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일자리를 따라 움직이는 여자들

 

 

이스라엘에서 만난 두 사람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한편》 5호에 실린 인류학자 임안나의 글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기」를 살짝 공개할게요. 일자리를 따라 전 세계를 이동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야기예요. 필리핀에서 온 돌봄 노동자 루시, 한국에서 온 인류학자 임안나, 두 여성이 이스라엘에서 만난 기록이기도 하고요. 아직 읽기 전이시라면 지금 같이 읽고, 오늘 저녁 7시 30분 《한편》 5호의 웨비나에서 이야기 나눠요. 이미 잡지로 읽으셨다면 웨비나에서 어떤 질문을 더할지 생각하며 다시 읽어 보아도 좋겠어요!
독일 내 터키 이민자 가족을 다룬 영화 「나의 가족 나의 도시」의 주인공 후세인은 1960년대 말 전후 재건 사업으로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해진 서독으로 향하고, 가족재결합제도를 통해 터키에 있던 가족을 데려와 정착한다. 후세인 가족의 반세기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쉬의 희곡 「시아모 이탈리아니」를 인용한 자막으로 의미심장하게 끝난다.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주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냉전체제 종식 후 급속하게 전개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양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시장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는 국가 간 경제 불평등과 노동력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양극화된 글로벌 노동시장을 형성했다. 이주에서 귀환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 이주노동자는 ‘상품화된 노동력’으로 타자화되기 쉽다. 하지만 이주는 단순히 노동시장과 국가 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행위자와 그 관계의 연결망이 맞물려 이루어지는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중심에는 이주노동자가 있다.

나는 대표적인 돌봄 인력 수용국 중 하나인 이스라엘에서 필리핀 돌봄노동자에 관한 인류학 연구를 수행했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이스라엘은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95년 필리핀 정부와 협정을 맺고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노인 돌봄 분야에 채용하고 있다. 내가 텔아비브 대학교 박사과정생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했던 2008년 12월에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루시도 필리핀에서 온 돌봄노동자였다. 이스라엘로 오기 전 한국에 취업 지원서를 낸 적이 있다는 루시는 가끔 나를 텔아비브의 네베셰아난(Neve Sha’anan neighborhood, 이스라엘 최대의 이주민 집거지)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에 초대했다. 나는 머지않아 루시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네 곳의 아파트에 살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필드워크(fieldwork)를 진행했다.
인류학의 필드워크는 연구자가 연구 대상 집단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들어가’ 참여 관찰과 심층 면담을 주로 활용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이다. 나는 루시를 통해 입주한 아파트에서 필리핀 이주 여성들의 삶에 내부자로 참여하는 한편 거리를 둔 관찰자로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며 2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이 글은 내가 이스라엘에서 우연히 루시를 알게 된 지 12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행하는 루시라는 인물에 관한 회고인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한 필리핀 이주 여성의 삶을 통해 글로벌 노동 이주의 단면을 엿보려는 시도다.

카슬과 밀러는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인간의 이동이 일상화된 동시대를 ‘이주의 시대’라 명하고 전 지구화, 가속화, 정치화, 다양화, 여성화를 그 특징으로 꼽는다. 특히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는 21세기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지되는 지배적인 이주 흐름이다. 과거 여성의 이주는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남편을 따라 서독으로 갔던 후세인의 아내 파트마처럼 주로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따라가는’ 형태의 동반 이주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생계 부양자로서 독립적으로 이주하는 여성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저개발국 여성들이 기존에 ‘여성의 일’로 취급되던 가사·돌봄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국으로 이동하는 성별화된 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이주의 여성화 현상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이다. 1960년대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필리핀 정부는 해외 노동시장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면서 적극적인 인력송출 정책을 펼쳐 왔다. 1970년대 오일붐 시기에 남성들이 주로 건설노동자로 걸프 지역에 갔다면, 1990년대부터는 한국,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같은 아시아 신흥산업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이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공식적인 노동의 범주 밖에 있던 돌봄·가사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성이 전체 이주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루시는 임금 수준과 일자리 기회의 측면에서 여성에게 특히 불리한 취업난을 피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난 수많은 필리핀 여성 중 한 명이다. 루시의 첫 이주국은 타이완이었다. 대학 졸업 후 루시는 동창과 함께 타이완의 공장에 단순기능직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5년간 일했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되자, 필리핀으로 돌아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작은 식당을 열었다. 운영난에 1년도 못 버티고 문을 닫은 뒤에는 한국 공장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남성을 선호하는 제조업 분야에서 30세 여성은 경쟁력이 없었다. 루시는 임금 수준이 높은 공장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결국 여성을 선호하고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 등의 직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부터 주로 제조업 분야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한국은 비교적 높은 임금, 입주 근무가 대다수인 다른 나라들과 달리 명확히 정해진 근무시간 등의 조건 때문에 선호되는 목적지 중 하나다. 하지만 주로 남성을 선호하는 데다 채용 조건이 까다롭다. 한국에서도 돌봄·가사노동력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중국 동포 출신 이주 여성들이 주로 그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따라서 필리핀 여성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홍콩, 싱가포르 등 가사노동자를 주로 고용하는 나라로 이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80년대부터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홍콩은 매우 낮은 월급, “가정부(nanny)”라는 부정적인 직업 인식 때문에 선호되는 목적지는 아니지만,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할 뿐 아니라 취업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이주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필리핀 여성이 쉽게 갈 수 있는 목적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루시는 “낮은 임금을 받고 가정부로 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돌봄노동자를 고용하는 캐나다나 이스라엘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루시는 우선 영주권 취득 기회가 열려 있는 캐나다 취업을 준비했지만, 돌봄노동 경력과 재정증명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에 가로막혀 차선책으로 이스라엘행을 택했다. 이스라엘은 “간호사와 가정부 사이에 낀 준 전문직”인 돌봄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곳이면서 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한 경유지로서 최적의 장소였다. 현지조사 기간에 내가 이스라엘에서 만난 필리핀 돌봄노동자는 대부분 30~50대의 여성이었다. 그중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20대였던 여성 중에는 루시처럼 이스라엘로 오기 전 타이완이나 한국의 공장에서 일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홍콩, 싱가포르, 중동 지역에서 저임금 가사노동자로 일했다.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돌봄노동이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임금노동으로 빠르게 ‘상품화’되면서 돌봄노동을 둘러싼 기존의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 돌봄의 대상인 노인과의 관계나 근무 환경에 따라 경험하는 돌봄노동의 가치는 달라지겠지만, 돌봄노동자들은 대부분 돌봄노동에 대해 긍정적인 직업 인식을 표출하는 한편 출산과 양육의 경험이 부족한 20대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자리라고 평가하며 ‘여성의 일’로 내면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다른 이주노동자 수용국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시 이주노동자에게 정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 돌봄노동 일자리는 이스라엘에 체류하는 동안에만 수행하는 임시직으로 여겨졌다.

루시는 필리핀의 높은 실업률, 성차별적 노동시장이라는 배출 요인과 높은 임금, 여성에게 개방된 일자리라는 흡인 요인에 이끌려 이스라엘을 목적지로 정했다. 하지만 루시의 이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주자 연결망(migrant networks)이다. 이주자 연결망은 송출국과 수용국에 있는 친인척, 친구, 사회 구성원 들을 이어 주는 사람 간 연결로 정의되는데, 이주와 관련된 정보나 지원의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이주를 발생시키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루시가 이스라엘 취업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이스라엘에서 돌봄노동자로 일하는 먼 친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이후 구체적인 취업 정보를 알아보던 중 고향 친구 라니를 통해 에디를 소개받아 5개월 만에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에디는 이스라엘에서 돌봄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라니의 사촌으로, 지원자를 이스라엘 에이전시와 중개하는 브로커다. 이스라엘 에이전시가 매개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이주하는 경우 입국까지 1년 이상 기다리거나 아예 취업이 안 될 가능성이 크지만, 에이전시와 연계된 에디 같은 브로커를 통하면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주할 수 있다. 사실상 에이전시는 이스라엘 에이전시와 브로커, 이주노동자로 이루어진 착취 구조의 정점에 있다. 에이전시는 브로커를 통해 이주노동자에게 1만 달러 정도의 불법 수수료를 요구하며, 브로커는 이 비용을 낼 만한 경제적 자본이 없는 지원자에게 이주 비용을 빌려주면서 이주를 성사시킨다. 이주노동자와 고용주를 매개하는 브로커는 특히 이주를 담보로 이주노동자에게 대출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신매매나 불법 거래의 매개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브로커 각자가 정하는 이자율이 무이자에서 고금리까지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모든 브로커가 ‘악덕업자’인 것은 아니다.
필리핀과 이스라엘 사이의 노동 이주는 공식적으로는 양국의 이주 정책과 에이전시에 의해 구조화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연결망이 합법과 불법, 공식과 비공식의 경계를 교차하면서 이주의 경로를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는 단순히 이윤 창출을 위해 이주자에게 이주의 기회를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에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이주 위험을 감소시키는 사회적 자본이자 이주연결망의 교점으로 기능한다. 루시는 비록 비싼 이자와 함께 빌린 돈을 갚아야 했지만, 에디가 친한 친구의 친척이며 동향 출신자라는 사실에서 신뢰감을 가졌으며, 자신의 이스라엘 이주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험난한 이주 여정의 ‘안내자’로 여겼다.

에디의 제안으로 지금은 루시도 중개 일과 돌봄노동을 병행하면서 필리핀–이스라엘 노동 이주의 연결망 구축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루시는 지원자를 찾아 에디에게 중개하고 수수료로 250달러를 받는 중간 브로커다. 브로커에게는 넓은 인맥뿐 아니라 이주 비용을 빌려줄 수 있는 경제적 자본이 필수 요건이다. 루시는 퇴근 후에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고, 주말에는 휴일이 없는 돌봄노동자를 대신해 일했을 뿐 아니라, 다른 필리핀 이주자들에게 국제전화카드, 필리핀에서 들여온 속옷, 화장품, 보험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경제 활동으로 모은 돈을 발판 삼아 중개 일을 시작했다. 룸메이트인 나도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루시는 일하러 다니느라 항상 바빴다.
루시는 고향 친구와 대학 동기, 친척, 친구, 친구의 친구 등 자신의 인맥이 미치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과거에 루시가 그랬듯이 지원자들은 이주 비용을 높은 이자에 빌려 써야 한다는 점에서 루시를 ‘착취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루시가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에 올 수 없었다.”라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루시의 역할은 지원자를 에이전시에 중개해서 고용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이주자가 이스라엘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함께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이주민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도록 도우면서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준다. 예컨대 루시는 자신이 ‘데려온’ 필리핀 여성이 입국하면 아파트로 초대해 파티를 열고 모두에게 소개했다. 이들은 대부분 루시 개인의 연줄로 얽힌 동향 출신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객’이 아니라 잠재적인 ‘친구’였다.
 최근에는 루시가 그동안 학비를 지원했던 동생 두 명도 이스라엘에 돌봄노동자로 이주했다. 평소 루시는 동생들이 노트북이나 도서비 명목으로 송금을 요청할 때마다 “외국에서 일하면 백만장자라도 는 줄 안다.”라며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베갯잇에 숨겨놨던 달러를 꺼내 송금소로 달려가곤 했다. 자신의 경제적 지원으로 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마침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뿌듯해했다. 루시는 그동안 보내 준 학비와 용돈을 동생들이 “갚는 건 기대하지도 않는다.”라고 했지만, 지금부터는 동생들이 부모님을 돌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조금은 덜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일반적으로 노동 이주가 가족 부양이라는 경제적 동기에 의해 추동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이주 동기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루시는 아버지의 병원비와 동생들의 학비 그리고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자신의 월급을 모두 필리핀 가족에게 송금했고, 자신의 생활비와 저축은 아르바이트와 중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충당했다. 송금으로도 모자라 틈만 나면 커다란 상자에 각종 생활용품과 옷가지를 가득 채워 가족과 친척에게 나눠 줄 선물로 보냈다. 하지만 정작 루시가 필리핀을 떠난 배경은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이유가 컸다. 루시는 “동생들과 달리 차별받으며 컸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집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 생계 부양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면서 집안에서 루시의 위치는 달라져 있다.
여성의 해외 이주는 주로 가족과의 물리적 단절이 초래하는 ‘초국가적 가족’ 형태의 등장이나 여성의 오랜 부재로 인한 ‘돌봄의 위기’ 담론 속에서 조명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이주자로서 살아가는 삶과 모든 경험이 반드시 필리핀에 있는 가족과 연관되어 있거나 경제적인 목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머무는 지난 12년 동안 루시도 생애 주기에 따른 변화를 겪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친구와 귀국 문제로 다투며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던 루시는 2017년 마침내 휴가를 이용해 결혼식을 하고 혼자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년 뒤 아이를 낳았을 때도 루시는 휴가를 이용해 아이를 필리핀에 데려다 놓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중산층 가정 출신의 안정적인 직업이 있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시가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버는 것이라거나, 친정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지속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래 해외에 체류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이주자의 삶을 경험하고 주체적으로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해 온 루시는 “필리핀으로 돌아간 후의 삶이 상상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루시는 돌봄노동자로 경력을 쌓고 재정 증명이 가능할 정도의 자본을 모으면서 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루시도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떠나야 하는 단기계약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루시가 가족 재결합의 가치를 우선시했다면 진작에 남편과 아이가 있는 필리핀에 정착했을 테지만, 그는 여전히 화상 전화로 가족과 대화하고 2년에 한 번 휴가를 이용해 필리핀을 방문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언젠가 루시는 바라던 대로 캐나다 취업에 성공해서 가족을 초청해 함께 살게 될 수도 있다. 캐나다 이주에 실패해 결국 필리핀으로 돌아가거나 다음 목적지를 물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에서 비롯된 루시의 이주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녀의 삶이 이 짧은 글에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 임안나,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기」,
《한편》 5호 ‘일’에서
 
 
 

필리핀, 이스라엘, 캐나다까지…… 읽으면서 머릿속에 세계지도가 그려졌어요. 이주 정책 아래 이주노동자들 간의 정치경제가 루시를 중심으로 보니 한눈에 이해되네요! 그런데 이야기를 여러 번 읽다 보니, 이주노동자와 수용국 정부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노동력을 불렀지만 도착한 ‘사람’들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 어떤 방식의 사회적 지원의 가능할지도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루시 이야기에 자꾸 고대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위업’이 겹쳐 보이곤 해요. 헤라클레스는 죄를 짓고 망명, 즉 살던 곳에서 떠남을 스스로 택합니다. 12년간 열 가지의 과업을 이루면 용서 받고 불멸하게 될 것이라 듣고는, 여러 곳을 떠돌며 놀라운 모험과 온갖 고생을 하고, 폭력적 사건을 행하기도 또 당하기도 하죠. 심지어 열 가지 과업 중 두 개는 무효라고 하여 두 가지 일까지 더해, 열두 가지 위업이 된답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약속대로 불멸하게 되었냐고요? 직접 한 번 읽어 보세요. 그의 신화는 사실 이 과정 자체니까요.

임안나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초국가적 노동 이주와 공간, 다문화정책과 시민권, 미등록 이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주말아파트와 공동체: 이스라엘 필리핀 노인돌봄노동자의 이주공간 형성에 관한 연구」, 「초국적 노동 이주와 이주인프라의 형성: 필리핀 돌봄노동자의 이스라엘 이주 사례를 중심으로」, 「경계 위의 삶: 이스라엘 내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체류 지위 변화와 경험」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편저)가 있다.

민음사
1p@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