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인간이 벌레가 될 때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유대인’과 ‘몸’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 독문학자 최윤영의 『카프카, 유대인, 몸』을 소개해 드려요. 프라하에 살지만 체코인이 아니고,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이 아니며,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아버지 아래 자란 카프카. 그는 ‘자기 몸 앞에 낯선 자’였습니다. 이처럼 어디에도 동화되지 못한 타자로서 카프카의 고민은 벌레가 된 인간을 다룬 「변신」과 인간을 모방하는 원숭이의 이야기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나타납니다.   

 

카프카의 단편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주인공은 원숭이다. 카프카는 자주 자신의 작품들에 동물을 등장시켰다. 원숭이, 갑충, 개 등과 같이 실제 존재하는 동물들뿐 아니라 오드라덱처럼 환상 속의 동물들도 등장한다. 그중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원숭이라는 점이 특히 주목을 끈다. 
19세기 후반 이후 원숭이는 당대 진화론과의 연관 속에서 여러 동물 담론과 사회 담론에 자주 등장했고 그러면서 인간 세계와 원숭이 세계의 인접성, 유사성이 강조되었다. 린네(Linne)도 1736년에 생물의 분류 체계를 만들 때 이미 인간을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영장류로 분류했다. 이때 오랑우탄은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유인원과 인간의 사이에 있었다. 다윈 스스로도 인간과 원숭이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인간은 진화한 원숭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몸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은 원숭이와 몸이 유사하고 몸이 유사하니까 정신도 유사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도 당대에 많이 회자된 담론들의 영향을 받았다.
원숭이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한편으로는 몸과 정신의 유사성, 친화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에 원숭이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논하는 담론이 있었다. 후자의 담론과 더불어 제기된 질문들은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원숭이와 구별되는 인간성이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정말로 인간이 가장 진화된 존재라면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 작품도 이러한 질문에 당시의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주고 있다. 

 

원숭이 화가(1740)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작품으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샤르댕은 원숭이 고고학자, 원숭이 골동품상, 원숭이 투기꾼도 그린 바 있다. 

아프리카의 황금해안에서 자유롭게 뛰놀다가 유럽 사냥 원정대가 쏜 총을 맞고 잡혀 온 원숭이 빨간 페터는 자기 스스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라는 형식을 택해 인간의 언어로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설명한다. 그러나 인간 지성 최고의 전당인 ‘학술원’에 객관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형식인 ‘보고’의 글을 바치겠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한 원숭이의 풍자와 반어가 가득한 개인적 회상이자 주관적 회고록의 성격이 짙다. 그는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고 인간 세계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인간만이 가진 이 언어라는 매체를 사용해서 자신의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인간 지성의 최고 집단이라 할 학술원을 상대로 해서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 학술원은 이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위탁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학술원의 어떠한 대응이나 반응도 묘사되어 있지 않고 원숭이의 독백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원숭이가 실제로 이러한 부탁을 받았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계에 적응한 동물 원숭이가 인간 세계의 최고 지성을 대표하는 학술원을 상대로 보고한다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양측 간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대결은 당시에는 근거가 없는 허황된 구도는 아니었다. 원숭이와 학술원의 관계에 있어서 1768년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회장이 오랑우탄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면서 “그것들의 타고난 지혜를 기대했다.”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전체 내용은 원숭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주목할 점은 그 가운데 동시에 자신이 모방한 인간들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비판적 풍자적으로 서술한다는 점에 있다. 즉 외적 서술에서 두드러지는 원숭이의 인간화만이 주제가 아니라 더불어 원숭이의 눈으로 본, 자신이 모방한 인간 세계와 인간성의 문제가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빨간 페터가 인간을 모방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자유롭게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하겐벡의 원정대에 체포된 빨간 페터는 배 안 우리의 창살 뒤에서 깨어나 자신이 갇혔음을 알고 절망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을 추슬러 현재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의 가능성을 정리해 본다. 그러면서 이른바 자유와 탈출구의 논의를 전개한다. 우선 그는 자유를 찾고자 우리에서의 탈출을 시도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의미에서의 ‘탈출구’를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볼 때, 원숭이로서 밀림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살았던 과거 시절이나 자신이 살았던 아프리카 대륙의 황금해안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미 배는 망망대해에 떠 있고 혼자서 다시 헤엄쳐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탈출은 결코 그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수 없고 오히려 생물학적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만약 우리에서 탈출하면 건너편 우리의 뱀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고 아니면 운 좋게 갑판까지 올라간다 해도 아프리카를 향해 바다로 뛰어들면 망망대해에서 익사할 것이고 아니면 탈출했다가 붙잡힐 경우에는 조건이 훨씬 더 나쁜 우리로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고향의 시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자유를 뜻할 터인데 이미 이 길은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자유’는 선택지에서 삭제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는 그가 관찰한 인간들의 ‘자유’라는 거대 개념에 대해 불신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에게뿐만 아니라 이를 입에 올리는 인간들에게도 이는 기만으로 작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유의 이념이라는 것이 근대 유럽 문명과 문화의 쾌거로 주장되었다면 이에 대한 원숭이의 비판은 신랄하다. 특히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인간들의 자유라는 개념을 자신이 일하는 서커스단의 곡예단원들에게 적용하여 풍자하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곡예단원들에게 “인간의 자유”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그는 이중적으로 이 자유 개념을 비판한다.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의 자유 개념을 곡예사의 몸의 자유를 뜻하는 개념으로 바꾼 것은 ‘카프카적인’ 변형이며, 다른 한편으로 곡예단원의 자유란 결국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 나무 저 나무 자유자재로 옮겨 다녔던 원숭이의 눈으로 보면 자신들의 상태와 그리 다르지도 않으며 보다 고차원적인 자유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학술원은 계속 원숭이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반면 주인공은 계속해서 원숭이와 인간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빨간 페터는 자유와 차선책의 갈림길에서 인간 사회의 모방이라는 탈출구를 스스로 생각해 내고 이를 선택한다. 그러면서도 이때 자유와 탈출구를 구분함으로써 탈출구는 제3의 길임을 강조한다.

 

저에게는 탈출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궤짝 벽에 갇혀 있다면 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원숭이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 그러나 제가 말하는 탈출구라는 단어의 의미가 잘못 이해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단어를 그것의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완전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유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방으로 열린 자유의 저 위대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였을 때 저는 그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자유를 동경하는 인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자유를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인간들은 너무나 자주 자유라는 말로 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탈출구만을 원했습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디든 관계없이 그 밖의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시공간적 상황을 고려해 인간 세계로의 적응을 뜻하는 탈출구를 선택한다. 이 탈출구는 그러나 앞의 자유라는 선택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바로 원숭이임을, 즉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붙잡혀 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인간들과 살 수밖에 없다면 본래 출신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인간 사회에 적응해서 살기로 한다.
인간에게 잡힌 이상 원숭이로 살기를 고집한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자신이 택하는 새로운 생활이 어떠한 멍에를 지울지라도 이에 순응하기로 결심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문이 닫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당대의 시대적 맥락과의 관계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 사용된 ‘하겐벡’이라는 고유 명사는 의미심장하다. 빨간 페터는 아프리카에서 하겐벡 회사의 사냥꾼에 잡히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전시된다고 작품에서 서술된다. 실제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카프카가 1908년 출간된 에밀 카를 하겐벡이 쓴 자서전 『동물과 인간에 대하여 — 체험과 경험에 대하여』에 이어 1917년 4월 1일자 《프라하일보》 부록에 나왔던 기사 「많은 사람들을 경탄시킨 영사, 예술가의 일기에서」 등을 읽고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과 인간에 대하여』에서 하겐벡은 “길들이는 훈련”이라는 개념을 주창하여 야생 동물을 조련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전까지의 조련은 전혀 ‘조련(調練)’이라는 이름에 합당하지 않았고 자신이 만든 새로운 조련 방식은 하나의 학파까지도 형성할 수 있는데 동물의 영혼에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야생 동물을 폭력적으로 길들이지 않아도 조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야생에서 포획한 동물들을 목적에 더 합당하게 그리고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면 유럽으로 데리고 올 때에나 나중에 유럽의 동물원이나 서커스에서 훈련시킬 때 더 수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은 새로운 조련 방식으로서 당시에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도 카프카는 이를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카프카의 쓰디쓴 유머와 풍자가 드러난다.

 

그 사격 이후 제가 깨어났을 때에는 (여기서 제 자신의 기억이 차츰 살아납니다.) 하겐벡 증기선의 중간 갑판에 있는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면이 쇠창살로 된 우리가 아니라, 삼면이 오히려 하나의 궤짝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궤짝이 네 번째 벽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그 전체는 똑바로 일어서기에는 너무나 낮고 주저앉기에는 너무 좁았습니다. 그래서 구부린 채로 계속 떨 수밖에 없는 무릎 자세로 쭈그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그저 어둠 속에만 있고 싶었기 때문에 궤짝 쪽을 향해 돌아앉아 있었는데, 그러고 있는 동안 뒤에서 쇠창살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야생 동물들을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날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사면이 다 쇠창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일보한 동물 사육 방식에 따라 한 면은 나무 궤짝으로 되어 있다. 갇혀 있는 동물로서는 한 면이 쇠가 아니고 보다 부드러운 재료인 나무판자로 되어 있어 다소나마 안정감을 주며 또한 판자들 사이의 열린 틈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판자 틈은 넓힐 수도 없고 꼬리조차 내밀 수 없는 좁은 틈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재료가 바뀌었다고 해도 동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거주 상황은 더 악화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궤짝 우리는 상자의 높이도 낮고 좁아서 그는 엉거주춤한 채로 서 있기도 누워 있기도 힘든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빨간 페터는 마지막에 자신이 “인간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 이러한 관리가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풍자적으로 말함으로써 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차별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하겐벡은 자신의 저서에서 함부르크의 하겐벡 동물원은 당시 다른 동물원과 달리 전시 대상을 갑갑한 공간의 창살 속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넓고 창살 없이 열려 있는 공간에 전시한다는 점, 즉 전시 대상에게 보다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취지를 강조했다. 그런데 당시의 현실을 되짚어 보면 동물만 전시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인간의 몸이 전시되고 있었다. 지금도 함부르크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 하겐벡 동물원은 서커스 공연이나 동물원의 창살 뒤에 동물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명인임을 자처하는) 유럽인의 눈에 ‘야만적’이라고 지칭되었던 인간들을 전시했다. 1875년에 하겐벡은 함부르크에서 랩랜드인과 마사이족, 이누이트족을 전시한 ‘인종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이는 거의 세계 최초의 인종 전시회에 속하는 것이었고 상업적 측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겐벡은 이후로도 누비아인, 에스키모인, 소말리아인, 에티오피아인, 베두인 등을 계속 전시했고 20세기 들어와 전시회의 규모는 더 커지고 더 화려해졌다. 1931년 뮌헨의 시월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서 하겐벡 회사가 개최한 인종 전시회는 가장 규모가 컸던 마지막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인종주의를 공식적인 정책으로 표방했던 나치 시대에 이 동물원의 인종 전시회는 금지되었는데 “인종이 오염”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상의 금지 이유는 이 시기에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이미 인종 전시회는 볼거리로서의 인기가 하향기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오락으로서, 볼거리 쇼로서의 인종 전시회를 금지했지만 나치는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집단적 몸을 특정 인종 집단의 몸으로 분류하여 더 진지하게 정치적으로 전시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위험한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게르만화를 주창하면서) 유럽의 인종 지도를 새롭게 그리려 했고 이를 위하여 인종 개량, 인종 청소라는 만행을 자행했다. 1924년에 사망한 카프카로서는 이러한 어두운 미래를 미리 예측할 수 없었지만 이미 1920년대에 인간의 몸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담론들은 인간의 몸을 (과학의 대상이든 오락물의 대상이든 정치적 통제의 대상이든) 그 인간성과 개별성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집단적 객체,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카프카의 대표적 작품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인간과 동물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또한 서술 구조와 서술 내용이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그 진행 방향은 역방향이라는 점에서 서로 쌍을 이루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적 과정을 서술한다면 「변신」은 인간이 동물로 퇴화하는, 후퇴하는 상황을 다룬다. 
 

전자에서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원숭이는 유럽의 한 식민 회사 사냥꾼에게 잡혀 강제로 자신의 고향에서 떠나와 유럽으로 가는 배 속 우리에 갇힌다. 창살 뒤의 그에게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원숭이로서의 자유를 다시 누리거나 우리로부터의 도주는 불가능해졌음이 인식되고 결국 그는 차선책으로 우리 밖의 세계에 사는 인간을 모방하여 인간 세계에서 살자는 ‘탈출구’를 택한다. 
반대로 「변신」은 당시 현대인의 직업 사회에 잘 적응했던 외근 사원인 주인공이 어느날 아침 갑충으로 변신한 채로 깨어나 가족과 직장, 사회에서 배제되어 가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신은 직장인일 때에는 개인의 내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잠자에게 나름대로 ‘탈출구’로 기능하여, 잠자는 비록 자기 방에 갇혔으나 새로운 자신의 몸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한다. 그러나 결국 몸과 정신의 괴리, 자아상과 타자상의 괴리와 갈등은 외부 세계와의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자발적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서로 다른 진행 방향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의 갈등 속에서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작품이 다루는 적응과 소외의 문제는 인류가 걸어온 진화라는 보편사적인 문제와 연관시킬 수도 있고 혹은 당대 니체나 프로이트의 논의에서 보듯 새로운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다 구체적으로 당대 서부 유대인들의 동화사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이방인으로서 유랑하거나 그들만의 게토에 살다가 근대 시민 사회가 자유와 시민권을 주자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버리고 동화로의 길을 택해 적극적으로 주변 사회에 편입하려 노력한다.
이 점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빨간 페터가 걸어간 여정에서 우의화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새로이 부상한 주류 사회의 반셈주의에 배척을 받게 되는데 이제는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차이가 아니라 그들의 생물학적 사회학적으로 구성된 몸의 담론에 의해 다시 구별되고, 이는 유대인의 몸으로 타자화되어 간다. 유대인 담론에 대한 차이 담론에 있어서 주요 논점이 바뀐 것이다. 이전에는 종교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타자 취급을 했는데 이제는 이 모든 것에서 구별이 되지 않으니 그들의 몸을 문제 삼는 것이다.
카프카 스스로 지적하듯이 서부 유대인은 동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미 유대인으로서의 전통을 버렸는데 주류 사회인 기독교 유럽 국가가 보여 주는 완강한 거부를 겪고는 자신들이 편입과 동화에도 실패했음을 인식한다. 하늘이 끌어 잡아당겨 주지도 땅도 받쳐 주지 않는다. 고립도 적응도 실패한 동화 유대인은 땅에서도 발을 딛지 못한 채 육지에서 ‘뱃멀미’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프카가 새롭게 접한, 유럽인과 서부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동부 유대인의 유대적 삶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서부 유대인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에게는 개인적 위안을 줄지언정 구제의 길은 되지 못한다.

 

카프카는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환경에서 유대인의 소외 과정을 무엇보다도 몸의 문제를 통하여 가장 적나라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해 낸 작가이다. 빨간 페터도 잠자도 무엇보다도 그들의 의식과 다른 그들의 몸에 의해 타자화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인식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주변 세계에 의해서만 야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오랫동안 자기 정체성이 실현되는 가장 확실한 매체이자 신체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몸은 더 이상 내면의 정신과 영혼을 자동적으로 외적으로 표현해 주는 매체가 아니고 사회와의 의사소통의 매체로 기능하지 않는다. 몸은 자아에 대한 표상과 사회의 외부적 표상이 부딪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변형을 일으킨, 즉물적 매체이자 장소가 되었다. 
카프카에게 몸은 위기를 드러내는 매체이자 새로운 시작을 실험하는 공간이 된다. 이 달라진 몸은 거꾸로 자신에게 정체성의 문제를 인식시키고 자성을 촉구한다. 빨간 페터는 동화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몸이 상기시키는 자신의 본래 정체성 때문에 불안해한다. 잠자는 잠에서 깨어난 후 변신한 몸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전 생활을 반성하고 반추할 기회를 얻게 된다. 원숭이 페터가 사회화가 되면서 인간 사회에 동화되었다고 강변하는 주장과 달리 자신의 몸 앞에 낯선 자가 되어 가듯, 잠자는 변신으로 인하여 갑자기 자기 몸 앞에 낯선 자가 되며 강압적으로 사회에서 격리된다. 잠자에게서 변신은 한편으로는 동화의 반대 길인 퇴화를 의미하고 동부 유대인에 대한 당대 일반 사회의 표상처럼 병들고 추한 다른 존재로 변모하여 사회에서 고립된다. 
카프카는 ‘동물 몸’을 통해 몸을 탈영토화하는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주류 사회의 배타적 표상이 체현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고립을 통해 자기반성과 자기 찾기가 가능해짐으로써 인물들의 무의식적 소망이 실현될 계기를 만들어 준다. 작가에게 유대인들의 추한, 퇴화된 몸이라는 사회의 클리셰는 벗어나고픈 악몽이었지만 자신들의 동화사를 반성하기 위해 스스로 다시금 뒤집어쓴 표지이기도 했다. 카프카의 변신한 갑충의 몸에는 당대의 이러한 담론들이 모두 엇갈리고 교차하고 있다. 카프카에게 몸이란 동물의 수준까지 내려간 인간 본래의 모습이자, 사회성을 자의적, 타의적으로 포기한 정체성이 표현되는 장소이고 거꾸로 사회적으로 경멸당하는 표상이 투사되는 장소이다. 이러한 점에서 매체로서의 몸의 위기는 당대의 언어의 위기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당시의 위기 담론과 일맥 상통한다.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두 텍스트는 당시의 인간 담론, 동물 담론, 몸 담론, 진화 담론, 유대인 담론이 복잡하게 얽힌 메타 텍스트이다. 한편으로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대의 시사성 높은 주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텍스트이고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당대의 시공간에 밀착하여 읽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 글에서 시도한 것은 당대인들에게는 너무나 자명했던,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카프카의 작품에는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단어 ‘유대인’과 유대인 담론을 중심으로, 그리고 최근의 매체로서의 몸의 담론과 결합시켜 읽어 내고자 한 것이다. 추상적 해석이 아닌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구체적 연결은 다시금 현대 세계와의 구체적 연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최윤영, 『카프카, 유대인, 몸』에서

 

다시 등장한 찰스 다윈…… 인간이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고상한’ 인간들에게 역시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주류 사회에도, 유대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었던 카프카는 원숭이 빨간 페터나 갑충이 된 그레고리 잠자가 느낀 혼란을 늘 갖고 있었겠지요.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와 함께 유대인을 여성으로 젠더화하고 그 몸을 허약한 것으로 재현하는 ‘퇴화론’이 확산되기도 했는데요. 이를 받아들인 유대인들 사이에서 몸을 단련해 ‘근육질’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합니다…… 카프카 스스로도 자신의 허약함에 대해서 인지했다고 해요. 이처럼 ‘내 몸 앞에 낯선’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알고 나니, 완전히 다른 몸을 가진 동물로의변신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오고,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요즘 출근 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스스로 어디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기에 종종 정신이 어리둥절하며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렇게 ‘허약함에 대한 인식’과 ‘내 몸 앞에 낯선’ 경험이 나의 현실로 빨려 들어오네요. 옛날에 카프카를 읽었을 때는 주목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가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에 집중하게 돼요. 여성이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들도 떠오르고요.

자기 몸 앞에 낯선 자. 내면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동화(同化)되어 있으나 그 집단의 ‘표준’과는 전혀 다른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철저히 타자화되는 무리들이 있다. 19세기 말에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던 프란츠 카프카는 ‘자기 몸 앞에 낯선 자’였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정체성과 소외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소설 속에 담아냈다. 저자 최윤영 교수는 ‘몸’이라는 개념과 당대 유대인 동화사 담론을 중심으로 카프카 소설을 해석하면서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고 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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