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

 

 

흔들리는 꽃망울에게 보내는 정여울 작가의 따뜻한 인문학 편지, 정여울의 블루밍 레터입니다.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에 열광한 적 있나요? 현실을 사는 평범한 이들도 세상을 바꾸는 영웅이 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초라하지만 누구보다도 빛나는 소녀, 『모모』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봅시다. 
 
사진  이승원
초능력이 없는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슈퍼히어로들은 저마다 강력한 힘으로 적들을 제압한다슈퍼맨은 세상 모든 무거운 것들을 번쩍 들어올려 적을 물리치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내며스파이더맨은 모든 곳에서 거미줄을 만들어 아무리 높은 곳이나 험한 곳에서도 펄펄 날아다니면서 적들을 무력화시키기도 하고원더우먼은 황금빛 올가미로 적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
나도 그들이 부럽다하지만 나는 그런 히어로물을 보면서 늘 미심쩍었다우린 저렇게 할 수 없는데우린 저렇게 무적의 강인함을 가질 수가 없는데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그냥 보고 감탄만 해야 하나아이들처럼 슈퍼히어로를 모방하는 놀이에 몰두할 수도 없는이제 너무 많은 실패와 절망에 길들여 버린 나는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난감했다세상은 저렇게 단순하지 않은데착한 우리 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가 사악한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그런 이야기
삶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게다가 그토록 착하다는 슈퍼히어로들조차도 폭력을 사용해 적을 물리친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폭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게다가 그런 이야기들이 악한 사람들을 토벌하는 데는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불편했다.   
 

영화 「수퍼맨 시리즈: 맨 오브 스틸」(위 왼쪽)
영화 「스파이더 맨 3」(위 오른쪽) 
영화 「원더 우먼」(아래)
대부분의 마음은 텁텁한 회색
착한 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악을 이겨 낼 수는 없을 것이다거꾸로악한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우리 안의 가장 선한 마음을 결코 없애지 못한다선한 사람도 100퍼센트 선하지 않고악한 사람도 완전히 악하지는 않다선악은 내 안에서도 공존한다모든 사람에게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 선악의 본능이 공존한다어린이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악용하여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어린이들도 있지 않은가궁지에 몰리면 누구나 악을 행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끔찍한 상황에 처해도 자기 안의 선한 빛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반면 아주 사악한 사람조차도 의외로 선한 측면이 남아 있어 엉뚱한 곳에서 선행을 행하기도 한다선한 마음에 하얀색을 입히고악한 마음에 검은색을 입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면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은 텁텁한 회색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욕심이 더 많이 자리잡을수록자본가들은 더욱 탐욕스럽게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정치인들은 더욱 사악해지고미디어는 더욱 현란하고 자극적으로 변해 가며사람들의 마음속을 물들이는 그 평균적인 회색은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질 것이다그러니 선이 악을 이긴다는 단순 도식으로는 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 못한다선한 영웅이 악당들을 완전히 소탕하지 못하는 것처럼악당들은 선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결코 사라지게 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엄마에게
인정하기 싫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악한 마음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인간 본성의 민얼굴과 대면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사악함은 점점 더 강력해지는 자본주의로 인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조차 부동산과 주식에 집착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까.
 
우리 안의 선함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욕망의 폭주 기관차를 아주 가끔이나마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는 주로 가정이었다. 가정 안에서 엄마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을 전담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엄마에게 전담시켰는가. 얼마나 많은 노동을 엄마로부터 착취했는가. 세상 모든 곳이 자본주의로 빠짐없이 물든다면, 우리는 엄마에게 ‘집밥’을 해달라고 부탁할 때조차도 ‘대금’을 치러야 할 것이다.

 

엄마의 보살핌도 연인의 사랑도 친구의 우정도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누구도 공짜로는 엄마도, 연인도, 친구도 되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을 보라. 여전히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사랑과 우정과 연대의 힘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무시무시하게 사악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그저 어리고 초라한 소녀가 지닌 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모모를 다시 펼쳤다모모가 왠지 나의 오랜 고민에 다정하게 화답해 줄 것만 같았다모모는 자본주의 바깥으로 추방된 존재다모모는 언뜻 보면 아주 초라하고 가냘픈 고아이자 거지로 보인다모모는 자본주의사회의 척도로 보면 가망 없는 존재철학자들의 용어를 빌면, 호모 사케르*다.
*Homo Sacer: 법 밖의 존재, 벌거벗은 존재, 버려진 존재
모모는 사회 제도에서 완전히 이탈한 자며, 복지 제도의 도움도 받지 않으려 한다. 모모는 집이 없어서 오래된 원형극장에서 살고 있으며, 고아원에 가기를 거부하고 홀로 살기를 선택한 용감한 소녀기도 하다. 나이조차 모른다. 부모도 없고, 이름 또한 자신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그녀의 겉모습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린 소녀’라는 것뿐이다. 누구도 모모에게서 비범함이나 영웅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초라한 소녀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결국 알게 된다.
그런데 모모는 어떤 힘을 가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해 보인다사실 모모는 그 어떤 강력한 힘도 가지지 못했다모모는 자신의 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힘을 일깨우는 존재기 때문이다모모는 다른 사람의 혼탁한 마음속에 감춰져 있는 본능적인 선의를 일깨워 낸다모모는 대단한 힘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심지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인다
 온 힘을 다해 남에게 귀기울일 때
모모의 비결은 단 하나다사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다모모는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 힘을 다해 들어주기만 한다그러나 아무도 모모처럼 온 힘을 다해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모모에게 와서 억울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저마다 자신의 가장 절실한 마음을 들어주고느껴주고알아주는 이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기뻐서 모든 갈등과 분노를 잊어버린다심지어 서로 욕을 하고 비난하고 죽이기 직전에 이른 사람들도모모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자기 안의 가장 선하고 해맑은 마음씨를 되찾게 되며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모모의 다만 온몸으로 들어주기’ 전법은 이토록 신비로운 힘을 가진 것이다
누군가 나의 아픔에 완전히 공감해 준다는 것그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을 모모는 실현하고 있었다아무리 지루하고 짜증나고 힘든 이야기라도오직 들어주고다만 들어주고끝까지 들어주는 것고통받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 소박한 몸짓만으로 모모는 우리들의 눈부신 영웅이 되고빛이 되며희망이 된다.  
(계속)
ⓒ 정여울, 2021.
 
다음 편지에서 모모』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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