편》 ‘중독’에 「”담배, 참 맛있죠”」를 쓰신 의료인류학자 김관욱 선생님이 의사이자 인류학자로서 바라보는 중독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요.

 

의학적으로 중독을 정의할 때는 ‘유해함’이 포함된다고 해요. 흡연이나 음주 등의 행위가 당사자에게 유해한지가 중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의사로 일했던 김관욱 선생님은 뇌졸중으로 흡연을 해선 안 되는 환자 A가 환하게 웃으며 “담배, 참 맛있죠.”라고 말했을 때 차마 ‘당신은 니코틴중독입니다. 흡연은 해로워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해요. 실제로 흡연이 환자의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여전히 흡연은 해롭지 않은가요? 그래도 의사라면 환자의 흡연을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강연에 참여했던 독자분의 의견과 함께 오늘의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봐요.
 
“그래도 의사는 금연을 권고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ㅎㅎ
 누군가는 마지막 보루에서 지키고 서 있어 줘야죠.”
 

“해롭지 않은 흡연도 있나요?”

흡연이 해롭다는 의학적 사실과 환자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의사의 곤란함. 이 어려운 상황에서 의사는 다른 시선으로 중독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먼저 멈출 수 없는 흡연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취약한 뇌뿐 아니라 중독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찾기 시작해요.

 
특히 이날 강연에서 소개된 된 책 『중독의 시대』의 저자인 데이비드 코트라이트는 중독의 원인으로 뇌에 단발적이고 강력한 쾌락을 줌으로써 과도한 소비와 중독을 조장하고 이윤을 얻는 비즈니스 체제를 꼽고 있어요. 그 안에는 마약, 술, 담배, 게임, SNS 등이 모두 포함되지요. 중독을 유발하는 경제체제인 ‘변연계 자본주의’ 개념을 통하면 중독을 개인을 넘어선 사회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변연계 자본주의’ 개념으로도 환자 A의 흡연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어요. 인류학자로서 김관욱 선생님은 환자 A의 흡연을 ‘세속적 의례’로 해석합니다. 인류학자 마이클 잭슨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을 맞닥뜨린 이가 그 경험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세속적 의례를 정의하는데요. 이에 따르면 환자 A의 흡연은 삶이 초래한 어려움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행위, 자기 자신을 성스럽게 하는 행위라 할 수 있어요.

최근 출간된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 상담사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쓰인 책이에요. 이 책의 4장에는 철저하게 정해진 스케줄과 용량에 따라 약물을 복용하고 흡연을 하는 콜센터 상담사의 하루가 그려집니다. 업무 시간 동안 개인의 신체 활동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콜센터라는 환경에서 노동자는 스스로 정한 스케줄대로 ‘흡연 의례’를 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죠. 
 
흡연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세속적 의례’ 개념에 대해서도 독자분들의 질문이 이어졌어요. 
 
“흡연만이 세속적 의례가 될 수 있을까요? 
해로운 흡연이 아닌 의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관욱 선생님은 A의 의례에서 담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존중과 위로’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A에게 담배, 즉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을 건넨 남편이 있었다는 것이죠.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존중과 위로의 손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중독’ 첫 번째 세미나는 중독의 의학적 개념에서 출발해 중독을 유발하는 ‘변연계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거쳐 ‘세속적 의례’에 가닿으며 마무리되었는데요. 강연을 함께했던 일과 술 사이의 편집자 님의 후기를 들어 봐요. 
 

채팅창에서 끊임없는 공감과 반박이 이어졌던 열정적인 시간이었죠! 중독자의 바로 옆에서 사는 사람의 고통은 어떡할지, 중독자를 강제로 병원에 보내야 한다면 어떨지 등등 같은 호에 실린 다른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했어요.

“삶이 초래한 어려움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행위”라는 이야기를 듣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저는 이번 세미나에서 존중이라는 말 하나를 품고 돌아왔습니다. 좋은 중독, 나쁜 중독, 심한 중독, 적당한 중독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헷갈렸는데, 나를 존중한다고 상상하니까 느끼는 바가 있었거든요. 스마트폰에 자꾸 손에 가는 편집자 님에게 저의 스크린타임을 살짝 공유해 드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중독 첫 번째 세미나가 오늘날 정신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 중독자를 보았다면, 두 번째 세미나는 조선 시대로 날아갑니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갈 길을 간다는 자세로 경직된 조선에 변화를 불어넣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요. 울산대 국문학과 노경희 선생님이 중독(中毒)이라는 한자어를 풀어헤치면서 12세기의 철학자 주희가 반대편을 ‘조금 중독되었다!’라며 경계한 이야기, 그에 따라 조선의 유학자들 역시 논적들을 배척했던 무시무시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중독에서 무엇이 ‘독’인지를 가릴 수 없는 때에도 스스로 믿는 바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나눠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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