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시인의 정신은 미지(未知)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함께 읽기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지난 레터에서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시 세 편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자유를 향해 가는 시인의 ‘영원한 배반’의 태도를 보여 주는 산문 한 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1964년 발표한 「시인의 정신은 미지(未知)」예요. 시평을 쓰고 번역도 했던 시인의 솔직한 마음도 드러나 있네요.

시의 정신과 방법? 시 쓰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시의 정신과 방법을 아는가? 그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의 우를 범하는 일이다. 시인은 자기의 시에 대해서 장님이다. 그리고 이 장님이라는 것을 어느 의미에서는 자랑으로 삼고 있다.
도대체가 시인은 자기의 시를 규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그에게 눈곱자기만 한 플러스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시의 현 시점을 이탈하고 사는 사람이고 또 이탈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어제의 시나 오늘의 시는 그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그의 모든 관심은 내일의 시에 있다. 그런데 이 내일의 시는 미지(未知)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정신은 언제나 미지다. 고기가 물에 들어가야지만 살 수 있듯이 시인의 미지는 시인의 바다다. 그가 속세에서 우인시(愚人視)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기정사실은 그의 적이다. 기정사실의 정리도 그의 적이다.
 

그의 눈에는, 소설가란 생일을 잘 차려 먹기 위해서 이레를 굶는 무서운 금욕주의자다. 무서운 인내가다. 결과로서의 소설의 발언이 시의 발언과 일치되는 점도 있지만 피차의 과정이 너무나 현격하다. 그 결과를 수긍하다가도 그 과정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파스테르나크는, 현대의 상황을 대변하려면 시만 가지고는 모자란다 해서 소설을 쓰고 희곡까지 썼지만, 그의 희곡이라는 것이 따분하다. 『유리 지바고』도 그의 초기의 단편만 못하다. 그런데 그의 단편은 아시다시피 백일몽이다. “나의 『지바고』는 왕년의 모든 시보다도 나에게 귀중한 것이다.”라고 한 노후의 그의 말을 나는 신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죽는 날까지 시집만 내고 죽은 프로스트가 좀 더 순수하다. 파스테르나크의 초기 단편이나 딜런 토머스의 단편을 읽으면서 부러운 것은, 그들이 그런 잠꼬대를 써도 용납해 주는 사회다. 그런 사회의 문화다. 나는 여기서는 오해를 살까 보아 그런 일을 못하겠다. 여기에는 알지 못하겠는 글이 너무 많고, 그 알지 못하겠는 글이 모두 인찌끼*다. 알지 못하겠는 글이 모두 인찌끼인 사회에서는 싫어도 아는 글을 써야 한다. 아는 글만을 써야 한다. 진정한 시인은 죽은 후에 나온다? 그것도 그럴싸한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만한 인내가 없다. 나는 시작(詩作)의 출발부터 시인을 포기했다. 나에게서 시인이 없어졌을 때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출발부터가 매우 순수하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백은 싫다.
그렇지만 “시 1편”이라고 명기한 시 청탁서를 받을 때마다 나는 격노한다. 왜 내가 시밖에 못 쓰는 줄 아는가? 불쌍한 한국 문단아!
 

요즈음 S잡지사의 권유로 ‘시 월평’이라는 걸 써 보았는데, 그 바람에 시는 통 못 썼다. 시인은 심판을 받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 시인이 심판을 하게 되면 불필요한 번민을 하게 된다.(남에게 얻어먹은 욕은 즉석에서 철회할 수 있지만, 남에게 한 욕은 철회하기가 매우 힘들다.) 또한 사기를 한다. 심판을 하자면 올가미를 씌워야 하는데 이 올가미에 자신까지 걸려들기는 싫다. 자기가 걸려드는 올가미는 시를 다칠까 보아 싫고 자기가 걸려들지 않는 올가미는 비평이 거짓말이 되니까 싫다. 나의 월평이 게재된 같은 잡지에 소설평을 담당한 H씨의 글에 이런 말이 나와 있다. “……특히나 요새처럼 작가의 정치색을 가장 날카롭게 작품 속에 구상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을 때 이러한 유행을 의식적으로 회피한다는 것은 어쩌면 성실한 작가의 자세라고 봐야 옳을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앗차!’했다. 지금 말한 것처럼 H씨의 소설평이 실린, 같은 잡지에 나의 시 월평이 그분의 글과 나란히 게재되어 있다. 이달뿐이 아니라 지난달 호에도 어깨를 나란히 해서 나는 시 월평을 쓰고 그분은 소설 월평을 썼다. 이달뿐이 아니라 다음 달 호에도 어깨를 나란히 해서 나는 시 월평을 쓰고 그는 소설 월평을 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난달에도 이달에도 시의 현실 참여를 주장해 왔고 내달에도 그것을 주장할 참이다. 그런데 아까와 같은 그분의 글을, 내가 쓴 글을 읽는 끝에 마을 가는 기분으로 읽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연 3회를 현실 참여의 월평을 써 온 끝이라 또 다음 호에도 똑같은 논지를 내세우는 것이 변화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좀 의아한 생각을 품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재빨리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이 그런 말을 암시해 놓았다. “……이러한 유행을 회피하는 것은 어쩌면 성실한 작가의 자세…….” 그렇다. 얼마 전에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다짐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다. 그때가 벌써 S잡지사의 월평을 시작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그러니까 그 비평을 시작할 때부터 내 비상구는 만들어 놓고 쓴 셈이다. 이번의 H씨의 글은 나의 사기를 재확인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밀고 앞에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시인은 밤낮 달아나고 있어야 하는데 비평가는 필요에 따라서는 적어도 4, 5개월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야 한다. 혹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야 한다.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촌초(寸秒)의 배반자다.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 배반을 배반하는 배반자……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
 
시인의 정신과 방법? 나는 그대를 속이고 있다. 술을 마실 때도, 산보를 할 때도, 교섭을 할 때도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속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그대를 속이고 있다.
그대가 영리한 사람인 경우에는 눈치를 챈다.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리한 그대는 내가 속이는 순간만 알고 있고, 내가 속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대는 내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그대를 구출하는 길은 그대가 시인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
*인찌끼(いんちき): 사기, 협잡, 가짜를 뜻하는 일본어.
**요한 페터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 독일의 문필가. 괴테의 비서로 일했으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 연구의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다.
―김수영, 이영준 엮음,
『김수영 전집 2: 산문』, 344~347쪽에서

《한편》에서 ‘권위’를 다루는 시기에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라니 이렇게 완벽한 서사가 있을까요!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김수영을 권력에 굴하지 않은 자유의 시인이라고 다소 두루뭉술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어떤 권위에 길들여져 있고, 타인에게 그 권위를 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들여다보는 김수영의 냉철한 통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저 또한 권위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요.

저번 주에는 김수영의 시를 함께 읽었는데요, 저는 김수영의 시도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산문을 좋아해요. 시에서는 날카롭고 강인한 시인의 정신을 단박에 만나서 벅찬 기분이 든다면, 산문에서는 보다 긴 호흡으로 김수영의 사유와 사상에 천천히 스며들며 동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수영의 산문을 읽다 보면 너무 솔직담백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어느 문장에서 깨달음을 얻고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빠지기도 해요. 오늘 소개한 글처럼요!

김수영의 산문을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은 부디 『김수영 전집 2』에서 1부 ‘일상과 현실’의 몇 꼭지만이라도 꼭 읽어 보길 권해요. 저만 알기는 아까운 좋은 글들이 많이 있거든요. 이 레터를 읽는 독자분들도 시인 김수영을 넘어서 김수영의 작품 세계를 느끼고 즐겼으면 해요. 

마케터님의 코멘트를 읽고 저도 또 한번 김수영 산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어요.  작품을 막론한 거침없는 비평과 ‘밀고 앞에 꼼짝할 수 없다’라는 솔직함에 속이 시원해지지요. 권위에 예민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태도에서 시인의 문학론이 출발하기도 하고요. 소개해 드린 글은 『김수영 전집』 2권의 3부 ‘시론과 문학론’에 수록된 한 편인데요, 마케터님이 추천해 주신 1부 ‘일상과 현실’에는 한국 전쟁 시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경험과 과음한 다음 날의 기록, 글 쓰고 번역하며 먹고사는 생활인으로서의 고독을 다룬 글들이 실려 있어요.  내년 초에는 김수영의 산문 중에서도 그의 문학론을 드러내는 글들을 묶은 『시여, 침을 뱉어라』 가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될 예정인데요. “김수영을 담은 책이 아니라 김수영이 보려 했던 문학을 담은 책”이 될 거라는 김수영 전집의 편집자의 말에 솔깃해져 내년을 기다리고 있어요.

『김수영 전집』 세 번째 개정판은 김수영 시인의 동생이자 현대문학 편집장이었던 김수명 선생이 편집한 1981년판과 2003년판 전집, 엮은이인 이영준 교수가 2009년 펴낸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시인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비롯해 오랜 시간 김수영 연구자들이 밝혀낸 새로운 사실들을 반영하여 정본 확정 작업을 진행했다. 2003년 판본의 크고 작은 오류들을 바로잡았고 지금까지 발굴된 작품을 수록했음은 물론 시인이 공개하지 않은 미발표 시와 미완성 초고 시까지 더해 김수영 작품을 총망라했다. 전반적인 편집 체제를 수정하고 시각적 자료를 풍성히 하여 독자들에게 보다 생동감 있고 편리한 독서를 제공하게 된 것도 기존 판본과 달라진 점이다.
1981년 초판 출간 이후 각각 63쇄(시), 47쇄(산문)를 중쇄하며 문학 전집으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수영 전집』은 전집 출간과 같은 해 제정되어 젊은 시인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는〈김수영 문학상〉과 함께 한국 현대시사의 기념비로 자리 잡았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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