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60년 경력자의 일 이야기

 

 

장인은 타협을 잘한다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한편》 5호 ‘일’과 함께 노동과 시간을 탐구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은 60년 경력의 장인을 모셨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경력의 소유자는 어떻게 일할까요? ‘이거 아니야’ 하면서 다 된 도자기를 깨뜨리는 까다로운 권위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무엇보다 타협을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분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보이지 않는 영웅’이라는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콘서트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 명장입니다.

어렸을 때 지게를 지어 봤는데, 절대로 힘만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 없이 지면 기우뚱기우뚱하다가 넘어진다. 농부들이 지게로 크게 한 짐씩 지고 가면 힘이 좋아서 잘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게 지는 일은 기술이다. 양쪽에 물동이를 매단 지게라면 물동이 흔들림에 리듬을 잘 맞춰야 걸어 나갈 수 있다.
이처럼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더구나 전문가가 되려면 남다른 노력과 꾸준한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이렇게 단순한 진실을 스스로 체험하고 확실히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에는 나도 잘났다고 기고만장했다. 피아노 조율을 잘한다고 칭찬받으니까 내가 굉장히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율을 하면 할수록 점점 한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잘난 체를 안 한다. 나이 팔십이 된 지금도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 낸다. 예전에 터득했다가 잊고 있었던 기술의 우수성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조율 기구 중에 튜닝해머라는 것이 있다. 피아노의 현이 감기는 핀을 조이는 일종의 렌치다. 초년생일수록 튜닝해머를 돌릴 때 고생하는데 돌리다 보면 너무 돌아가고, 풀다 보면 아주 풀려서 다시 돌리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후배들에게 이 기술에 대해 설명할 때, 이건 감각으로 하는 일이라 말로 하기는 쉽지만 그 감각을 완전하게 손으로 옮기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경험을 강조한다.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선생님이다.
조율사에게는 귀에 들리는 소리를 공구 다루는 손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시점에서 현을 풀어야 되겠다 또는 감아야 되겠다 하는 손의 감각과 소리를 듣고 있는 귀의 감각을 연결하는 것이다. 귀와 손을 서로 연결하여 자유자재로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2006년에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미켈레 캄파넬라(Michele Campanella, 1947년~ )가 자기 조율사를 데려온다고 신문에 났다.
 
이건 좋은 기회다. 세계적인 수준의 조율사가 따라오지 않겠는가. 뭔가 배울 기술이 있을 테니 참 잘됐다. 그 조율사가 와서 할 일이 없으면 내가 보고 배울 게 없으니까 좀 비신사적이기는 하지만 일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연주회 전날 밤에 주최 측에서 전화가 왔다.
 
“조율사가 안 온답니다. 조율을 좀 해 주셔야 되겠어요.”
 
아니 이런! 내가 판 구덩이에 내가 빠졌다.
 
피아니스트가 와서 피아노를 쳐 보더니 이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 저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려는지 해 보라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액션을 꺼내 놓고 바늘로 음색을 맞춘 뒤 집어넣었다. 다른 것과 비교해서 고르게 되었는지 물어보니까 됐단다. 그러면서 이쪽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 가서 쉬고, 내가 끝나면 연락할 테니 그때 와서 확인해 봐라.” 했더니 안 가겠다고 한다. 못 미더운지 거기 서서 다 끝날 때까지 보겠다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뚜껑 받침대 쪽에 꼬박 서 있는 것이었다. 거기서 들으면 가장 잘 들린다면서, 녹음할 때는 마이크를 그곳에 세운다고…….
 
그때 보이싱을 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내지 못하면 예술의전당도 나 개인도 망신이고 국가 망신이 아니겠는가. 한국에 갔더니 피아노 조율도 제대로 해 놓지 않아서 형편없이 연주했다고 돌아가서 떠들 것 아닌가. 내가 조율을 잘 못하면 피아니스트도 “서울 거기는 가면 안 되는 동네야.” 하리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했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왔을 때 그 사람이 흡족할 만큼 악기를 만들어 낼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나한테 언제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르니 미리 대비해야 되는 것이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유비무환을 강조한다. 지금은 꼬마들이 치는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지만, 언제 어떤 중요한 일이 갑자기 주어질지 모르니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흔히 스타인웨이 피아노니까 소리가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브랜드의 피아노라도 잘못 조율하면 잘 조율된 이름 없는 피아노보다 못할 수 있다. 피아노에 걸맞은 수준 높은 기술이 꾸준히 제공되어야 그 피아노가 제값을 하는 것이다.
 
캄파넬라는 모든 음을 확인해 보고 잘됐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리허설을 한 시간 정도만 할 예정인데 새로 손볼 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리허설을 마치고는 흑건 두 개를 지적하면서 약간만 더 음색이 부드러웠으면 좋겠다고 하는 주문이 있었고, 모든 상황은 완벽하게 끝이 났다. 캄파넬라는 당신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는 조율사를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 처음 오는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일본 여러 도시를 투어 하다가 한번 들러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가면 제대로 된 피아노가 있나? 조율이나 제대로 할 사람이 있나? 하고 대개 걱정하면서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미국의 음악가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 1949년~ )은 처음 내한할 때 조율사 앞으로 네 장이나 되는 팩스를 보냈다. 건반 번호를 쭉 써 놓고 몇 번 건반은 어떻게 해야 하고, 몇 번 건반은 어떤 소리가 나게 조율해 놓으라고. 그것을 읽었다고 해서 지금까지 없던 기술이 하룻밤 사이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이거 필요 없어.” 하고 딱 접어 놨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할 뿐이다. 그런데 연주 전날 밤 10시에 피아노 앞에서 미팅을 하겠단다. 제대로 됐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나는 조율을 다 해 놓고 기다렸다.
 
자리에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조지 윈스턴이 이렇게 저렇게 피아노를 쳐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조율사가 누구입니까?”
 
나는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안 했으니 큰일 났다고 조마조마한데, 그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오! 원더풀, 뷰티풀.”
 
조지 윈스턴은 한 회 연주할 때 조율 요청을 세 번씩이나 한다. 리허설 전에 한 번, 리허설 후에 또 한 번, 인터미션에 다시 한 번. 이렇게 하다 보니 한국에 오면 매번 만나게 되어서 십 년 동안 우리는 서로 안부를 묻고 반가워한다. 조지 윈스턴은 조율에 까다로운 것만이 아니고 조율이 변하지 않게 연습하는 배려도 한다. 리허설 때 조명을 받으면 조율이 달라진다고 뚜껑을 닫고 연습한다. 연습 중에 또 연주 중에 어긋난 음을 발견하면 그 음에 고무 조각을 놓아 그 음을 체크해 달라는 배려를 한다. 무대 위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피아노 페달 밑에 푹신한 카펫을 깔고 뒤꿈치 장단을 치면서 연주한다. 발뒤꿈치 장단 때문에 소리가 크게 날까 봐 신발을 신지 않는 것 같다. 고무 조각으로 표시한 음들은 어긋난 음이 아닌 것도 있었는데 그것은 조율사가 아니면 어긋난 음으로 오인할 수 있는 줄 자체의 잡음이다.

평균율 조율이란 민주주의에 빗대서 설명할 수 있다. 서로 타협하여 음을 결정하는 조율법이기 때문이다. 한편 순정률 조율은 몇 개의 화음을 아름답게 하면서 다른 음에서 불만이 생기는 조율법이다. 오늘날 99퍼센트가 채택하는 평균율 조율은 모두가 아름답기 위해 서로 똑같이 양보해서 음을 결정한다.
 
한 옥타브는 아래로 완전 4도와 위로 완전 5도, 또 아래로 단3도와 위로 장6도로 나누어진다. 조율사는 음정 간에 왕왕거리는 소리, 즉 맥놀이라는 것을 듣고 조율을 한다. 양편 모두 서로 섭섭하지 않게 양보해서 같은 느낌의 화음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귀의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옥타브에서도 기분 좋은 맥놀이를 만들어 음악에 생동감이 생기도록 하는 일이다. 조정을 할 때도 건반을 깊게 하면 줄을 때리는 해머의 거리는 좀 더 멀게 해야 하고, 건반을 얕게 하면 타현 거리를 그에 알맞게 가깝게 해서 서로 타협한다. 음색 음량을 다루는 정음 작업에서 역시 저음의 음량이 중음 고음에 비해 너무 크거나 작지 않게 하고, 저ㆍ중음에 비해 고음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게 한다.
 
이렇게 서로 타협하는 민주주의식의 기술을 발휘해서 아름다운 음이 만들어져 나온다. 조율사는 이 타협의 기술 수준에 따라 일류일 수도 있고 평범한 조율사일 수도 있다. 조율만 타협일 수 없다. 연주도 타협이다. 특히 앙상블이나 합창에서 혼자 큰 소리로 소리 지르면 음악의 균형이 깨지듯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식 타협으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여럿이 모여 회의를 할 때는 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양보 없이 떠드는지 알 수 없다. 그 사람들은 조율도 그렇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치에서도 조율이라는 표현을 더러 쓰는데 잘되어 가기를 바란다.
   
 
─ 이종열, 『조율의 시간』 중에서
 
 

조율을 하는 손의 감각을 많은 경험을 통해 익히는 것, 그리고 손과 귀의 감각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어요. 장자가 이야기한 ‘득수응심(得手應心)’이 생각나는데요. 일흔 넘은 수레바퀴 깎는 기술자가, 글 읽던 나리에게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그 옛 성현의 글은 그냥 찌꺼기일 뿐이라고 일갈했죠. 수레바퀴 깎는 기술의 핵심인 손으로 느끼는 이 감각을 내가 아들에게 말로는 전수할 수 없는 것처럼, 글이나 말로 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요. 그럼 글을 읽지 말라는 걸까요?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으니, 다만 그냥 ‘읽는 것’과 ‘읽고 변화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것’은 다르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싶어요.  

맞아요, 열려 있는 마음! 처음 방문할 때 호랑이처럼 엄격한 장인을 만날까 봐 떨었던 편집 후기에도 그런 이야기를 담았어요. 80살이 되니 ‘이제 조금 쓸 만하다’고 자평하는 저자는 새로 배울 게 있는지 계속해서 신간서를 찾고, 까다로운 예술가들의 요구에 최선을 다해 부응하고, 조율 도구를 개선할 방안을 끊임없이 궁리하는데요. 그런 힘든 조율의 시간을 거쳐서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표현처럼 ‘빛이 나는 소리’가 만들어지나 봐요. 책 속에 세계적인 거장들과 일하는 흥미진진하고 기막힌 일화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조율은 예술이며, 예술에는 끝이 없다! 서양 고전 음악의 대표적인 악기인 피아노를 조율하는 일에서 세계 수준에 오른 한국인이 있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예브게니 키신, 라두 루푸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스타인웨이, 도이치그라모폰의 소리 기술자들이 그에게 경탄을 표한다. 바로 서울 예술의전당 전속 조율사로 재직 중인 대한민국 조율명장 1호 이종열이다. 64년 경력을 지닌 이종열 조율사의 무대 뒤 이야기인 『조율의 시간』은 작은 것에 충실하여 태산을 이뤄 낸 시간을 담고 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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