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7호 ‘중독’
$%name%$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한편》 편집자들은 진짜진짜 마감 중이랍니다. 곧 출간될 7호 ‘중독’ 표지를 공개한 지난 편지에서 검은개의코 편집자 님은 이렇게 말했는데요.
다시 원고 보러 갑니다. (앗, 그 전에 피드 새로고침 한 번만 더, 딱 두 번만…….)
이 “한 번만 더, 딱 두 번만”이라는 말에 저도 홀린 듯이 스마트폰을 잡고는 스크롤을 당긴 거 있죠. 일하자는 결심과 미루는 습관 사이가 이처럼 가깝다니까요. 새해는 벌써 왔고, 작년부터 세운 새해 계획들이 언제 고꾸라질지 주목되는데요. 이번 겨울에 나온 신간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6번 『모래 사나이』가 떠올라요. 소설 속 이 대사 때문에요.
“휘 — 휘 — 휘! — 불타는 원 — 불타는 원아! 돌아라, 불타는 원아—
즐겁게 — 즐겁게! — 나무 인형 휘 예쁜 나무 인형아, 돌아라—.” 『모래 사나이』의 주인공 나타나엘이 광기에 휩싸였을 때 외치는 이 대사가 어쩐지 스마트폰 무한스크롤과 겹쳐지는 것 같아요. 《한편》 ‘환상’에서도 소개했던 단편 소설의 한 대목을 같이 읽어 보실래요? 인간 심리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독일 낭만주의 작가 E. T. A. 호프만입니다.
처 음 며칠 동안 나타나엘이 완전히 딴사람 같아 보였기에 모두가 그것을 느꼈다. 그는 음울한 몽상에 잠겼고 전에 없이 이상하게 행동했다. 모든 것, 삶 전체가 그에게는 꿈이자 예감이 되어 버렸다. 그는 늘 말하길 모든 사람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면서 어두운 힘들이 벌이는 잔혹한 놀이에 봉사할 뿐이며 아무리 반항해도 헛일이라고, 정해진 운명에 고분고분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예술과 학문에서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따라 무언가를 창조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창조를 하자면 영감이 꼭 필요한데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서 생기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어떤 더 높은 원리의 작용이라고 했다. 이성적인 클라라에게 이런 신비적인 몽상은 굉장히 거슬렸다. 하지만 반박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나타나엘이 코펠리우스가 사악한 원리이며 커튼 뒤에 숨어 엿듣던 그 순간에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이 혐오스러운 마귀가 끔찍한 방법으로 그들의 행복한 사랑을 방해할 것이라고 증명할 때면 클라라는 몹시 진지해져서 말했다. “그래, 나타나엘! 당신 말이 옳아. 코펠리우스는 사악하고 적대적인 원리야. 그는 끔찍한 일을 불러올 수 있어. 삶 속으로 명백히 들어온 악마적인 힘처럼 말이야. 하지만 오직 당신이 그자를 마음과 생각 속에서 몰아내지 않을 때에만 그럴 수 있어. 당신이 그의 존재를 믿는 한 그는 실제로도 존재하고 영향력을 미쳐. 당신의 믿음만이 그의 힘이야.” — 나타나엘은 클라라가 마귀는 오직 그 자신의 내면에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하자 완전히 화가 나서 악마와 무서운 힘들에 대한 모든 신비주의적 학설을 내세우려 했다. 하지만 클라라는 중간중간 대수롭지 않은 말들을 던지며 짜증스럽게 이야기를 끊었고 이에 나타나엘은 적잖이 분노했다. 그는 차갑고 둔감한 마음에게는 그러한 심오한 비밀이 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클라라를 바로 그런 하등한 천성의 소유자 중 하나로 여긴다는 사실을 똑똑히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를 비밀의 세계로 이끌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클라라가 아침 식사 준비를 거들 때면 그는 곁에 서서 온갖 신비한 책들을 읽어 주었다. 그러면 클라라는 이렇게 부탁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나타나엘, 만일 내가 지금 당신을 나의 커피에 적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악한 원칙이라고 나무라고 싶다면 어쩔 거야? — 만일 내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놔두고 당신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 눈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커피가 불 속으로 들어가서 모두가 아침을 먹지 못하잖아!” 나타나엘은 탁 하고 세게 책을 덮고는 불만에 가득 차서 자기 방으로 달려가 버렸다. 예전에 그는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쓰는 데 특별히 재주가 있었고 클라라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제 그의 작품들은 음울하고 이해할 수 없고 형태가 없었다. 비록 클라라는 나타나엘의 마음이 상할까 봐 그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그녀에게 별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클라라에게 지루한 것보다 끔찍한 건 없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자신의 정신이 참을 수 없게 졸리다는 것을 눈빛과 말을 통해 드러냈다. 나타나엘의 작품들은 사실 매우 지루했다. 클라라의 차갑고 산문적인 마음에 대한 그의 불만은 점점 커져 갔고 클라라는 나타나엘의 어둡고 음울하며 지루한 신비주의에 대한 언짢음을 이겨 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 자꾸만 서로 멀어져 갔다. 나타나엘이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듯이 추한 코펠리우스의 형상은 그의 환상 속에서 퇴색되었고 많은 경우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무서운 운명의 도깨비로 등장하는 코펠리우스를 제대로 생생하게 그려 내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나타나엘은 코펠리우스가 그의 행복한 사랑을 방해할 것이라는 어두운 예감을 소재로 시를 쓰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소중한 사랑으로 결합된 자신과 클라라를 묘사했다. 하지만 때때로 검은 주먹이 두 사람의 삶에 들어와 그들에게 싹튼 어떤 기쁨을 낚아채 가는 듯했다. 마침내 그들이 결혼식 제단 위에 섰을 때 끔찍한 코펠리우스가 나타나 클라라의 사랑스러운 두 눈을 만진다. 눈들은 피투성이가 된 불꽃처럼 그을고 타면서 나타나엘의 가슴으로 튀고 코펠리우스가 나타나엘을 붙잡아 활활 불타는 원 속으로 던진다. 불타는 원은 폭풍처럼 빠르게 회전하면서 윙윙, 휘휘 소리와 함께 그를 낚아챈다. 사납게 날뛰는 모양이 마치 격노한 태풍이 거품 이는 파도에 채찍질을 해 대고 파도가 하얀 머리를 가진 검은 거인처럼 격렬하게 싸우며 솟구치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듯 사나운 혼돈 속에서 그는 클라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당신은 나를 못 보는 거야? 코펠리우스가 당신을 속였어. 당신의 가슴에서 그토록 불타던 그건 내 눈이 아니었어. 그건 당신 심장의 피였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핏방울이었다고. — 나는 내 눈을 가지고 있어, 나를 보라고!’ — 나타나엘은 생각한다. ‘클라라야. 그리고 나는 영원히 그녀의 것이야.’ — 그때 이 생각이 불타는 원 속으로 강하게 밀고 들어가는 것 같고 불타는 원이 멈춰 선다. 그리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굉음이 둔중하게 사라져 간다. 나타나엘은 클라라의 눈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클라라의 눈으로 친근하게 그를 바라보는 것, 그것은 죽음이다.
─ E. T. A. 호프만, 신동화 옮김,
『모래 사나이』, 33~36쪽
나타니엘은 클라라가 파괴되는 것이 두려운 걸까요, 아니면 사실은 클라라를 파괴하고 싶은 걸까요? 클라라의 눈이 공격받는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타니엘을 보며, 어린 시절 기억이 문득 떠올랐어요. 예를 들어 갑자기 이런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건데요. ‘피아노 학원에 있는 사이 우리 집이 모조리 불에 탄다면?’ ‘일하러 나간 엄마 아빠가 사실 지금 큰 사고가 나서 절대 돌아올 수 없다면?’ 너무 두렵지만 또 너무나도 강렬했고, 내 상상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고통에서 해방되면서 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래서 꽤 오래 이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기도요.
‘중독’이라는 단어와 함께 『모래 사나이』를 다시 보니, 클라라의 분노가 이해가 되면서도 나타나엘에게 마음이 가요. 코펠리우스에 대한 묘사가 한 줄 한 줄 무겁고 무섭게 읽히네요. 마지막 문장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보고 잠시 숨을 멈췄어요. 중독은 죽음에 이를 만큼 무서운 것이기도 하지요. 그 원인이 악마적인 힘이든 몸의 이상이든, 무언가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렬한 충동 혹은 환상, 중독 상태에 있는 개인을 현실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26개의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듯한 표지를 본 후 펼쳐지는 나타나엘과 클라라의 이야기가 느슨해지려던 저녁녘 제 마음을 슬며시 조이네요. 저는 “차갑고 산문적인 마음”의 클라라에 좀 더 이입이 돼서, 아침 준비 거드는 사람 옆에서 음울한 신비주의 책을 읽어 대는 나타나엘에게 꽂히는 클라라의 “부탁”에 통쾌함도 느꼈는데요. 피투성이처럼 타는 두 눈, 태풍과 파도의 부딪침, 심연 속으로 사라지는 굉음…… 격렬하고 생생한 심상들에 이르고 나니, 한 사람이 제 의지나 이성으로 채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정념이나 충동에 갉아먹히는 장면을 본 것 같아 오싹해요. 서늘한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무언가에 완전히 사로잡히곤 하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아, 유머와 공포 속에서 함께 읽으니까 역시 더 재밌네요. 노란고양이 편집자 님 질문인 “나타나엘은 사실은 클라라를 파괴하고 싶은 걸까요?”에 대답하려면 『모래 사나이』 뒷부분을 읽어 보셔야 해요. 클라라와 대비되는 올림피아라는 충격적인 존재가 등장하니까요. 현실과 중독의 문제에 관해서는 소설 속 서술자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고 싶어요. “실제 삶보다 더 기이하고 미친 것은 아무것도 없다”.(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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