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사장을 찾아가지만……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이야기를 담은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소개합니다. 세일즈맨으로서 차곡차곡 실적을 쌓고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윌리. 하지만 매주 먼 길을 운전해 영업을 다니며 그는 점점 지쳐 가고, 대공황과 함께 회사 내 입지도 좁아져만 가는데요. 『세일즈맨의 죽음』은 윌리가 평소와 다름없이 과로한 채로 집에 돌아온 날 밤부터 그다음 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만 하루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플루트 선율이 들린다. 잔잔하고 섬세하며, 풀밭과 나무와 지평선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다. 막이 오른다.
정면에 ‘세일즈맨’의 집이 있다. 고층으로 솟아오른 각진 건물들이 그 집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 푸른 하늘빛이 집과 앞 무대만 비춘다. 나머지 부분은 성난 듯 오렌지색으로 타오른다. 차츰 밝아지면서, 작고 부서질 것 같은 집 주위로 견고한 아파트 요새가 보인다.
오른쪽에서 세일즈맨 윌리 로먼이 샘플이 든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들어온다. 플루트 연주가 계속된다. 윌리에게도 들리지만 그는 음악 소리를 의식하지 못한다. 윌리는 예순 살이 넘었고 옷차림이 점잖다. 무대를 지나 현관으로 오는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문을 따고 부엌으로 들어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짐을 내려놓고, 아픈 손바닥을 만진다. 한숨 같은 소리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데, 아마 “아이고, 아이고.” 정도의 말인 듯하다. 문을 닫고 커튼이 쳐진 부엌 문을 지나서 가방을 거실로 들여놓는다.
아내 린다가 오른편 침대에서 기척을 내더니 일어나 가운을 입고 바깥의 기색을 살핀다. 린다는 대체로 명랑하지만, 윌리의 행동을 봐주면서 꾹 참는 버릇이 있다. 그녀는 남편을 몹시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에게 성마른 기질과 성질, 황당한 꿈과 자잘한 심술궂음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남편의 내면에 있는 격한 바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 바람은 린다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지만 감히 입 밖에 꺼내거나 대놓고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린다 (침실 바깥에 있는 윌리의 기색을 살피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다.) 여보!
윌리 괜찮아. 돌아왔소.
린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잠시 침묵)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여보?
윌리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린다 차를 박은 건 아니죠?
윌리 (좀 성가셔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아까 한 말 못 들었소?
린다 어디 불편하기라도 한 거예요?
윌리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플루트 소리가 잦아들었다. 윌리는 린다 옆 침대에 앉는다. 좀 멍하니) 할 수가 없어.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여보.
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자상하게) 하루 종일 어디 있었어요? 아주 피곤해 보이는데.
윌리 용커스보다 더 위로 올라갔었소. 커피 마시려고 잠시 섰지. 아마 커피 때문이었을 거야.
린다 뭐가요?
윌리 (잠시 뒤) 갑자기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어. 차가 자꾸 길가로 빠지는 거 있지?
린다 (거들어 주려는 듯) 저런, 또 핸들이 문제인가 보네. 안젤로는 우리 차를 볼 줄 몰라.
윌리 아냐, 내가 문제야, 내가. 정신을 차려 보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 이전 오 분간 뭘 했는지 생각이 안 나. 나는…… 아마……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나 봐.
린다 안경 때문인지도 몰라요. 도통 안경을 새로 맞추려고 하지 않잖아요.
윌리 아냐, 눈은 잘 보여. 돌아올 땐 시속 16킬로미터로 왔어. 용커스에서 집까지 네 시간이나 걸렸어.
린다 (체념한 듯) 여보, 쉬어야 해요. 이런 식으로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윌리 플로리다에서 쉬고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린다 하지만 정신을 쉬게 하진 못했죠. 당신은 지나치게 정신이 활발해요. 정말 중요한 건 정신인데 말이죠.
윌리 아침에 새로 시작해야겠어. 아침이 되면 좀 나을 거야. (린다가 윌리의 구두를 벗긴다.) 빌어먹을 구두 깔창이 사람을 잡는군.
린다 아스피린 드세요. 하나 가져다줄까요? 좀 나아질 거예요.
윌리 (새삼스럽게) 죽 운전을 하고 있었다고. 난 괜찮았어. 심지어 경치도 바라보았어. 매주 외근 다니는 내가 새삼스레 그 경치를 바라보았다니 상상이나 가? 그런데 린다, 거긴 아주 아름다웠어. 나무는 무성하고 태양은 따뜻하고. 나는 앞 창을 열고 따뜻한 바람에 내 온몸을 맡겼지. 그런데 갑자기 길가로 빠지고 있는 거야! 그게 말이야, 운전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거였어. 만약 흰 차선 너머 다른 길로 들어갔으면 누군가를 치어 죽였을지도 몰라. 그래서 다시 정신 차리고 갔는데…… 오 분 뒤에 또 몽롱해져서는 하마터면……. (손가락 두 개로 눈두덩을 꾹꾹 누른다.) 자꾸 생각이 나. 아주 이상한 생각이 난다고.
린다 여보, 다시 얘기해 보세요. 당신이라고 뉴욕 본사에서 일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윌리 뉴욕에서는 내가 필요없어. 나는 뉴잉글랜드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뉴잉글랜드에서야 펄펄 난다고.
린다 하지만 당신은 예순이에요. 매주 외근을 나갈 수는 없다고요.
윌리 포틀랜드에 전보를 보내야겠어. 내일 아침 10시에 브라운 앤드 모리슨 상사에서 온 사람을 만나 샘플을 보여 주기로 했거든. 물건을 팔아야지, 젠장! (재킷을 다시 입기 시작한다.)
린다 (재킷을 벗기며) 내일 하워드 사장에게 가서 뉴욕에서 일하겠다고 말하면 안 돼요? 당신은 너무 고분고분해요, 여보.
윌리 만약 와그너 회장님이 살아 있다면 나는 지금 뉴욕 책임자일 테지! 그분에게는 제왕 같고 주인다운 풍모가 있었어. 하지만 그 아들 하워드 사장은 뭘 몰라. 내가 처음 북쪽으로 올라갔을 때 와그너 상사는 뉴잉글랜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고!
린다 그런 얘기들을 하워드에게 한번 해 보세요.
윌리 (용기가 나서) 그래, 꼭 해야겠어. 치즈가 있나?
린다 샌드위치 만들어 줄게요.
비프 아버지를 위해 변명하는 건 이제 관두세요!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강압적이었어요. 어머니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고.
해피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를 존중…….
비프 네가 뭘 알아?
해피 (부루퉁해서) 형도 아버지더러 미쳤다고 하진 말라고!
비프 아버지는 정말 성격이 이상해. 찰리 아저씨라면 이러지 않을 거야. 더구나 자기 집에서, 마음속에 있는 찌꺼기를 토해 내기나 하고.
해피 찰리 아저씨는 자기 문제로 씨름할 필요가 없거든.
비프 윌리 로먼보다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은 많아. 난 많이 봤어!
린다 그럼 찰리 아저씨를 너의 아버지로 삼으렴. 그렇게 할 수 있니? 있냐고!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비프 그런 말이 아니라…….
린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균형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한단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이의 문제가 뭔지는 쉽게 알 수 있어. 그이는 지친 거야.
해피 맞아요!
린다 소시민도 위대한 사람들처럼 지치긴 마찬가지야. 이번 3월이면 회사에서 일한 지 서른여섯 해가 돼. 그동안 새로운 지역을 개척해서 회사의 노른자로 만들어 놨더니, 이제 늙으니까 봉급을 안 주는구나.
윌리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사장님. 저 더 이상은 외근을 나갈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워드 외근을 안 나간다고! 아니, 그러면 뭘 할 건데요?
윌리 지난 성탄절에 여기서 파티할 때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여기 시내에 제가 있을 만한 곳을 알아보겠다고 하셨죠.
하워드 우리랑 같이?
윌리 음, 그렇죠.
하워드 오, 그래, 그래요. 기억나요. 그런데 아무래도 로먼 씨가 있을 만한 곳이 없더군요.
윌리 사장님,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우리 애들은 다 장성했답니다. 이제 그다지 많은 돈이 필요치 않아요. 집에 주급 65달러 정도만 가져가면 근근이 생활할 수 있어요.
하워드 아, 하지만 로먼 씨…….
윌리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장님, 제가 좀 지쳤답니다.
하워드 아, 그건 알아요, 로먼 씨. 하지만 로먼 씨는 외근직 사원이고 우리 회사는 외근이 기본이에요. 여기 본사 영업직은 대여섯 명 정도밖에 없어요.
윌리 하워드 사장님, 제가 언제 다른 사람들처럼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저는 회장님이 사장님을 안고 여기 오셨을 때부터 회사에 있었습니다.
하워드 알아요, 로먼 씨, 그러나…….
윌리 회장님은 사장님이 태어나셨을 때 제게 오셔서 하워드란 이름이 어떠냐고 물어보셨지요. 지금은 천국에서 고이 쉬고 계시겠지만요.
하워드 로먼 씨,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로먼 씨에게 맞는 자리가 없어요. 자리가 생기면 바로 투입하겠지만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도 없답니다.
(하워드가 라이터를 찾는다. 윌리가 찾아 준다. 침묵.)
윌리 (점점 화가 나서) 사장님, 먹고사는 데 주당 50달러면 됩니다.
하워드 하지만 당신을 어디에다 배치하란 말이오?
윌리 사장님, 이건 제가 물건을 팔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워드 그건 아니죠.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니까 누가 됐든 자기 능력대로 일을 맡아야 한단 말이지요.
윌리 (절망적으로) 사장님, 잠깐 제 얘기 좀 들어 보시면…….
하워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요. 인정해야 해요.
윌리 (화가 나서) 비즈니스는 당연히 비즈니스지요. 그렇지만 잠시만 내 말 좀 들어 봐요. 이걸 아셔야 한단 말이오. 나는 열여덟, 열아홉 소싯적에 이미 외근 영업직 사원이었지요. 마음속에는 세일즈가 내 미래를 보장해 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그때 나는 알래스카에 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답니다. 알래스카에서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노다지가 터졌거든요. 나도 가고 싶었어요. 그냥 한번 가 보고 싶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워드 (거의 흥미 없이) 그래요?
윌리 그럼요. 아버지가 알래스카에서 오래 사셨거든요. 아버지는 모험심이 강한 분이었어요. 우리 집안에는 자립 정신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답니다. 난 형과 함께 알래스카로 가서 아버지를 찾아볼까, 그리고 북쪽에서 부친과 함께 정착을 해 볼까 싶었지요. 가야겠다고 거의 마음먹었는데, 파커 하우스 호텔에서 세일즈맨 한 사람을 만났지 뭡니까. 데이브 싱글먼이었지요. 팔십 넘은 노인이었는데 서른한 개 주에서 판로를 개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노인네가 방에 올라가면 녹색 벨벳 슬리퍼를 신고…… 그 색깔이 잊히지도 않아요…… 수화기를 들고 바이어에게 전화를 해서는, 방을 뜨지도 않은 채 영업을 하더란 말입니다. 나이 여든넷에.
그걸 보니 세일즈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디다. 나이 여든넷에 스무 개, 서른 개의 다른 도시에 가서 전화를 걸고 가지각색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고 도움받고 하는 것보다 더 흐뭇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거 아세요? 싱글먼이 죽었을 때, 그야말로 세일즈맨다운 죽음을 맞았지요. 뉴욕, 뉴헤이븐, 하트퍼드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기차 흡연실에서 녹색 벨벳 슬리퍼를 신은 채로 죽었으니까요. 그가 죽었을 때 수백 명이나 되는 세일즈맨과 바이어가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달간 기차간에서는 분위기가 내내 침울했지요. (일어난다. 하워드는 그를 보고 있지 않다.) 그때엔 인간미가 있었단 말입니다, 사장님. 영업할 때도 존경과 우정과 감사가 있던 시절이란 말입니다.
요즘은 그런 것일랑 깡그리 사라지고 말라비틀어지고, 우정이라든가 인간미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단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제 더 이상 나를 몰라봐요.
하워드 (오른쪽으로 가며) 세상이 그런 거죠, 로먼 씨.
― 아서 밀러, 강유나 옮김,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어제 12시에 자고 오전내 피곤해하고 있는데, 주인공 세일즈맨의 피로가 아찔하게 다가오네요.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쓴 돈이 19억 달러에 이른다고 하던데요. 이 돈이 어디서 났을까요? 1949년에 발표된 이 희곡에서 윌리는 주급 65달러, 50달러면 된다고 사장에게 사정하고 있잖아요.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을 쓴 시인처럼 계속 질문하고 싶어요. 원자폭탄 개발비 19억 달러는 미국이 전쟁에 치른 전체 비용의 0.6퍼센트에 불과하다는데, 그 모든 돈이 어디서 난 거냐고요?
읽으며 영업 일을 했던 우리 가족 생각도 나고 눈물이 좀 났어요. 속을 파먹히고 껍질만 남은 오렌지같은, 늙고 지친 윌리의 삶을 그래도 알아 주는 것은 아내 린다인데요.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이런 린다의 피로를 알아 주는 이가 없단 생각에 더 슬퍼요. “그 바람은 린다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지만 감히 입 밖에 꺼내거나 대놓고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약간 더 뒤의 세대임에도, 자기 ‘내면의 격한 바람’에 대해 썼던 여성의 고백은 그래서 파괴적이라 불렸는지도요.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자마자 즉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고 아서 밀러를 단숨에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끌어올렸다. 이후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공연되고 사랑받는 미국의 대표적인 희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인간의 소외와 붕괴를 뿌리까지 파고드는 혁신적인 기법으로 미국 현대극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했다. 초연 후 2년간 장기 공연되며 연극계 3대 상인 퓰리처 상, 토니 상, 뉴욕 연극비평가상을 휩쓸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한편》 5호 ‘일’의 온라인 세미나 소식! 필리핀과 한국, 이스라엘을 종횡무진하는 세계적인 스케일 이야기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기」의 임안나 연구자와 함께합니다. 이스라엘의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필리핀 출신 돌봄노동자 루시를 만난 인류학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주자 연결망’에 가닿게 되는데요…… 이주노동자를 움직이는 비공식 관계망을 지켜본 흥미진진한 연구 뒷이야기, 함께 들어 봐요. 신청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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