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마를 부끄러워한 적 있나요?

 

흔들리는 꽃망울에게 보내는 정여울 작가의 따뜻한 인문학 편지, 정여울의 블루밍 레터입니다. 엄마를 부끄러워한 적 있나요? 나의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싫어하게 되는 것은 성장의 다른 모습일까요? 지난주에 이어 『종이 동물원』을 함께 읽는 이번 편지에서는, 부정당하는 이의 짙은 슬픔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진  이승원
아파하는 자의 편에서
때로는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 이 소설은 매우 정교하게 잘 짜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이 작가가 과연 작중 인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수많은 의문점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왜 아들이 어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편에 서지 못했는가. 아버지는 비록 결혼 정보회사에서 제공한 ‘신붓감 카탈로그’에서 어머니를 처음 만났지만, 어머니를 분명 사랑했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어머니가 ‘영어를 잘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그 거짓말에 항의하여 신붓감 소개비를 환불받거나 어머니를 아예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손쉬운 선택지를 버리고, 문화와 환경과 국적이 전혀 다른 어머니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했으니까. 어머니 또한 아버지를 단지 ‘탈출의 해방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이들의 사랑과 결혼은 아들 잭의 성장 과정에서 위기를 맞는다. 아들이 ‘중국인 가정부 출신의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크라는 백인 아이가 잭의 외모와 중국식 장난감 ‘라오후’(엄마가 만들어준 종이호랑이)를 비웃기 시작하자, 잭은 어머니를 증오함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를 푼다. 아직 자존감이 여물지 않은 아이로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버지가 ‘지혜로운 중심’을 잡아야 하지 않았을까.
엄마의 엄마다움을 밀어내고
엄마의 중국어와 아빠의 영어 사이에서 훌륭한 ‘바이링구얼’로 자라고 있었던 잭은 불현듯 어머니의 세계, 중국어의 세계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엄마가 질문을 한다. ‘쉐샤오하오마?’ (학교 잘 갔다 왔어?) 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자신은 엄마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중국인 엄마의 흔적을 거부하고 싶어진 것이다. 아이는 아빠에게 묻는다. 내 얼굴이 ‘짱깨’처럼 생겼느냐고. 아빠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고민에 잠긴다.
‘짱깨’가 뭐냐고 중국어로 묻는 엄마에게 아들은 쏘아붙인다. 영어로 말하라고! 엄마는 당황한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피망을 넣고 볶은 오향장육 요리를 밀쳐내며, 우린 이제 미국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우긴다. 엄마의 면전에서 엄마의 문화를, 엄마의 언어를, 엄마의 엄마다움을 부정하는 것이다.

엄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 사이에서 훌륭한 ‘바이링구얼’로 자라던 아이는 
불현듯 엄마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이제 미국인처럼 살아
아빠는 이때 아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했다. 너를 ‘짱깨’라고 말한 그 미국인 아이, 마크가 잘못했다고. 사람을 피부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마크의 부모를 만나서라도 아이의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기를 부탁했어야 하지 않을까. 왜 부당하게 타인을 놀리고 괴롭히는 사람의 일방적 시선에 손을 들어주고, 억울하게 놀림을 받는 사람의 아픔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가.
다른 집들도 가끔 중국 음식을 먹는다고 타이르는 아빠의 논리는 빈약하고, 비굴하다.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바라보면서도, 강자들의 논리를 택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미국 땅이니까, 미국의 규칙을 따르라는 암묵적 종용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엄마에게 ‘미국인처럼 살기’를 강요한다. 요리책을 사다 주겠다고, 미국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아빠는 아이의 눈을 피하고, 한 손으로 엄마의 어깨를 그러쥐며 이제 미국 음식을 만들라고 타이른다.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려면
엄마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계속 중국어로 말한다. 음식이 맛이 없냐고. 나의 아들, 어디 아픈 것이 아니냐고. 아이는 엄마에게 윽박지른다. 영어로 말하라고! 아빠는 이제 완전히 아들의 편을 든다. 그러면서 엄마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아들에게는 영어로 말하라고. 당신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지 않았느냐고. 엄마는 절망한다.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또다시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중국어로 말하면 아들이 화를 낼 것이고, 영어로 말을 하자니 영어가 아직 어렵고 낯설기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양쪽에서 공격당하는 이 상황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버지는 엄마를 부드럽게 타이르려고 하지만, 그 타이름은 위로이기보다 명령조다.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너무 오냐오냐했던 것 같다고. 잭은 이제 다른 미국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엄마의 정체성을 부정함으로써 아들을 순도 높은 미국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버지의 목표였던 것이다. 오냐오냐하다니, 그동안 아내를 어린아이 취급했다는 말인가.
영어는 서툴지만, 중국어로 자신의 온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엄마는 비로소 남편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신이 사랑(love)을 영어로 말하면 그 말을 단지 입술에서 느낄 수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사랑을 중국어로 ‘아이(愛)’라고 표현하면, 그 마음을 가슴에서 느낄 수 있다고. 이렇게 온몸으로 ‘나, 중국인, 있는 그대로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사람’을 표현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그런 훌륭한 아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여긴 미국이라고. 당신도 이제 미국인으로 살라고.

엄마가 만들어준 휘황찬란한 종이 동물원은 기쁨 그 자체였지만,
아이는 아빠와 함께 이제 엄마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 
 
모든 것을 부정당한 짙은 슬픔
이때 세계의 중심축은 완전히 아버지의 쪽, 미국인의 편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이제 더는 아들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휘황찬란한 종이 동물원의 환상적인 기쁨 속에 빠지려 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미국 남자아이, 마크가 가진 스타워즈 장난감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결심한다. 아버지에게 진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잭. 이때 어머니의 억장은 또 한 번 무너졌을 것이다. 옳다구나, 기다렸다는 듯이, 스타워즈 인형 세트를 통째로 사주는 아빠의 행동은 정말 편파적이다.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아내의 언어와 아내의 눈동자와 피부의 색깔과 아내의 일생은 그토록 지워버리고 싶었단 말인가.

아이는 아빠가 사준 스타워즈 인형 세트를 애지중지하고, 엄마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준 추억 가득한 종이 동물원 세트를 다락에 숨겨버리고 만다. 미국인이 되기 위해 중국인 어머니의 사랑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를 ‘미국인답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아이를 엄마처럼 사랑이 넘치고 정겨움이 가득하며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철부지 아들 잭은 물론, 엄마를 그토록 사랑했던 아빠의 무조건적인 지지마저 잃어버린 엄마. 그녀의 앞에는 이제 얼마나 고통스러운 날들이 펼쳐질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당신의 눈동자, 당신의 피부 색깔, 당신의 언어, 당신의 당신다움’ 모두를 부정당한 엄마의 가슴 속에서는 얼마나 짙은 슬픔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을까.
 
ⓒ 정여울, 2021.
 다음 편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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