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 순간의 첫사랑

흔들리는 꽃망울에게 보내는 정여울 작가의 따뜻한 인문학 편지, 정여울의 블루밍 레터입니다. 목요일 아침마다 『칠드런 액트』를 함께 읽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피오나와 아담은 사랑이었을까요? 저마다 고결하고 순수한 영혼들의 만남은, 때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하지요.  
 
사진  이승원

아담은 자신의 비극적인 첫사랑이 본의 아니게 그 사랑의 대상인 피오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아담은 피오나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지 말아 주기를, 피오나가 자신을 어린아이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해주기를 바라지만, 피오나는 주변의 평판과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아담이 아예 자신에게 접근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평생 내가 아는 이 작은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동굴 속의 외로운 왕자, 아담. 그는 타인의 시선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그의 행동에는 어떤 맹목적인 일관성이 있다. 그는 백혈병에 걸려 수혈이 급박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수혈을 거부한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그 신앙의 정체는,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담은 그 신앙마저 버리려 한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담은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는 존재에 한 번 사로잡히면, 그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 믿어버린다.

기차 안에서 아담이 보낸 편지를 읽는 피오나.
 

아담에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줄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종교적 신념에 묶여서 아들이 수혈을 받지 않고 죽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도 아이를 말리지 못한 부모. 아담에게 진정으로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던 부모를, 아담은 벗어나고 싶어 했다. 아담에게 사랑의 열정만이 아니라 사랑을 포기해야 할 때를 가르쳐주는 다정한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게다가 그 사랑의 대상이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그의 행복을 멀리서 빌어주는 성숙함을 가르쳐준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아담이 점점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려 할 때마다, 책이라는 장막을 찢고 책 속으로 들어가, 그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며 말을 걸고 싶었다. 아담, 네가 보내는 사랑의 노래가 그 사람에게 결코 가닿지 않아 괴로웠을 거야.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때조차도 사랑은 못 견디게 아름답단다. 네가 시작했던 사랑도 아름다웠지만, 네가 지금 끝내야만 하는 이 사랑조차도 아름다운 거란다. 먼 훗날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너는 단 한 번의 아름다움을 꽉 붙잡고 있는 거야. 그러니 후회하지 마. 그리고 꼭 살아야 해. 너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자격이 있어. 너는 더 아름다운 미래의 너 자신을 끝까지 지켜볼 권리가 있어.

하지만 나의 안타까운 염원은 아담에게 가닿지 않았다. 아담은 열여덟 살이 되는 순간, 이제 자신은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면서 다시 한 번 수혈을 거부한다. 이제 부모는 물론 법정도 아담을 말릴 권리가 없어져 버린다. 아담은 정말로 성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인이 된 아담은, 몇 달 사이 더욱 깊어져 고뇌가 가득 서린 얼굴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표정으로 병실에 누워 있다. 아직 피오나를 알기 전에는, 순교자의 마음으로, 영웅주의적인 심리로 수혈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제 피오나를 알고,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거부당한 뒤, 아담은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수혈을 거부한다. 아담은 한 여자에게 버려진 존재로 계속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게 영원히 거절당한 채로, 계속 더 살아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피오나는 이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법조계 인사들의 화려한 파티가 열린 자리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던 피오나. 그녀는 피아노 반주를 하고, 그녀의 오랜 친구 마크는 멋들어진 테너의 음색으로 노래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피오나는 그만 ‘반주’를 하고 있다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망각해버린다. 그녀의 자아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던 팽팽한 이성의 끈이 처음으로 풀린 것이다. 아담을 죽게 내버려 둬선 안 돼. 아담을 살려야 해.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그 어린 소년에게, 내가 과연 무슨 짓을 한 걸까. 
피오나의 마음속에는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참회의 말들이 스쳐 갔을 것이다. 
 
피오나는 단 한 번도 궤도를 이탈해본 적이 없는 영혼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저 열일곱, 아니 이제는 열여덟 살이 된 청년 아담 때문에 인생의 궤도를 이탈한다. 마크와 애초에 약속한 익숙한 앙코르곡이 아니라 아담과의 첫 번째 만남이라는 추억이 서린 곡, 「버드나무 정원」을 연주해버린 것이다. 관객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지만, 마크는 어리둥절하다. 궤도를 한 번도 이탈해본 적 없는 피오나가 왜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앙코르곡을 바꾸어버린 것인지, 마크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피오나는 공연을 하면서도 아담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담은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의 강력한 의지로. 피오나는 자신이 영원히 놓쳐버린 손 때문에, 이제 이 젊은이가 세상 전체를 향한 끈을 놓아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담은 불가능한 꿈을 향해 투쟁하고, 피오나는 현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쟁한다. 두 사람은 언뜻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닮았다. 두 사람 모두 ‘고결함’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담의 고결함. 그것은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결코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투쟁이다. 피오나의 고결함은 판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결코 권력이나 지위로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필생의 책임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판사로서의 책임, 어른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한 사람의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책임. 그 책임을 지키기 위해 피오나는 평생을 분투했고, 아담을 향한 판결과 아담을 향한 작별인사 모두 그 고결함을 지키기 위한 피오나의 투쟁이었다. 마지막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마치 영혼의 쌍둥이처럼 닮았다.
피오나의 남편 잭은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담이 마침내 사망하자 ‘종교 때문에 죽었군.’이라고 생각하고, 아내가 아담 때문에 괴로워하자 ‘그 애를 사랑했냐’면서 질투심을 숨기지 못한다. 잭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이 피오나를 숨 막히게 한 것이다. 새로운 연인을 찾아 집을 나간 남편 잭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지만, 피오나는 영원히 예전의 피오나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심장이 산산조각이 난 듯한 아픔을 등에 짊어지고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의 강인함이 때로는 이렇게 원망스럽다. 멀리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멋있어 보이지만 정작 그 내면은 닳고 닳아버린 남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떠나간 아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피오나는 그렇게 이 차디찬 현실의 늪을 홀로 헤쳐나갈 것이다.
 

피오나와 아담은 병원에서 처음 만났다. 
수혈을 거부하는 소년 아담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찾아온 판사 피오나.
 

이 소설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수없이 많지만, 여러분께 꼭 알려드리고 싶은 최고의 장면은 바로 아담이 처음으로 피오나의 노래를 듣던 그 순간이다. 그들의 순수와 열정이 만나는 순간은 바로 피오나가 아담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는 순간이었다. 예이츠의 시에 구스타프 말러의 음을 붙여 노래로 불러주는 피오나. 그 노래가 바로

「버드나무 정원」이었다. 노래하는 피오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담은 그동안 그 어떤 타인에게서도 받지 못한 설렘과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지던 순간의 설렘과 슬픔을 노래한 예이츠의 문장은 과거에는 그토록 마시멜로처럼 달콤했지만, 이제는 사약보다 더 쓰디쓰게 다가온다. 사랑에 빠지던 순간에는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입장권이었지만, 이제 사랑이 떠나는 순간에는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세계로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의 비가(悲歌)로 들린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새로운 세상을 향해 천사의 날갯짓처럼 아련한 자태로 노래를 부르던 피오나의 음성은 독자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열일곱 살 소년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없었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두 사람.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서 결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실은 영혼의 쌍둥이처럼 꼭 닮은 존재였음을 알게 되는 그 순간. 판사 피어나는 병실에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소년을 위해 감미로운 노래를 불렀고, 청년 아담은 자신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찬란한 첫사랑의 숨결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있었다. 순수한 영혼이 지혜로운 영혼을 알아보는 순간. 한 아름다운 청년이 이제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판사의 잃어버린 꿈을 발견하는 순간. 그렇게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이 비극적인 사랑은 시작되었다.
 
 
내 사랑과 나는 강가의 들판에 서 있었지.
그녀는 눈처럼 새하얀 손을, 내 기울어진 어깨에 얹었네
그녀는 말했지. 강둑에 풀이 자라나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
 
ⓒ 정여울, 202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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