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여자가 행복해지는 방법

 

 

배우는 기쁨을 여성에게 허하라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지난 3월 8일 월요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민음사 인생일력에 이틀에 걸쳐 실었던 여성의 날 특집 명문장의 원문을 오늘 보내드려요. 때는 바야흐로 1908년, 대한제국의 한 열혈 청년이 여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글을 잡지에 발표했는데요. “남자가 여자를 노예와 가축처럼 기르는 이유”에 관해 백 년 전 사람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함께 읽어보실래요?

 

지금 국가를 보존하고 인종을 보존할 뜻이 있는 사람은 모두 부국강병의 기술에 종사하려 급급해하지만 나는 반드시 “여자를 교육하는 업무가 실로 이보다 급한데 하나도 시행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다. 급선무라고 말하면 힐난하는 자는 “오늘날 어느 겨를에 여자의 공부를 급선무로 삼는가?”라고 할 것이다. 달걀을 붙들고 닭이 새벽 알리기를 바란다거나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판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듯하지만, 이것은 그 근본을 모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현재의 참상을 따져 보면 그 원인은 여자를 교육하지 않은 데 있다.
 
대저 국가를 보존하고자 하면 그 국민이 각기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생계를 꾸린 뒤에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 지금 우리 동포가 대략 이천만 명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여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그 나머지 천만 명 중에 스스로 일해서 먹고사는 자가 반드시 전부는 아닐 것이요,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으며 놀고먹으면서 낭비하는 자가 또 몇백만 명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이른바 “한 사람이 농사를 짓고 열 사람이 먹는다.”라는 말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데 추위에 떨고 굶주리는 것을 어찌 면할 수 있겠으며 부국강병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한 나라의 인민과 물산을 모두 합쳐 그 소비한 숫자를 소득의 비율에서 공제하고 나서 여유가 있어도 국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거늘, 더구나 우리나라 인민 중에 여자는 스스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남자가 가축과 노예처럼 기르니, 여자만 지극히 괴로울 뿐 아니라, 남자도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일하여 얻은 소득으로 처자를 양육하기가 충분치 않다. 그리하여 남자도 지극히 괴로워 항상 서글피 가난을 걱정하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그 밖에 사농공상을 막론하고 춥고 굶주려 시신이 도랑에 구르는 자가 또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논해 보자면 이러하다. 『대학』에 이른바 “생산하는 자가 많고 소비하는 자가 적어야 한다.”라는 말과 고생이 줄어야 성과가 배가된다는 경제 원칙상의 논리로 미루어 보아도, 한 사람이 하는 일로 한 사람이 먹고살 것을 마련하면 가난을 걱정하며 한탄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이유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그 최초의 기점은 부인이 직업이 없는 데서 비롯되었다. 여자도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남자에게만 전적으로 책임 지우겠는가? 여자도 사리를 통달하면 쉽게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부라는 것은 직업의 어머니이다. 그렇다면 부인이 직업이 없는 것은 하늘의 이치상 마땅한 것이 아니요, 교육을 하지 않아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형세상 당연하다.
 
이와 같이 성장하여 애처롭게 남이 먹여 살려 주기를 바라니, 이 때문에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며 여자는 편하고 남자는 힘들다. 부부 사이에서도 귀하고 천하며 편하고 힘든 것이 서로 상반되니, 사람 마음에 함께 즐거워할 리가 있겠는가? 아, 국가는 어떻게 강해지는가? 인민이 부유해야 나라가 강해진다. 인민은 어떻게 부유해지는가? 사람마다 스스로 먹고살기 충분하면 인민이 부유해진다. 

 

 

아, 옛날 중화 문명 시절에는 사람들이 늘 “부인은 재주 없는 것이 덕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의 눈먼 선비가 이 말을 고집하여 천하의 여자로 하여금 한 글자도 읽지 못하게 하고 나서야 현숙(賢淑)의 으뜸이라 말하니, 이는 실로 천하를 해치는 도이다. 옛날에 재주 있는 여자로 불린 이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하고, 꽃을 꺾고 풀을 뜯어 장난을 치며 봄을 상심하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등의 문학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러한 일들은 배움이라 할 수 없다. 남자라도 달리 배우는 것 없이 이로써 이름나고자 한다면 부랑자라고 지칭할 것이니, 더구나 여자는 어떻겠는가.
 
내가 말하는 배움은 안으로 그 가슴이 활짝 트이게 하여 스스로 뜻을 세우고 자신을 수양하는 요령을 마음에 새기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며, 밖으로 학문의 이치를 가르치고 이끌어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기능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인격을 이룰 것이니, 부인의 덕에 무슨 해가 되겠는가. 저 시골 부녀자와 벼슬아치 아내의 행동을 관찰하면, 서로 빗자루를 가져갔다고 욕설을 퍼붓거나 입술을 삐죽거리며 따지는 따위의 일이 더더욱 심하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보통 사람이 비루하고 다투는 폐단은 그 견문이 지극히 좁기 때문에 생긴다. 만약 그 사람이 만고의 일을 알고 오대륙과 교류하여 남과 함께 살아가는 방도와 만국이 강하고 약한 이치를 통달하게 하면, 그 마음이 천하를 걱정하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기에 겨를이 없을 것이니, 집안 부녀자의 일을 두고 머리 굴려 따질 여력이 필시 없을 것이다.
 
지금 부인이 편협한 폐단은 천지 사이의 사물에 대해서 하나도 들은 것 없이 죽을 때까지 가정에만 오로지 정신이 집중되어, 요리나 바느질 같은 지극히 사소한 일의 범위 안에서만 훤한 마음과 힘을 사용할 뿐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 누추한 습속은 배우지 않고도 모두 능숙해진 것이다. 전국 동포 수만 수천 가구 중에서 가정 안팎에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며 말을 할 적에 종신토록 이간질이 없는 경우는 만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발단은 시어미와 동서, 시누이 사이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시대를 분개하는 사람은 걸핏 하면 “부인은 가까이해서 아니 된다.”라고 하고, “여자가 간섭하면 만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함께 의논하기 부족하다.”라고 하며, 평소 길을 가다 여자가 먼저 지나가면 마가 끼는 불길한 물건 보듯이 그날 외출을 그만두곤 한다. 이렇게 죄를 얽어 놓고서 유유히 천년 세월 동안 그 얼마나 많은 집안에서 여자를 규방 안에 가두어 놓고 행동을 속박하며, 그 총명과 지혜를 아예 끊어 버려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던가. 아, 여자여, 어찌 원통하지 않은가.
 
푸르고 푸른 하늘이시여! 지극히 공정하고 사심이 없으니, 여자에게 부여한 본성이 어찌 본디 나쁜 것이었겠는가? 흙덩이 같은 몸뚱이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 안에 갇혀 있으면서 남자에게 누를 끼치게 된 것은 학식이 없어서 스스로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남에게 먹여 살려 주기를 바라며 평생을 살아가니, 남자도 여자도 모두 넉넉하지 못하다. 하루 종일 조용히 지내면서 서글피 탄식하느라 사람의 영혼이 손상되고 사람의 의지가 작아지니, 어찌 화목할 수 있겠는가? 비록 총명하고 호걸다운 선비라도 좁은 규방 안에다 끌어넣고 다시 몇 해를 보내게 한다면 필시 그 의지와 도량이 줄어들고 재주와 기개가 사그라질 것이다. 더구나 본질이 연약한 여자에게 책임을 오로지 전가하는 것은 몹시 잘못된 일이니, 이를 치료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일반적인 행위는 여자가 항상 남자보다 못하다.”라고 말한다. 배움의 이치를 따져 보자면 실제 배우고자 할 때 남녀 각기 장점이 있으니 전적으로 잘못이라고만 할 수만은 없다. 다만 여자의 특질을 대략 논하자면 지극정성이고 세심하여 일을 할 때 매사 꼼꼼하고, 끝까지 참을성이 있으며, 조용하고 번다하지 않아 종종 남자가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컨대 한여름 무더위에 바느질과 요리를 능히 해낼 수 있으며, 봄비가 쏟아질 때도 비를 맞으며 빨래를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배우지 않고도 저절로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잘 이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저 서구는 여자의 배움이 발달하여 각기 직업을 가진 것에서 증명이 된다. 예컨대 교육, 의학, 제조 등 전문 직종에서는 남자보다 낫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이전에는 국민의 지혜가 꽉 막히고 기술이 모자랐지만 갑자기 유신(維新)을 거치자 마침내 오늘날처럼 되었다. 예전에는 어리석었으나 오늘날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다. 좇아가 이끌어 북채를 한번 움직이자 수많은 실이 함께 움직이는 것과 같다. 아, 여자는 수천 년 동안 배움의 길이 막히고 생계의 길이 끊어져 고개를 숙인 채 신하 노릇 하인 노릇에 안주한 것은 힘으로 억눌러 그런 것이지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다. 만약 학문에 종사하고 평등하게 교육을 시행한다면 함께 권리를 누릴 것이다.
 
지금 또 비난하는 사람은 “저 서양 사람이 부강해진 것이 학교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가장 뛰어난 방도는 웅장한 전함과 강력한 총포, 신속한 철도와 흥성한 광업이다. 이러한 일들은 여자가 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여자의 배움이 급선무이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부강의 원인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농업과 공업, 의학과 상업, 물리학과 교육학 등의 학문은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배워서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그저 남자의 배움만 말하고 여자의 배움을 소홀히 여기면 몹시 잘못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한다면 여자 교육이 급선무이다.”라고 하겠다. 여자의 배움이 가장 성하고 강한 곳은 미합중국이다. 그다음으로 성하고 강한 곳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이다. 여자의 배움이 쇠퇴하면 어머니 교육이 잘못되어 직업이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지혜로운 국민이 줄어들어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으니 인도, 이란, 터키, 청나라가 이러하다.
 
아, 오늘날 우리 한국이 부녀자의 배움을 진흥해야 하는 것이 이와 같이 급선무이지만, 어찌 부녀자의 배움이라고 말하고 그만둘 문제이겠는가? 배움이라는 것은 아침저녁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것이 아니요, 스승 및 학우와 강습하여 지혜를 열고 나라 안팎을 유람하여 재주를 넓혀 몇 가지가 서로 보태져야 배움이 성취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여자는 규방 깊숙이 있으면서 문밖을 나오지 않아, 눈으로 한 사람도 보지 않고 발로 한 도시를 밟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몸을 숨겨 내외가 몹시 엄하다. 이와 같으니 교훈적이고 평범한 말조차 듣기 어렵거늘, 실질적인 학문을 강구하여 실제적인 쓰임에 이르도록 하고자 한다면 특별한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성공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국내 학교의 숫자를 대략 계산하면, 남학교는 서울에 관립과 사립의 대학교, 중학교, 소학교가 육십여 곳을 겨우 넘고, 여학교는 일고여덟 곳에 학생 수는 천 명에 불과하다. 지방은 오직 수원, 인천, 평양, 부산 등지뿐이다. 아, 일천만 여성계에 지금 학생이 겨우 수백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은데도 나라가 자립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랑하는 우리 동포여! 그저 분개하지만 말고 힘쓸 방법을 찾아 아들과 딸의 교육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여자의 배움에서 교과 과정을 말하자면, 수신(修身), 교육(敎育), 국어(國語), 한문(漢文), 역사(歷史), 지리(地理), 수학(數學), 이과(理科), 가사(家事), 습자(習字), 도화(圖畵), 재봉(裁縫), 음악(音樂), 체조(體操) 등 여러 과목이 있다. 남자의 배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군사와 정치 몇 가지뿐이다. 이와 같은 것을 모두 잘 배우면 현재의 우리나라를 어찌 만회하지 못하겠는가? 이를 측은히 여겨 우리 황상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배움을 권함에 윤음이 절절하셨다. 이어서 또 이웃 나라에 황태자를 보내 유학하게 하시고 황후 폐하께도 수업을 받게 하셨으니, 실로 우리 동방에 없었던 성대한 일이며 만년이 지나도록 무궁한 아름다운 업적이라 하겠도다. 아, 전국의 동포들이여! 성상의 뜻을 떠받들어 골수 깊이 새기고 신속히 시행하여야 할 것이며, 성상의 제도를 어기지 않아 멸족의 화를 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시골 사람이라 학계의 청년으로 경성에서 더부살이한 지 지금 여러 해가 되었다. 매번 여성계의 소식을 보고 들으니, 부패한 관습이 시골보다 더욱 심하여 마음속으로 항상 통탄하였다. 지금 새해를 맞이하여 여관의 차가운 등불 아래 고향을 아득히 떠올리니, 어버이 생각이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국내 동포의 정경(情景)을 생각하면 마음이 싸늘해지고 뼈가 시리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일을 바란다면 여자 교육이 급선무인지라, 대서특필하여 간곡하게 말한다.
 
아, 전국의 자매 여자들이여! 수천 년 동안 신하와 첩과 노예로 가축처럼 길러졌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때가 왔도다, 때가 왔도다. 다행히 이때에 태어났도다. 속히 수업을 받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며 행복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희는 입에 밥을 넣지도 몸에 옷을 걸치지 못할 것이요, 고삐 잡히고 재갈 물려 끌려다니는 일이 지난날보다 더욱 심할 것이니,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동양과 서양 과학자의 이론, 명철한 스승들의 경험과 격언을 현 상황에 참작하여 거친 글을 얽고 피를 토하며 기원하노니, 아, 나라를 다스리는 당국자는 여자 교육을 급선무로 삼을지어다.
 
 
 
─ 김하염, 「시급한 여자 교육(女子敎育의 急先務)」 중에서
『한국 산문선: 근대의 피 끓는 명문』 수록
 
 
 

여자가 직업을 갖고 생계를 꾸릴 수 없는 문제를 교육받지 못함에서 찾는 것이 절절합니다. 여성의 교육이 가장 성한 나라로 미국을 꼽고, 그 다음 영국, 독일, 프랑스 등등을 줄 세운 것도 흥미롭습니다. 전 세계를 참조점으로 삼아 우리의 위치를 보고 있네요.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모인 사상가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생각나요. 팽크허스트는 당시 빈민구제 운동 및 지역 인구 조사 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노동계급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는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 저축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움직여야 하는데, 투표권이 없으니 목소리가 닿지 않았던 거죠. 
예상치 못한 재밌는 연결이 또 있는데요, 팽크허스트와 함께 활동했던 한 영국 여성이 나중에 한 조선 여성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며 여권 운동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는 겁니다.“내가 조선의 여권 운동자 시조가 될지 압니까.”라고 남긴 이 사람은 바로 나혜석이었어요.

평설에 따르면 이 글이 직접 영향을 받은 건 바로 청나라 말의 사상가 량치차오래요. 여학(女學, 여성 교육)이라는 개념을 직업 교육의 측면에서 논한 『변법통의(變法通議)』 중 ‘논여학(論女學)’ 항목. 그리고 주석에 따르면 글 속의 자극적인 표현들, 예를 들어서 “입술을 삐죽거리며 따지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와 같은 문장은 2000년 전의 고전 『한서(漢書)』에서 따온 거래요. 가족 간의 갈등이 극심하다는 뜻으로 으레 썼던 옛 표현이지만, 이런 표현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점이 글쓴이의 선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제일 궁금한 건 글쓴이 김하염(金河琰)의 정체인데, ‘서북 출신의 문인으로 계몽 활동에 힘을 쏟은 인물인 듯하다’는 추측만 있을 뿐 생몰년조차도 없으니 묘연하네요.

“『한국 산문선』은 고대로부터 근대까지 한문으로 된 명문을 뽑고자 한 기획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대한 제국기 격랑의 근세사를 몸으로 겪은 대한 사람의 피 끓는 명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 이제 백 년이다. 나라는 사라졌어도 사람과 정신은 사라지지 않아 대한 독립을 외치며 들고일어났다. 그 점에서 3·1 운동은 국민이 주인 되는 근대 국가 대한민국의 정문을 열어젖힌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를 기리는 동시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달래고자 백여 년 전후의 명문을 골라 현대의 문장으로 소개하였다. ‘대한 사람’의 시대정신이 글 한 편 한 편마다 약동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렇게 『한국 산문선』의 별권을 낸다.” ─ 해제 중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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