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나라를 위해 아기를 생산해야지

 

 

모옌 『개구리』 중에서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오늘은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의 『개구리』를 가져왔어요. 모옌은 50여 년간 시골 마을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했던 자신의 고모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고모에 대해 말할 때 1970년대에 본격화된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고요. 한 남자가 자신의 고모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데서 시작하는 『개구리』는 중국 가족계획 정책 시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 줍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우리 집 암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암소가 우리 어머니 흉내를 내는 건지, 아니면 그 송아지가 내 흉내를 내는 건지, 송아지 다리가 먼저 나오다가 그만 배 속에서 걸려 버렸어요. 암소가 답답해서 음매 소리를 지르는 모양새가 무척 괴로워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랑 아버지 모두 조급한 마음에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 구를 뿐 달리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소는 농민들에게 밥줄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게다가 생산대 소를 맡아 기르던 중이었거든요. 이러다 진짜 죽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나는 거였어요. 어머니가 살며시 우리 누나에게 말했어요. 만아, 고모가 돌아온 것 같은데. 어머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나가 달려 나갔어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흘겨보며 말했어요. 지금 뭐 하는 거요? 그 애는 사람 살리는 의사 아니오! 어머니가 말했어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죠.
고모가 누나를 따라 들어왔습니다.
고모는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신경질을 냈어요. 지금 누구 죽일 일 있어요? 아기 받는 것만 해도 바빠서 미칠 지경인데 이젠 송아지까지 받으라고 해요?
어머니가 웃었어요. 아가씨, 그러기에 누가 우리 집안에 태어나래요? 아가씨 아니면 누구에게 부탁해요? 사람들이 모두 아가씨더러 부처가 환생한 거라고 하는데,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고 만물을 구해야지요. 소가 축생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생명이잖아요. 죽어 가는 걸 보고 안 구해 줄 수 있어요?
고모가 말했어요. 언니, 언니가 글자를 모르는 게 다행이네. 글자까지 많이 알면 어디 이 조그만 허핑 촌으로 만족할 수 있었겠어요?
어머니가 말했어요. 내가 아무리 아는 글자가 많다 한들 아가씨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겠어요?
고모는 여전히 화난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이 다 풀린 것이 분명했습니다. 날이 이미 어두웠던 터라 어머니는 집 안의 불이란 불은 죄다 밝히고 등 심지를 최대로 올린 다음 외양간으로 향했습니다.
암소는 고모를 보자마자 앞다리를 굽혀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고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우리도 덩달아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모가 소를 살펴보더니 동정 반 농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또 다리가 먼저 나오는 놈이 있네.
고모는 혹시라도 우리가 충격을 받을까 봐 우리를 마당으로 쫓아냈습니다. 우리는 고모가 큰 소리로 지시하는 걸 들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모의 지휘 아래 암소의 분만을 도와주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음력 보름밤, 남동 방향에 떠오른 달이 세상을 하얗게 비출 때 고모가 소리쳤습니다. 좋아. 이제 됐어!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외양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어미 소 뒤에 온몸에 점액이 잔뜩 묻어 있는 아기 송아지가 있었습니다. 흥분한 아버지가 소리쳤어요. 옳거니, 암송아지로군!
고모가 씩씩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정말 이상하네. 여자가 딸을 낳으면 남자는 우거지상이 되던데. 소가 암송아지를 낳으니까 남자 입이 헤벌어지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암송아지는 자라면 다시 새끼를 낳잖아! 
고모가 말했어요. 사람은요? 여자아이도 커서 시집을 가면 아기를 낳잖아요?
아버지가 말했어요. 그거야 다르지.
고모가 말했어요. 뭐가 달라요?
아버지는 고모가 대들자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확실히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고모의 노력은 돈만 낭비하는 꼴이었고 고모에게 오명만 안겨 주었습니다. 처음에 나라에서는 공짜로 각 마을 여성 주임에게 콘돔을 주고 이를 가임 여성들에게 배급해서 잠자리에 든 남성들이 반드시 사용하도록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배급받은 콘돔을 사람들은 돼지우리에 버리거나 풍선 놀이를 하거나 아예 색을 칠해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게 했습니다. 고모는 집집이 돌아다니며 피임약을 나누어 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한 여성들이 피임약을 거부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억지로 입에 틀어넣어도 뒤로 돌아 손가락이나 젓가락을 입에 넣어 약을 토해 버렸죠. 상황이 이러니 결국 남성에 대한 정관수술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을에 우리 고모와 황추야가 정관수술을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어요. 어떤 사람은 이론은 황추야가 세우고, 고모가 임상을 맡았다고 하기도 했어요. 샤오샤춘은 결혼도 하지 않은 두 여자가 완전히 변태라고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며 내기도 했습니다. 쌍쌍으로 다정한 부부들 모습에 질투를 느낀 두 여자가 대를 끊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는 거예요. 샤오샤춘 말에 따르면 우리 고모와 황추야가 수퇘지에 이어 수원숭이를 가지고 실험을 한 다음 사형수 열 명에게 시술한 결과 성공했다는 겁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형수 열 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고요. 물론 샤오샤춘이 떠벌리는 소리가 모두 거짓임이 금세 판명이 되긴 했지만요.
그즈음 마을 방송에 자주 고모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각 대대 간부들은 주목하십시오. 공사 계획생육 지도분과 8차 회의 정신에 따라 아이를 셋 이상 낳은 남자는 모두 공사 위생원에 와서 정관수술을 받으십시오. 수술 후 영양보조비 20위안이 지급되고, 일주일 휴가와 노동점수가…….
방송을 들은 남자들이 모여 불평을 늘어놓았어요. 세상에, 돼지, 소, 노새, 말을 거세한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어디 사람을! 황궁에 들어가 내시를 할 것도 아닌데 우리 불알을 까서 뭐한다는 거야? 마을 계획생육 간부가 정관수술이란 어쩌고 하며 입을 열려고만 하면 그들은 눈을 까뒤집으며 대들었어요. 지금은 저렇게 그럴싸하게 말하지만 일단 침대에 올라가서 마취약 주사하고 나면 아마 불알뿐만 아니라 우리 거시기까지 모두 잘라 버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아마 여자들처럼 앉아서 오줌을 싸야 할걸!
1962년 가을, 가오미 둥베이 향 90만 평에 고구마가 풍년이 들었습니다. 거의 3년 동안 전혀 수확을 내지 못한 골칫덩어리 땅이 타고난 후덕하고 인자한 본성을 살려 기꺼이 우리에게 풍년을 선사한 것입니다. 그해 30평당 평균 고구마 수확량이 1만 근을 넘었습니다.
우리는 쑥쑥 자랐습니다. 고구마를 한껏 먹은 여자들은 가슴이 점점 커지고, 달거리도 제 주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들 허리도 곧아지고, 입가에도 수염이 자라났으며 점차 성욕도 되살아났습니다. 고구마를 실컷 먹기 시작한 후 몇 달이 지나자 마을의 젊은 여자들은 거의 모두 아기를 가졌습니다. 1963년 초겨울, 가오미 둥베이 향에 건국 이후 첫 번째 베이비붐이 일어났습니다. 그해 우리 공사의 52개 마을에서 2868명의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해 태어난 아이들에게 고모는 ‘고구마 아기’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고구마 아기’가 출생한 집 가장들은 공사에 가서 아이를 호적에 올리면 2미터 정도의 천을 살 수 있는 ‘포표(布票, 옷감을 살 수 있는 구매권)’와 두유 두 근을 배급받았습니다. 쌍둥이를 낳은 가정은 배급이 곱절이었고요. 가장들은 황금색 두유와 잉크 냄새가 나는 ‘포표’를 만지작거리며 한결같이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감격했습니다. 역시 새 시대가 좋아! 아이 낳았다고 선물도 주고. 우리 어머니가 말했어요. 나라에 사람이 모자라니까 손꼽아 아이를 기다리는 거야. 나라에 사람이 귀한 거지!
사람들은 감동과 함께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꼭 아이를 많이 낳아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지. 공사의 식품 창고 관리인인 샤오상춘의 아내, 그러니까 내 친구 샤오샤춘의 엄마는 샤춘 아래로 누이동생을 세 명이나 낳았습니다. 막내가 아직 젖을 떼지 않았는데도 벌써 다시 배가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방목하고 돌아올 때 저는 샤오상춘이 낡아 빠진 자전거를 타고 작은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자전거가 그의 비대한 몸집을 이기지 못해 끽끽거렸어요.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농담을 던졌습니다. 어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밤마다 행사하는감?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쉴 수 있나, 나라를 위해 아기를 생산해야지, 그런 고생쯤이야!

 

1965년 말, 인구가 급증하자 지도자들은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신중국 성립 후 첫 번째 산아제한 붐이 일어났죠. 정부는 “하나도 적지 않고, 둘은 적당하며, 셋이면 많다.”라는 구호를 선보였습니다. 현의 영화팀에서 영화를 틀어 주러 내려올 때면 극이 시작하기 전 슬라이드로 산아제한에 대한 홍보 필름을 방영했습니다. 스크린에 과장된 남녀 생식기 그림이 나타나면 관중이 어둠 속에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미친 듯이 웃어 대기도 했어요. 제 또래 아이들은 덩달아 야단법석을 떨었고, 청춘남녀들은 대부분 가만히 서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이런 피임 선전은 오히려 출산을 권장하는 정력제 같았어요. 현의 극단에서는 팀을 10여 개로 나누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늘의 반」(여성이 하늘의 반을 떠받치고 있다.”라고 한 마오쩌둥의 정책적 구호에서 비롯된 표현)이라는 연극을 공연하고 남녀차별 사상을 비판했습니다.
당시 고모는 공사 위생원 산부인과 주임 겸 공사 계획생육(計劃生育, 중국의 가족계획
) 지도분과 부과장을 맡고 있었어요. 과장은 공사 당 위원회 서기였던 친산이었는데요, 그는 그냥 이름만 걸어 놓았고, 실제 공사의 계획생육 지도자로서 정책을 짜고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고모였어요.
당시 고모는 과거보다 살이 좀 찌고 그렇게 남들의 부러움을 사던 하얀 치아는 양치질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한 탓인지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잔뜩 쉬어서 여자다움이 많이 없어졌어요. 우리는 확성기 안내방송에서 자주 고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고모의 방송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어요. 자, 모두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는 거지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직업은 속이지 못한다고 했지요, 제가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바로 계획생육으로…….
당시 고모의 평판은 예전 같지 않았어요. 고모 은덕을 입은 여자들조차 고모를 비난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고모가 아무리 사력을 다해 가족계획 운동을 벌이고 다녀도 효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어요. 현극단이 마을에 공연을 왔어요. 여자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시대가 달려졌어, 남녀는 평등해. 그러자 왕간의 아버지 왕자오가 무대 아래서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습니다.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평등? 어디서 감히 평등이란 말을 해? 무대 아래 관중이 너도나도 그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금세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사람들이 벽돌 조각이랑 기와 파편을 무대 위로 던지자 연기자들이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도망을 쳤습니다. 그날 고량주를 네댓 잔 마신 왕자오가 술기운에 난리 법석을 피우며 사람들을 헤치고 무대 위로 올라왔어요. 그는 손짓 발짓 해 가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천지를 휘두르다 못해 이제는 백성들 애새끼 낳는 것까지 지들 마음대로 간섭하려 들어? 어디, 능력 있으면 새끼줄 가져다 여자들 거기까지 꿰매 버리시지! 무대 아래 사람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러자 한층 더 기세가 오른 왕자오가 장막 앞 가로대에 걸려 있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가스등을 향해 무대에서 주운 기와 조각을 냅다 던졌어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스등이 꺼지고 무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그 사건으로 보름 동안 구류되었던 왕자오는 풀려난 뒤에도 여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했어요. 어디, 할 수 있으면 이 몸의 거시기도 한번 잘라 보시지!
몇 해 전까지 고모가 집에 왔다 하면 설레발을 치며 고모 주위를 맴돌던 사람이 그때만은 이따금 고모가 집에 와도 냉랭하게 고모를 피해 다녔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고모에게 물었습니다. 고모가 하는 계획생육이라는 운동이 괜히 고모 혼자 애써 추진하는 일이에요, 아니면 상부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에요?
애써 추진하는 일이라니요? 고모가 씩씩거리며 말했어요. 이건 당의 부름이자 마오 주석의 지시, 국가의 정책이라고요. 마오 주석이 뭐라고 했어요? 인류는 스스로를 통제해서 계획적으로 성장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어요. 자고로 아이를 낳는 일은 엄격한 자연의 이치예요. 한나라 때는 황제가 조서를 내려 민간 여자들은 만 13세가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 했지요. 결혼하지 않으면 여자의 보호자를 불러 문초했다던데!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라는 어디서 징병을 합니까? 매일매일 미국이 쳐들어온다고, 타이완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부르짖으면서 여자들에게 아이를 낳지 말라니, 그럼 병사는 어디서 구해요? 병사가 없으면 누가 쳐들어오는 미국을 막을 거예요? 누가 타이완을 해방시키느냐고요?
올케, 케케묵은 소리 그만해요. 아무렴 마오 주석이 올케만 못하겠어요? 마오 주석이 반드시 인구를 통제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무런 계획도, 질서도 없이 이대로 가다간 인류는 일찌감치 망해 버리고 말 거라고요.
마오 주석이 말했어요. 사람이 많으면 힘도 강하고, 사람이 많으면 일을 하기도 좋다고요. 사람은 살아 있는 보배,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했다고요. 마오 주석이 또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하늘의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여자가 아기를 낳아 기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했어요.
고모가 기가 막힌 듯 말했습니다. 올케, 그건 마오 주석의 어록을 날조하고 왜곡한 거예요. 옛날 같으면 목 날아갈 소리 그만하세요! 아이를 낳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다만 좀 계획적으로 적게 낳자는 거예요.
자식을 몇 명 낳을 건지는 다 운명에 정해져 있는 건데! 그런 걸 계획을 해야 해요? 내가 보기엔 고모 쪽 사람들이 괜히 헛수고하는 것 같군요.
 

왜 하오 씨랑 결혼했느냐고 했죠? 그건 개구리 사건부터 이야기해야 해요. 퇴직하기로 한 그날 밤, 오랜 동료들하고 호텔에서 한상 거하게 먹고 있을 때였어요. 그날 밤 내가 좀 취했죠. 사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이 별로 안 좋았나 봐요. 식당 새끼 사장, 그러니까 제바이좌의 아들 제샤오췌가 새끼 사장인데, 바로 1963년 ‘고구마 아이’ 세대 가운데 한 사람이죠. 걔가 날 대접한다고 우량예 한 병을 가져왔어요. 한데 그놈의 우량예가 가짜였나 봐요. 찻사발로 절반 정도 마셨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빙글빙글 돌고 천장이 뒤집히더라고요!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하나씩 다 꼬꾸라지고 제샤오췌도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그렇게 휘청거리며 병원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분명 숙소로 돌아가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웅덩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나 봐요. 양쪽으로 갈대가 수북이 자라고 여기저기 물구덩이가 있는 구불구불 오솔길을 따라갔을 거예요. 물구덩이가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마치 유리 같았어요. 두꺼비, 개구리가 꽥꽥, 개굴개굴 정신없이 울었어요. 한쪽이 그치면 다른 한쪽에서 울기 시작하고, 그렇게 번갈아 가며 우는데, 마치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한순간 사방팔방에서 모두 일제히 울기 시작했어요. 어찌나 개굴개굴, 꽥꽥 울어 대는지 소리가 하나로 모여 그대로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소리가 멈추고 사방이 고요해졌어요. 그냥 풀벌레 소리만 들리더라고요. 왕진을 가느라 수십 년 동안 밤길을 걸었지만 한 번도 무서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정말 무서웠어요. 원래 개구리 소리가 북소리 같다고들 하거든요. 하지만 그날 개구리 소리는 곡소리 같았어요. 마치 수없이 많은 갓난아기가 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원래 아기가 태어날 때 들리는 첫 번째 울음소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음악이거든요. 하지만 그날 밤 들었던 개구리 울음소리엔 원한과 굴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상처 입은 수많은 아기의 정령이 호소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그날 마신 술이 순식간에 모두 식은땀이 되어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술에 취해 환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땀이 난 후에 약간의 두통 증상 이외에는 정신이 말짱했으니까요. 질척거리는 오솔길을 따라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서 도망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꽥꽥거리는 처량하고 원한에 가득한 울음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절 자꾸만 얽어매는 겁니다. 달아나고 싶은데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오솔길 진창이 마치 젊은 사람들이 뱉은 껌처럼 신발 밑바닥에 딱 붙어서 다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야 했습니다. 신발 밑바닥과 길바닥이 은빛 실로 이어져 있었어요. 그 선들을 끊어 버리려고 몸부림쳤지만 발이 닿을 때마다 다시 새로 실이 생겼어요. 신발을 버리고 그냥 맨발로 진창을 달렸습니다. 하지만 맨발로 걷자 진창길이 더 가깝게 느껴지면서 마치 은색 실에 빨판이 생겨난 것처럼 발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살을 찢어 버릴 것 같더라고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치 거대한 청개구리처럼 기어갔어요. 진흙이 무릎, 종아리, 손바닥에 모두 달라붙었어요. 그때 무성한 갈대밭 깊은 곳, 은빛 수련 잎들 사이에서 수많은 청개구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온몸이 푸른색인 것도 있고, 전체가 황금색을 띠는 것도 있고, 전기다리미만큼 큰 것도 있고, 대추씨처럼 작은 것도 있었어요. 샛별 같은 눈을 가진 것도, 팥알 정도 크기의 눈을 가진 것도 있었죠. 사방팔방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분노의 울음소리로 나를 겹겹이 에워싸더라고요. 단단한 입으로 내 살을 쪼고, 날카로운 발톱이 자라난 발로 살을 잡아뜯으며 등으로, 목으로, 머리로 뛰어올랐어요.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는 바닥에 그대로 뻗어 버렸어요. 가장 큰 공포는 개구리들이 물어뜯고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그 차갑고 끈끈한 뱃가죽이 내 피부에 닿는 것이었어요.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났어요. 개구리들이 내 몸에 끊임없이 오줌을 쌌는데, 아마 정액이 분사되어 나왔나 봐요. 갑자기 큰할머니가 이야기해 준 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처녀 하나가 밤에 강둑에서 바람을 쐬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대요. 꿈속에 푸른 옷을 입은 청년과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꿈에서 깬 후 임신을 했고, 후에 새끼 개구리를 한 무더기 낳았대요. 그 이야기가 생각나자 저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극도의 공포로 엄청난 괴력이 생기더라고요. 내 몸에 엎드려 있던 개구리들이 진흙 덩이처럼 우수수 떨어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엄청난 개구리들이 옷이랑 머리카락을 죽어라 붙잡고 있었고, 그중 두 마리가 내 귓불을 물었어요. 무시무시한 귀걸이가 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그냥 내달리는데 왜 갑자기 지면의 흡착력이 사라졌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달려가면서 몸을 털고 두 손으로 자꾸만 떼어 냈어요. 개구리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이 절로 나왔습니다. 개구리들을 세차게 털어 버렸어요. 귀에 매달린 개구리 두 마리를 떼어 낼 땐 마치 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귓불을 물고 늘어지는 모양이 마치 굶주린 아이가 엄마 젖꼭지를 무는 것 같았어요.
고모는 그렇게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달렸답니다. 하지만 고모를 바짝 뒤쫓아 뛰어오는 개구리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뛰어가다 뒤를 돌아본 고모는 혼비백산했답니다. 수많은 개구리가 엄청난 대군이 되어 소리를 지르고, 뛰어오르고, 서로 부딪치고 부대끼며 마치 탁류처럼 빠른 속도로 몰려오고 있더래요. 게다가 길가에서 개구리들이 튀어나와 일부는 고모 앞에 대오를 형성해 앞길을 막아섰더래요. 또한 길가 풀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개구리들까지 달려들었지요. 고모는 그날 원래 큼지막한 검은색 실크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고모를 기습한 개구리들이 치마를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그렇게 길쭉길쭉하게 치마를 찢어 가진 개구리들이 한입에 치마 조각을 삼키더니 목이 메어 안절부절못하고 뒹굴다 허연 배를 드러내었답니다.
강변까지 달려간 고모의 눈에 달빛을 받아 온통 은빛으로 반짝이는 조그만 돌다리가 들어왔습니다. 몸에 걸치고 있던 치마는 이미 개구리들이 모조리 뜯어 젖히는 바람에 거의 반나체로 다리까지 뛰어갔는데 그 순간 하오다서우를 만났습니다.
창피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아니, 제가 엉덩이를 거의 다 드러내고 있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 커다란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쓴 사람 하나가 다리 중앙에 앉아서 은빛 찬란한 뭔가를 뭉치고 있었어요. 나중에야 그게 진흙 덩어리라는 걸 알았죠. ‘달빛 인형’을 만들 때는 반드시 달빛을 받은 흙이 필요하거든요. 그땐 그 사람이 누군지도 자세히 볼 틈이 없었습니다. 누구든 그저 사람이기만 하면 구세주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 사람 품으로 달려가 힘껏 도롱이 안으로 파고들었어요. 등 뒤로 비릿한 개구리의 싸늘하고 오싹한 느낌이 옥죄어 오는 가운데 그 사람의 따뜻한 가슴이 느껴졌어요. 난 소리 질렀어요. 아저씨, 제발 살려 줘요. 그리고 기절해 버렸어요.

 

― 모옌, 심규호·유소영 옮김, 『개구리』에서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은 2010년대까지 이어졌어요. 저는 초등학생 때 부모님 따라 중국에 여행 갔다가 이 정책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어떡하지…’ ‘이름도 없고 학교에도 못 가는 둘째 셋째 들은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중국 정부는 차츰 둘째 출산을 허용하더니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최근에는 산아 제한 부서를 폐지하고 아이를 더 낳자는 기조로 돌아서고 있다고 하죠.
『개구리』에는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 보려는 딸 가진 부모들과, 당의 명령에 따라 이들을 막으려는 주인공 완신의 지난한 갈등이 그려지는데요. ‘개구리 사건’은 수많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원치 않는 임신중단 수술을 했던 완신의 트라우마를 보여 주는 것 같아요.

고모… 나라의 산아 정책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던 때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다니.  요즘 《한편》 5호 ‘일’을 준비하면서 일 생각뿐인데, 완신 고모의 사상도 결혼도 트라우마도 모두 산부인과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아득하네요. 아기 울음소리 같은 개구리들의 떼창이라는 심상은 개구리들이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라고 우는 것만 같았다는 유명한 한국 소설의 묘사보다도 강력해요. 동물과 인간 사이에 있는 여성의 위상을 생각하면서 ‘동물’ 호에 「낙태는 여성의 권리다」를 실었는데, 이 글을 두고 소설 속 어머니, 고모 들과 토론해보고 싶네요.

모옌은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공상을 수상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이며, 최근에는 만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이다. 등단 이후 그는 줄곧 고향인 산둥 성 가오미 현 둥베이 향을 주요 무대로 소설을 창작하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거센 역사의 파고 속에서도 원시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 중국 민중의 삶에 천착해 왔다. 『개구리』는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인간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11년 마우둔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마오둔 문학상은 4년에 한 번 시상하며, 루쉰 문학상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이다. 『개구리』는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생육’의 실무자로서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임신부를 납치해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했던 한 산부인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모옌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부작용과 논란을 양산하고 있는 이 문제에 최초로 문제 제기를 했고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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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진지
    2021.3.3 11:29 오전

    글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뉴스레터로 읽어보고 책 원문이 읽고싶어졌어요.
    모옌의 개구리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1. 2021.3.4 12:20 오후

      안녕하세요! 레터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너무 기뻐요!!
      도 꼭 읽어 보셨으면..! 544쪽의 결코 짧지 않은 소설인데도 단숨에 읽어 버렸어요.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후반부까지 계속해서 펼쳐진답니다…

      1. 임진지
        2021.3.4 12:37 오후

        책 제목이 보이지 않네요. 추천해 주신 책이 개구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1. 2021.3.4 1:02 오후

          앗 개구리가 맞아요! 기호를 넣었더니 제목만 쏙 빠져버렸네요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