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내 집을 꾸밀 이는 누구인가?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19세기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를 소개해 드립니다. ‘장식과 범죄’라는 말의 숨은 뜻은 ‘장식과 범죄는 동일하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파격적인 주장은 화려한 장식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증명하려 했던 황족과 귀족들에게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보았던 당시 예술의 경향에도 영향을 미쳤고요.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이 글은 로코코 양식, 바로크 양식 등 화려한 장식으로 무장한 채 ‘폭군같이 구는 방’에 질렸다고 선언하며, 실제 사는 이들의 삶에서 출발한 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어요.
최근 글에서 나는 정말 비정통적인 주장을 했다. 고고학자도, 장식가, 건축가, 화가, 조각가도 우리의 집을 꾸며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 그럼 대체 누가 그것을 해야 한단 말이냐고? 아주 간단하다. 우리 각자가 자기 집의 장식가가 되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아한 양식’의 집에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양식’, 따옴표로 강조한 이 양식은 전혀 필요 없다. 대체 이 양식이 뭐란 말인가? 이것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내 생각에 모든 성실한 주부는 우아한 양식이 뭔지 물을 것이고, 최고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협탁’ 위에 사자 머리가 달려 있고, 이 사자의 머리가 소파, 장롱, 침대, 안락의자, 세면대, 한마디로 방에 있는 모든 대상에 똑같이 장식되어 있으면, 이 방은 우아하다고 할 수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장인 여러분, 귀하들은 솔직히 그런 무의미한 생각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기여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자 머리뿐만이 아니다. 기둥, 둥근 손잡이, 난간도 항상 모든 가구에 억지로 짜 맞추어져, 때로는 길어지고 때로는 짧아지고, 어떤 때는 두꺼워졌다가 어떤 때는 얇아졌다. 

 

그런 방은 가여운 방 주인에게 폭군처럼 군다. 이 불행한 자에게 저주를! 그가 감히 직접 뭔가를 사들이려는 용기를 낸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가구들은 옆에 다른 가구가 있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아도 절대 그것을 놓을 수가 없다. 집을 바꾸었는데 이 새집의 방들이 이전과 똑같은 크기가 아니라면, 우아한 양식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렇게 되면 아마 옛 독일식 장식용 안락의자는 푸른색 로코코 살롱에 놓아야 하고, 바로크 양식 장롱은 엠파이어 양식의 회의실에 갖다 놓아야 할 것이다. 끔찍하다! 
이와는 달리 어리석은 농부나 가난한 노동자 혹은 독신 여성은 얼마나 편안한가. 그들은 이런 걱정이 없다. 그들은 방을 양식 있게 꾸미지 않았다. 하나는 거기서 왔고, 다른 것은 저쪽에서 왔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사람들이 미적 감각이 많다고 생각하는 그 화가들은 우리의 화려한 집은 제쳐 두고 늘 어리석은 농부, 가난한 노동자와 독신 여성의 집 내부를 그리지 않는가. 어떻게 그런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배웠던 대로, 우아한 집만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가들이 옳았다. 연습되고 훈련된 눈 덕분에 삶의 모든 외적인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날카로운 눈을 가진 그들은 우리의 우아한 집의 헛됨, 교만, 낯섦, 부조화를 항상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이런 방들에 어울리지 않고, 방들은 이런 인간들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건축가, 장식가는 일을 맡긴 사람의 이름만 알 뿐이다. 그리고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이 방들을 수백 번이나 돈을 주고 산다고 해도, 이 방들은 여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이 방들은 항상 이 방을 생각해 낸 사람의 정신적 소유물이다. 따라서 방들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이 방들에는 어리석은 농부, 가난한 노동자, 독신 여성의 방에서 발견되는 어떤 것이 부족했다. 즉 친숙함이 부족했다. 

 

다행히 나는 우아한 집에서 자라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집도 달라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기에 그 탁자, 완전히 정신없고 뒤죽박죽인 가구, 끔찍한 금속물이 달린 잡아 빼는 탁자가 있다. 하지만 우리 탁자, 우리 탁자였다! 그대들은 아는가, 이것이 무슨 뜻인지? 그대들은 아는가, 우리가 얼마나 멋진 시간을 여기서 보냈는지? 등잔이 타오르면! 어린아이였을 때 저녁이면 나는 정말 이 탁자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항상 야경꾼의 나팔 소리를 흉내 내었고, 나는 놀라서 어린이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탁자! 그리고 그 위에는 잉크 얼룩이 있었다. 누이 헤르미네가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 잉크를 쏟았다. 그리고 거기 부모님의 사진들! 꼴사나운 사진틀! 하지만 아버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준 결혼 선물이었다. 그리고 여기 구닥다리 안락의자! 할머니 살림 중에서 남은 유물이었다. 그리고 여기 수놓인 슬리퍼. 그 안에 시계를 걸어 놓을 수 있다. 누이인 이르마가 유치원에서 만든 것이다. 모든 가구, 모든 물건, 모든 사물이 이야기를, 가족의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집은 절대 완성되지 않았다. 그 집은 우리와 함께 발전했고 우리는 집 안에서 발전했다. 확실히 집 안에는 어떤 양식도 없었다. 이 말은 낯선 양식, 오래된 양식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집은 하나의 양식을 갖고 있었다, 거주자의 양식, 가족의 양식을 말이다. 

시대가 우아한 양식을 점점 더 강제적으로 요구하자(모든 지인들은 이미 옛 독일식으로 집 안을 꾸몄다. 그리고 이때 사람들은 뒤처져 있을 수는 없었을 게다.) 당시 사람들은 오래된 잡동사니들은 밖으로 내던졌다.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잡동사니, 그러나 가족에게는 성스러운 물건인 것들을. 남은 것은 실내 장식가의 몫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것에 질렸다. 우리는 다시 우리 소유의 네 벽 안에서 주인이 되려 한다. 우리가 미적 감각이 없다고, 좋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미적 감각 없이 집 안을 꾸밀 것이다. 우리가 미적 감각이 있다면 더 좋다. 우리는 이제 더는 우리 방이 우리에게 폭군처럼 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구입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씩하나씩 필요한 대로, 마음에 드는 대로. 
 
우리 마음에 드는 대로! 그렇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구석구석 뒤지며 찾았던 그 양식, 우리가 언제나 집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그 양식을 얻을 것이다. 똑같은 사자 머리에 좌우되지 않으며, 미적 감각에 따라, 내 입장에서 본다면 한 인간, 한 가족의 몰취미에 좌우되며, 그에 따라 형상화된 양식을 말이다. 똑같은 공통의 끈, 공간 속의 모든 가구를 서로 엮는 그 끈은 가구 소유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 소유자가 특히 색상 선택에 있어 뭔가 급격하게 앞서 간다고 해도, 여전히 나쁠 것은 없다. 가족과 함께 성장한 집은 뭔가를 견뎌 낼 수 있다. ‘우아한’ 방에는 그것에 속하지 않는 단 하나의 장식품만을 넣어도 방 전체가 망가진다. 그러나 가족의 공간에서 그 장식품은 곧바로 완벽하게 조화될 것이다. 그런 방은 바이올린과 같지 않은가. 바이올린은 연주가 가능하고, 그런 방은 거주가 가능하다. 
거주용이 아닌 모든 방들은 당연히 이런 생각들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욕실과 화장실은 배관공에게, 부엌은 적합한 전문가에게 맡길 것이다. 손님맞이, 잔치, 특별한 기회를 위해 사용하는 방, 그런 방들은 완전히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길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건축가, 화가 혹은 조각가와 실내 장식가를 부른다. 모두는 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건축가를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정신적 유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유대는 거주를 위한 공간에 충분하지는 않다. 

늘 그랬다. 왕도 그 자신과 함께, 그 자신이 있음으로써 완성된 방에서 살았다. 그러나 자신의 손님들은 궁전 건축가가 만든 방들에서 맞이했다. 정직한 신하들이 금으로 장식된 방들을 지나 안내될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을 것이다. “아, 좋구나! 나도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있다면!” 정직한 신하는 왕을 흰 담비 모피의 보랏빛 외투를 입고 손에는 홀을 들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어슬렁거리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정직한 신하들이 부자가 되자마자 곧바로, 그들이 잘못 생각한 이런 왕의 방들을 마련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직까지 보랏빛 외투를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을 못 본 것이 훨씬 놀랍다. 
놀랍게도 우리는 차츰 왕이 소박하게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때 갑작스러운 퇴각이 일어났다. 소박함이 가장 중해졌고, 그것은 연회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막 퇴각하려고 할 때, 다른 나라에서는 다시 전진하려고 했다. 우리의 장인들이 정말 기꺼이 믿고 있듯이, 우리는 이 퇴각을 면할 수가 없다. 취향과 변화에 대한 흥미는 항상 연관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좁은 바지를 입고, 내일은 넓은 바지를, 모레는 다시 좁은 바지를 입는다. 옷 만드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넓은 바지의 시기를 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아니다! 좁은 바지가 다시 마음에 들려면 넓은 바지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화려한 연회장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소박한 연회장이 유행하는 시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장인들이 소박함을 빨리 극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즉 소박함을 승낙하는 거다. 
 
 
 
─ 아돌프 로스, 이미선 엮고 옮김, 『장식과 범죄』
「로툰데의 인테리어」 60~65쪽 중에서

이 글이 발표된 190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양식 있는 사람들의 집 꾸미기가 어떤 지경이었길래 이토록 격정적인가요.  “사자 머리” “흰 담비 모피” “바로크 양식 장롱”으로 상징되는 “양식(Stil, style)”이란 20세기 초에는 그토록 낡고 뻔한 만큼 억압적이게 느껴졌나 봐요. 저는 아돌프 로스가 반대하는 양식에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니멀리스트의 인테리어가 곧 정형화된 브랜드들 사이에서 온갖 물품을 사들이는 일을 뜻할 때, 그 집에는 얼룩진 탁자, 분홍색 고무장갑, 값싼 슬리퍼가 놓일 자리는 없는 거잖아요.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역시 ‘폭군과 같을’ 수 있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한때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매혹되었는데요, 제 생활 방식에 맞게 방의 혼란에 눈감았더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거주자의 입장과 선택을 중시하면서도 욕실은 배관공에게, 부엌은 적합한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아돌프 로스의 태도가 좋았어요. 한편 물건들이 유행에 따라 빠르게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와중에, 시간이 흘러 쓰는 이의 습관이 각인된 물건들에 대한 옹호가 눈에 들어오네요. 

19세기 장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 시대를 알리는 건축을 정의한 현대 디자인의 고전
 
1910년 오스트리아 빈에 양복점 건물이 하나 세워졌다. 이 건물에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창문을 장식하는 돌림띠조차 없어, 사람들은 “눈썹 없는 집”이라고 불렀다. 눈에 거슬리는 이 건물을 보지 않으려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양복점 쪽으로 난 궁전 창문을 죄다 막으라고 지시했다. 이렇듯 시끄러운 건축을 선보인 설계자는 아돌프 로스였다. “장식과 범죄”(1908)라는 유명한 문구도 그에게서 나왔다. 언뜻 관계없어 보이는 두 단어의 단순한 연결로, 이 오스트리아 건축가는 시대를 뒤흔들었다. 이 말 뒤에 숨은 뜻은 ‘(장식과 범죄)는 동일하다’는 거였고, 장식을 권력의 증명으로 삼아 온 황족과 귀족, 나아가 예술을 유미의 극단으로 끌어올린 유겐트슈틸과 아르누보 경향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19세기 유럽의 과잉된 장식의 시대를 지나 탈장식을 필두로 한 20세기 서구의 모더니즘 디자인을 통과하여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주위를 둘러보면 맥시멀리즘인지 미니멀리즘인지 혼미해진다. 다만 노동력과 비용, 자연을 남용하는 범죄를 스스로 범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일반이다. 가볍거나 무거운 우리의 각오 앞에 『장식과 범죄』는 마땅하나 고리타분할 틈 없는 과격한 길잡이로서 다시 한번 찾아왔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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