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우리 회사에서 자아실현 중인 사람?


열 명 중에 1.5명이라는 통계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출판계 뉴스레터 구독자 수 1위에 빛나는 《한편》의 편지를 쓰고 있는 현재, 이 업무까지 하면 저의 오늘 일은 끝인데요. 《한편》 5호 ‘일‘과 ‘책 만드는 일’까지 만들면서 나는 일에 과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편집자는 이 책을 해독제로 삼고 있답니다. 바로 판미동의 책 『오늘 일은 끝!』이에요. 

‘태양’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면, 햇빛 아래 누울 때와 똑같은 일이 우리 몸속에서 일어난다. 온기가 피부 속으로 스며들면서, 혈관이 확장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왜나하면 우리는 단어를 떠올릴 때, 그 단어를 느끼기 때문이다.

단어는 우리를 자극하거나 마비시키고, 웃거나 두려워하게 만들고, 사랑하거나 증오하게 한다. 단어는 어떤 이미지를 불러내고, 그 이미지는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받도록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베를린자유대학의 한 연구팀은 3000개의 독일어 단어가 주는 느낌을 조사했다. 부정적인 느낌을 가장 많이 유발한 단어로는 ‘독가스’ ‘전쟁’ ‘살인’이 있었다. 긍정적인 기분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킨 단어로는 ‘사랑’ ‘낙원’ ‘자유’가 있었다. 그 밖의 모든 단어는 그 양극 사이에 자리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단어는 동사형일 때나 명사형일 때나 비슷한 느낌을 준다. 즉 명사로 표현된 사실, 현상은 동사로 표현된 행위와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분리’와 ‘분리하다’는 둘 다 부정적 기분을, ‘여행’과 ‘여행하다’는 둘 다 긍정적 기분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 규칙을 벗어나는 두 가지 예외가 있다.

우선 언급하고 싶은 하나의 단어쌍은 ‘일(Arbeit)’과 ‘일하다(arbeiten)’이다. ‘일’이란 개념은 좋은 느낌을 주는 반면 동사 ‘일하다’는 부정적인 기분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만, 일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이 아니라 언어의 힘을 다룬 이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간단한 통찰이다. 이 통찰이 흥미로운 까닭은 그것이 ‘일이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라는 질문을 해명하려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삶에 전반적으로 얼마나 만족하느냐고 물었을 때 직업이 있는 사람의 행복도는 직업이 없는 사람보다 높다.

주간지 《디 차이트》의 2016년 ‘유언 연구’는 이를 증명하는 수많은 연구 중 하나다. ‘삶을 즐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응답자는 82퍼센트였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람의 비율은 그보다 높은 85퍼센트였다. 삶을 즐기는 것이 일보다 중요한 것이다! 《디 차이트》의 해석은 이렇다. “나는 일하는 게 좋아요!”
하지만 틀렸다. 사람들은 단지 일을 가졌다는 사실을 좋아할 뿐이다.

유희, 재미와 스릴, 의미, 성취감, 자아실현, 주변의 멋진 사람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일의 관념이다. 구인광고의 이야기가 그렇고, 경영진의 이야기가 그렇다. 일은 오로지 일을 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값비싼 불릿 포인트에서 컨설턴트들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다. ‘열정’은 ‘배움’이다. 오늘날 기업은 고객뿐 아니라 직원 그리고 미래의 직원을 상대로도 마케팅을 수행한다. 판매 전략의 온갖 수책이 동원된다. 사람들은 이를 대놓고 ‘고용주 브랜딩’이라 부른다.

그러나 독일에서만 3000만 명이 좌절에 빠져 있다. 업계, 계급, 연령,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매일 말이다.
여러 연구가 이 사실을 꾸준히 증명한다. 예를 들어 ‘갤럽 몰입도 지수’에서 매년 나타나는 결과는 이렇다. 전체 피고용인의 약 15퍼센트만이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신의 직업에 열의를 보인다. 이 수치는 최근 15년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고용주들은 점점 더 크고, 점점 더 비현실적인 약속에 빠져들고 있다.

경영진들이여, 가련하도다! 그런 신기루 같은 목표를 좇느라 발바닥에 땀이 날 지경이니. 당신들 중 상당수는 그것을 믿는다. 벌써 한참 전부터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건만.

직원들이여, 가련하도다! 일이 멋지다고 공표하는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당신들은 더더욱 좌절에 빠져 움츠러드니.

일이 우리에게 성취감, 자아실현,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우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면, 왜 우리는 그에 대해 돈을 지불하지 않는가? 그러한 통념은 달콤하게 들리지만 해로우며, 만족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만족감을 파괴한다. 그리고 생산성 또한 파괴한다. 1000퍼센트 수익률을 약속하는 것이나 같다. 우리는 어찌 이리 순진한가?

늘 기분이 좋은 한 줌의 사람들만으로는 경제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은 한 사회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변호사들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명심하고 따른다. 의사들은 친족을 수술하기를 꺼린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자신과 관계된 일이므로, 거리가 없으므로 열정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열정은 온갖 미사여구로 우리를 속인다. 훌륭한 업무란 많은 경우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들로부터 완성된다는 점을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훌륭한 업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 가지가 꼭 필요하다. 외부와 내부를 향한 공감 능력이다. 고객을 아는 자만이,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아는 자만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 직원, 동료, 상급자를 이해하는 자만이 한 조직 내에서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감 능력의 전제조건은 내 입장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관점의 전환은 최고 난이도 과제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려면 나 그리고 내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열정은 그 정반대에 있다. 열정에 빠진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오직 나 그리고 일과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과 나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가 중요하다. 내가 내 일을 사랑할수록 일은 더더욱 나에게 목적 자체가 된다. 다른 것은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스타트업 그리고 젊은 신생 기업들이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에서 두드러지는 두 가지는 열정과 실패율이다. 창업자들은 그들의 이상에 맞게 열성을 다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자신의 인생처럼 대한다. 스타트업 직원들은 자신을 자기 일과 동일시한 나머지 적은 돈을 받거나 아예 무급으로 업무를 보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추정에 따르면 스타트업 10곳 중 1곳만이 성공을 거두며, 나머지 기업들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창업자에게 빚을 남기거나 취미로 끝을 맺는 것이다. 제대로 돈도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보답은 해고다. 이 기업들이 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열정적이고, 자신들의 이상에 너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열정에 눈이 멀어 자신들이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품 또는 형편없는 상품을 내놓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상당수 스타트업들은 몇 년간 홀로 어설프게 뚝딱거리고 몽상에 빠져 회사명을 넣은 편지지, 명함, 인터넷 페이지 따위를 만들어 내다가 처음으로 현실과 대면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계획에 흥미가 있는 투자자나 고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이러한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제때 깨달으려면 공감 능력이 필요한데, 열정 때문에 공감 능력을 위한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번은 어느 미디어 기업의 중간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간소화된 업무 단계로 같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 그는 참으로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일에는 관심 없습니다. 저는 일하기를 좋아하거든요.”

핵심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열정은 효율성의 적이다.’ 일에 푹 빠진 사람은 간소화된 업무 단계로 동일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지 않는다.



─ 폴커 키츠, 신동화 옮김,
『오늘 일은 끝!』 중에서
 


우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 아니었어요? 나만, 나만 진심이었어요?  마찬가지로 일에 과몰입하고 있던 것을 깨달은 제게도 필요한 해독제네요. 자꾸 머릿속으로 ‘그래도……. 심각한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다면……’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것 역시 일종의 중독 증상일 수 있겠죠. 
그런데 일에 몰입하는 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든이 넘은 작가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보고, 일하는 시간과 남는 시간을 나누고, 또 남는 시간과 바쁜 시간을 비교하며 사실 ‘여가 시간이란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에세이를 얼마 전에 읽었는데요. 이런 식의 새로운 시간 관념이 좀 도움이 될 수 있으려나요?

즐겁게 일하고 싶은 편집자 님은 당연히 좋은 사람이죠. 일 중독 테스트 문항 일곱 개에 ‘그렇다’ 체크한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테스트해보세요!)
열정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말인데, 『오늘 일은 끝!』의 저자 폴커 키츠가 열정의 반대말로 ‘공감 능력’을 드는 데서 납득이 갔어요. 열정적인 상태가 초래하는 자기만 아는 부작용을 경계하는 거잖아요. 내 일에 대한 몰입은 몰입대로, 또 주변 동료와 예상 소비자, 대상 독자, 이웃, 타인, 타자……에 대한 이해는 이해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네 과업이네요. 거장이신 그분의 말씀처럼 진정 ‘남겨둘 시간이 없는’ 거라면, 그 유명한 해방자처럼 노동 시간에도 여가 시간에도 그저 자유를 개척하는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일에 관한 환상을 걷어내고, 일을 향한 ‘솔직함’이라는 새로운 의욕을 찾아 주는 책. 심리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거짓된 환상들에 속지 말고,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으로 일을 대하자고 주장한다. 논의의 출발점은 일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역설적인 태도, 일을 둘러싼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이나 일 자체를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실제 일하기는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실제 일할 때 맞닥뜨리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접근법이 ‘현실을 이상에 맞추는 것’이었다며, 반대로 ‘현실에 이상을 맞추도록’ 일에 대한 환상과 거짓말들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열정, 자아실현, 성취, 자유, 도전, 성장 등으로 포장된 ‘이상’에서 벗어날 때 직장 생활과 일상생활이 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진다는 점을 이 책이 통쾌하게 일깨워 줄 것이다.

민음사
1p@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