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신비한 동물 이야기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환상 동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려요. 보르헤스가 동서양의 신화와 문학, 전승 속 상상 동물 이야기들을 선별해 기록한 한 권의 박물지,  『상상 동물 이야기』입니다. ‘신비한 동물 사전’ 같은 이 책은 용과 불사조 피닉스, 그리핀, 나아가 엘프와 요정 이야기까지 망라하고 있어요. 다리가 여섯 달린 영양을 상상하고 달에서 토끼를 보고 거북의 등껍질에서 우주를 생각한 것을 보면, 신기하고 아름답고 무서운 동물들에서 출발한 상상력은 인간이 세계를 꿈꾸고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제목 ‘상상 동물 이야기’는 햄릿 왕자, 점, 선, 평면, 관처럼 생긴 것, 입방체, 창조와 관련된 모든 단어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신을 망라한 모든 것을 정당화할 것이다. 한마디로 삼라만상, 즉 우주를 다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상상의 존재’에 국한된다. 즉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 낸 기묘한 존재들에 대한 자료를 편집했다는 의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주의 의미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용(龍)의 의미 또한 애써 축소하거나 무시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과 일치하는 용의 이미지에는 확실히 어떤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용이 계속 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접하게 될 콜롬비아나 파라과이의 독자들을 책의 편집에 직접 초대하고 싶다. 그 지방 괴물들의 정확한 이름과 독특한 성격,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 등을 우리에게 보내 주기 바란다. 
다른 모든 종류의 수필이나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을 제공하는 로버트 버턴, 프레이저, 플리니우스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일관된 내용으로 구성되진 않았다. 만화경이 보여 주는 여러 가지 변이 형태들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듯이, 호기심 있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의 이런저런 내용을 마음대로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우주 창조와 관련해서, 중국인들은 만물이 ‘음(陰)’과 ‘양(陽)’이라는, 영원하고도 상호 보완적인 두 요소의 율동적인 결합에 의해 탄생했다고 말한다. 응축이나 어둠, 수동성, 그리고 짝수와 추위 같은 것은 음에 속하고, 성장과 빛, 격렬함과 홀수, 더위 같은 것은 양에 속한다는 것이다. 음은 여성, 땅, 오렌지색, 계곡, 강바닥, 호랑이 같은 것을 상징하고, 양은 남성, 하늘, 파란색, 산, 용, 기둥 같은 것을 상징한다.
중국의 용은 신비한 네 가지 동물 중 하나이다.(나머지 세 동물은 일각수, 봉황, 거북이다.) 여러 가지 경우로 볼 때 서양의 용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존재, 잘해 봐야 우스꽝스러운 존재인 데 반해, 중국의 전통적인 용은 신성한 것으로서 사자(獅子)라고도 할 수 있는 천사와 같은 존재이다. 다음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일화이다. 공자(孔子)가 현인인 노자(老子)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다. 그를 만난 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새들은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쳐 다니며 육지 동물들은 뛰어다닌다. 뛰어다니는 것은 덫에 걸릴 수 있으며 헤엄쳐 다니는 것은 그물에 걸릴 수 있고 날아다니는 것은 화살에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라는 것이 있다. 용이 바람 속을 어떻게 날아가는지,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오늘 노자를 만났다. 나는 감히 용을 만나고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용이나 용마(龍馬)는 황하에서 솟아올라, 양과 음의 상호 작용을 상징화한 둥근 태극 기호를 황제에게 가르쳐 주었다. 어떤 임금은 마차를 끄는 용, 혹은 의자로 쓰는 용을 소유했고, 또 어떤 임금은 용을 기르기도 했다. 이런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는 번영을 구가했다. 위대한 시인은 임금의 위급함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일각수는 차가운 요리 신세가 되었고, 용은 고기만두 신세가 되었다.”
역경(易經)』에서 용은 현자를 상징했다.
수 세기에 걸쳐 용은 제국의 상징이었다. 황제의 의자는 용상(龍床)이라고 불렸고, 황제의 얼굴은 용안(龍顔)이라고 칭해졌다.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릴 때에는 용을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용을 농부들이 열망하는 구름이나 비, 그리고 수량이 풍부한 강과 연결시켰다. “대지가 용과 일체가 된다.”는 표현은 비를 의미하는 일상적인 어구였다. 6세기경 장승요(張僧繇)가 그린 벽화에는 네 마리의 용이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용의 눈을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제히 그를 비난했다. 기분이 상한 그는 다시 붓을 들어 살아 움직일 듯이 생동감 있는 그림에 마지막으로 두 마리 용의 눈을 그려 넣었다. 그러자 “번개와 천둥이 치면서 벽이 갈라지고 용들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나 눈이 그려지지 않은 두 마리는 제자리에 남았다고 한다.”
중국의 용은 뿔과 발, 그리고 비늘이 있으며 척추가 가시처럼 꼿꼿하다. 그리고 언제나 내뿜었다 삼켰다 하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여의주에서 모든 힘이 나온다고 믿었다. 따라서 여의주를 빼앗기면 용은 무력해진다.
장자(莊子)는 고집이 센 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삼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용을 무찌를 수 있을 만큼 무예를 닦았다. 그러나 일생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장승요: 6세기 초엽에 양(梁)의 무제(武帝)가 궁중 화가로 임명한 화가로서 육조 시대의 3대가(大家) 중 한 사람이다. 용과 인물을 잘 그렸으며, 인도에서 전래된 부조(浮彫) 화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나라의 회화를 형성하는 데 유력한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날카로운 발톱과 날개가 달린, 거대한 뱀의 모습이 아마 서양의 용을 가장 충실하게 표현한 그림일 것이다. 검은색을 띨 수도 있지만, 광채를 번득이는 게 더 어울린다. 또한 불과 수증기를 내뿜는 것처럼 그려질 때도 있다. 서양 사람들은 이것이 용의 실제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용의 실제 모습을 특이한 종류의 뱀과 연관시켰던 듯하다. 플리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용은 여름에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코끼리의 피를 먹는다. 용은 사납게 코끼리를 공격하여 코끼리를 칭칭 감고서 이빨로 물어뜯는다. 피를 빼앗긴 코끼리는 결국 땅바닥을 구르다가 죽게 된다. 그러나 용도 상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눌려서 죽고 만다. 또한 에티오피아에는 용이 훌륭한 목장을 찾아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로 간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모험을 위해서 네다섯 마리의 용은 서로를 껴안아 선박 형태를 만들었다. 그러나 머리는 언제나 물 밖으로 내놓았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용을 이용한 여러 가지 처방이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말려서 꿀과 버무린 용의 눈으로는 공포와 불안감에 효과가 탁월한 연고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용의 심장에 있는 지방질을 양의 가죽에 싸서 사슴의 힘줄로 사람의 팔에 묶어 놓으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용의 이빨을 몸에 묶어 놓으면 주인은 관대해지고 임금은 은혜로워진다. 이 문헌에는 비록 회의를 나타내기는 했지만 인간을 무적으로 만들어 주는 약의 조제법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즉 사자의 털과 골수, 방금 경주에서 우승한 말의 거품과 개의 발톱, 그리고 용의 꼬리와 머리를 가지고 이러한 약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일리아드』 11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가멤논의 문장(紋章)에는 남근이 세 개나 되는 파란 용이 그려져 있다.” 몇 세기 후 스칸디나비아의 해적들은 문장에 용을 그렸고, 뱃머리에도 용의 머리를 새겼다. 로마인들은 보병들의 깃발에 용을 그려 넣었다.(반면에 기병대 깃발에는 독수리를 그렸다.) 지금의 ‘용의 부대’의 기원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게르만족 출신 임금들은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깃발에 언제나 용을 그려 넣었다. 아티스가 등장하는 로망에 이런 구절이 있다.
로마인들은 언제나 이것을 지니고 다닌다.
이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로마인을 두려워하게 한다.
서유럽인들은 언제나 용을 사악한 짐승으로 생각했다. 고전에 나오는 영웅들(헤라클레스, 시구르드, 성 미카엘, 성 조지)의 투쟁 대상에는 언제나 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용을 굴복시켜 죽이는 것이 영웅담의 소재가 되었다. 게르만족의 전설에서 용은 값비싼 물건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무훈시 『베어울프』(8세기경 영국에서 만들어진 시)에도 삼백 년 동안 보물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 용이 등장한다. 도망쳐 나온 노예는 용이 지키는 동굴에 숨어 들어가서 항아리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용은 보물을 도둑맞은 것을 알고 쫓아 나와 도둑을 죽여 버린다. 그 후로는 가끔 동굴에 내려와서 살펴보곤 한다.(시인의 놀랄 만한 상상력이 용에게 상당히 인간적인 모습을 부여하고 있다. 즉 상당히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후 용은 전 국토를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자 베어울프는 용을 찾아 나서고, 용과 싸워서 죽인다.

 

사람들은 용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16세기 중엽 상당히 과학적인 책이었던 콘라트 게스너의 『동물지(動物誌)』에도 용에 관한 기록이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용의 명성은 상당히 퇴색했다. 우리는 사자라는 동물을 상징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실재하는 존재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몸은 사람이지만 머리는 소인 인간)는 상징으로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동물은 용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 동물 중에서 가장 운이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철이 덜 든 사람이나 유치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 역시 요정들의 이야기에 용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데서 기인한 근대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성 요한은 「요한의 묵시록」에서 용을 두 번 언급했다. 즉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늙은 뱀”이라고 말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자이자 용이다. 용맹함은 사자와 같고 계략은 용과 같다.” 융 역시 용 안에는 하늘과 땅의 기본 요소인 뱀과 새의 성질이 혼재한다고 말했다.

 

아티스: 12세기 후반의 로망인 『아티스와 프로피리아스』에 나오는 인물이다.
시구르드: 아이슬란드 전설에 나오는 영웅. 게르만 신화의 지크프리트에 해당된다.
성 미카엘: 「요한의 묵시록」 12장 7절 참조.
성 조지: 영국의 수호 성자. 4세기 초에 팔레스타인에서 순교했다. 훗날 중세에 가장 널리 유포되었던 성인전(聖人傳) 『황금 전설』에 의해서 용을 퇴치했다고 알려졌다.
콘라트 게스너: 16세기 독일계 스위스의 박물학자. ‘독일의 플리니우스’라고 일컬어진다. 『동물지』는 그 당시의 지식을 집대성한 동물학 저서로, 1551년부터 그가 죽은 뒤인 1587년까지 전5권으로 출판되었다.
 

영국인들은 얼룩이 있는 달의 모습이 인간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믿었다. 『한여름 밤의 꿈』에도 ‘달나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두세 차례 언급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달나라에 있는 가시 돋친 얼굴 혹은 가시 돋친 풀에 대해 언급했다. 단테의 「지옥편」 제20곡 마지막 구절에도 카인과 가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토마스 카시니의 주석은 토스카나 지방의 우화를 상기시킨다. “신께서 카인을 달나라에 가두셨다. 그리고 시간이 끝날 때까지 가시 돋친 얼굴을 이고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달나라에는 신성한 가족이 살고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루고네스는 「감상적인 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성모는 아이를 안고, 옆에는
성 요셉이 있었지.(몇몇은 운 좋게
그의 지팡이를 볼 수 있었지.) 그리고 착한 순백색의 당나귀가
달나라 평원을 걷고 있었네.
반대로 중국인들은 달나라에는 토끼가 산다고 믿었다. 그들에 따르면 부처가 전생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자 그의 배를 채워 주기 위해 토끼 한 마리가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었고, 부처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토끼의 영혼을 달나라로 보내 주었다고 한다. 또한 토끼는 달나라의 월계수 아래에서 신비한 절구에 불멸의 선약을 섞은 약을 찧고 있다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이 토끼를 ‘의사’나 ‘비취 토끼’ 또는 ‘보석 토끼’라고 부른다. 이러한 토끼는 수천 년을 살며 늙을수록 맥박이 더욱 세게 뛴다고 한다.
 
 
레오폴드 루고네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시인, 작가, 역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판된 시집 『황금산』으로 문명(文名)을 얻었고, 파리로 가서 《남아메리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기원전 22세기, 현명한 천자였던 우(禹)임금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새로 생긴 산과 강, 그리고 호수의 길이를 측량했다. 그런 뒤에 농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지를 아홉 등분했다. 그 덕분에 그는 하늘과 땅을 홍수로 뒤덮으려 하는 물을 다스릴 수 있었다. 역사가들은 우임금이 강에서 나온 거북의 계시를 받아 대지를 아홉 등분했다고 말한다. 모든 거북의 어미인 이 파충류가 물과 불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켄타우로스 성좌를 형성하는 별들의 빛이 이 거북의 본질이라고 믿기도 한다. 이 거북의 등에는 ‘홍범(洪範)’이라는 우주의 비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밀의 세부 항목에 대한 도식이 흑백의 점선으로 그려져 있다.
 

중국인들은 하늘은 반원형이고 대지는 각이 진 것이라 믿었다. 그들이 거북의 등에서 우주의 이미지와 모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든 거북은 우주의 영원함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영적인 동물에 일각수와 호랑이, 용, 봉황과 함께 거북이 포함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점쟁이는 거북의 등껍질에서 길흉의 징조를 찾기도 했다.
단구(丹龜)는 홍범을 황제에게 알려 준 거북의 이름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진홍색 무언가가 불빛 속에서 천천히, 벌벌 떨면서, 부자연스럽게,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형태로 변했다. 그것은 동굴에서 나와 바닥으로 구물구물 기어 왔다. 물론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시체의 것 같은 아래턱을 드러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뒤이어 구멍에서 다른 것이 나타났다. 나뭇가지같이 생긴 것이 나오더니 그다음에는 일고여덟 개의 반짝거리는 점이 별자리처럼 불규칙하게 무리를 이루었다. 다음에는 마치 일부러 광을 낸 듯 붉은색 반짝임을 반사하는 관처럼 생긴 것들이 한 무더기 나왔다. 나뭇가지 같던 것이 갑자기 기다란 촉수로 변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점들이 눈꺼풀이 덮인 수많은 눈으로 변하는 것과 실린더처럼 생긴 몸통이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놀라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계속해서 끔찍하게 생긴 각진 물건이 나왔다. 그리고 수많은 관절로 연결된 다리가 나왔다. 이제는 전신이 다 드러났구나 생각한 순간, 두 번째, 세 번째 몸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은 개미 허리같이 가느다란 것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세 부분은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꽉 밟혀서 뭉개진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 동물은 기괴한, 그러나 엄청나게 큰, 다리가 많은 괴물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형체를 한, 인간이 아닌 것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이 두 동물은 그들 뒤의 바위 벽에 무서운 그림자를 너울거리며 협박하듯 서 있었다.
 
C. S. 루이스, 『페렐란드라』, 194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남진희 옮김, 
『상상 동물 이야기』에서
 
 
 

글을 읽으며 동서양 신화에 등장하는 환상의 동물 중 유사한 동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는데요, 새를 모티브로 한 봉황과 피닉스가 곧바로 떠오르더라고요. 동양의 봉황은 용처럼 수호의 역할을 하는 신조(神鳥)로, 서양의 피닉스는 영원한 생명을 지닌 신비로운 동물로 등장하죠.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이 상반되는 성격을 보이는 것에 비해, 봉황과 피닉스는 동서양에서 모두 신성하고 귀한 존재로 여겼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많은 환상의 동물 같아요. 문화권이 다른데도 유사성 있는 환상의 동물들을 보면 ‘인간이 공유하는 상상의 DNA가 비슷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은 정말 환상의 동물들이 우리들 곁에 실존하고 있거나요! 

신비한 동물들이 우리 곁에! 저도 ‘중국 용’과 ‘서양 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눈이 갔어요. 동서양의 환상동물들을 아우르는 보르헤스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면서요. 세계의 기상천외한 상상 동물들을 살펴보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의 이야기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요. 
책 안에는 용과 달나라 토끼뿐 아니라 원추형 다리를 가진 코끼리, 머리 셋 달린 개 등 다양한 상상 속 동물들의 그림이 있는데요. 그걸 보니 온갖 동물들에 날개를 달았던 어린 시절 저의 낙서장이 생각났어요. 다들 어떤 동물들을 상상하고 그리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르헨티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다양한 현대 사상을 설명하고 이끌어 온 불세출의 천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특히 동서양을 넘나드는 방대한 독서량으로 유명하다.  『상상 동물 이야기』는 작가가 엄선한 신화와 문학, 전승과 문헌 속 상상의 동물들이 가득 담긴 색다른 박물지다.
다리가 여섯 달린 영양, 불사조 피닉스, 일각수, 스핑크스, 그리핀 등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동물들부터, 요정, 골렘, 놈, 님프 등 신화 속 정령에 가까운 생물들까지 보르헤스가 꾸며 놓은 이 동물원은 한 번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매혹적인 지도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일곱 번이나 《뉴욕 타임스》 올해의 일러스트 북에 선정된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 피터 시스가 특유의 유일무이한 화풍으로 그려 낸 상상 동물의 이미지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몽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상상 속 가장 신비한 존재를 떠올리며 역사를 통해 인류가 꿈꾸어 온 환상적인 생물들을 눈앞에 그려 보는 매우 특별한 독서 체험. 책장을 덮은 순간, 방금 본 ‘불가능한 풍경’을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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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랑
    2021.3.24 3:04 오후

    오늘 한편의 편지 너무 흥미롭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읽었어요. 역시 상상과 환상의 힘이란 대단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글에 등장한 동물들은 결국 인간의 상상적 구성물이겠지만, 어떤 경험과 지식 등이 배경이 되어 그런 구성물이 만들어지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지 더 알아보고 싶어집니다. (사실 전 환상의 존재들이 실존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랍니다(!!)) 전 용의 매력을 굉장히 크게 느끼는데요, 동서양의 용을 비교한 글을 읽고 또 제가 접했던 미디어(책, 영화, 만화 등) 속의 용을 떠올려보니 묘사도 상징도 인식도 다양하게 투영되었음이 느껴집니다. 기반에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는 있겠지만요. 그나저나 보르헤스 정말.. 천재… 이렇게 읽을 책이 하나 더 늘고….

    1. 2021.3.29 1:44 오후

      파랑 님, 편지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주셨다니…고맙고 반갑습니다.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는 환상동물 사전 같아서, 잠들기 전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기상천외한 상상 동물을 만들어 낸 사회의 경험과 지식들이 궁금해졌는데요.
      엮어 본다면 ‘환상 동물의 사회문화사’가 될까요? 무척 기대가 됩니다!: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