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러시아의 여자 마법사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막심 고리키의 산문 한 대목을 전해 드립니다. 예민한 관찰자인 고리키의 시선을 통해 20세기 초 러시아 민중들의 우스우면서도 슬프고, 궁상맞으면서도 경이로운 면모가 드러나는데요. 가축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치유하며, 칼 한 자루로 곰을 때려잡고, 그리스도를 직접 나무라는 이교도 마녀 할머니 이바니하. 그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어두운 색 사라판을 걸치고 기형적으로 큰 머리에 푸른 머릿수건을 한 땅딸막한 여인이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 옆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에는 피나무 속껍질 오리로 촘촘히 짠 바구니를 들고 있었고, 바구니에는 향기로운 풀이며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여인이 불분명하고 뿔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녕하슈, 수다쟁이 양반…….”
늙은 여인은 머리를 기울여 나를 유심히 살피며 내 무릎을 지팡이로 툭 건드렸다.
“나한테 좀 들러.”
“어디로 갈까요?”
“저 사람이 알려 줄 거야. 한 시간쯤 있다 와…….”
그러고서 그녀는 그녀의 나이와 무겁고 둔중한 몸으로서는 이상하리만치 가벼운 걸음으로 사라졌다. 시골 마을 노인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서나 뭔가 별난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이는 우쭐한 태도로 모케예프는 이바니하가 군(郡) 전체에 알려진 마법사라고 말했다.
“마녀라고 생각하면 안 되네, 안 돼. 그건 그 여자한테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이라고!
언젠가 걷지 못하는 처녀를 고쳐 달라고 불려 갔는데, 글쎄 걷지 못하는 애를 곧바로 시집보내 버린 거야! 그랬더니 아 이 처녀가 걷는 게 아닌가, 걷는 게, 내 형제여! 그러고는 그 애 부모에게 이랬다지. ‘바보 같은 것들, 키울 줄도 모르면서 뭣 하러 애들은 낳았나?’
사람이든 심지어 거위나 수탉까지도 그 여자는 다 고친다네. 모두 똑같이 말일세.”
모케예프는 뽐내듯 자랑스레 말을 시작했으나 곧 쉬고 늙은 목소리를 낮추더니 어느새 두려움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한테 이바니하는 우두머리라네. 마을 모임에서도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 말에 따르고, 마을 순경까지도 그녀를 두려워하지. 그 여자가 순경 이빨 세 개를 뿌리째 뽑아 줬는데, 글쎄 그 뿌리들 길이가 1베르쇼크(옛 러시아 길이 단위. 약 4.4센티미터)나 되고 뿌리 끝은 갈고리마냥 구부러져 있더라고. 아무도 그걸 뽑을 수 없었는데, 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지!
이바니하는 두려움을 모르는 피조물인 데다 온갖 비밀을 다 알고 있다네. 사람을 빤히 보며 느닷없이 묻는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글쎄, 그러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듯 자네 영혼 안으로 바로 그녀를 들이게 된다고. 자, 여기 있습니다. 보세요!”

나는 이바니하가 세례받지 않은 모르도바인(러시아 모르도바 공화국에 거주하는 볼가핀계 민족)의 딸이고, 그녀의 부친이 곰사냥꾼에 마법사였으며 1840년대 모르도바인들의 민족운동 중에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이바니하는 고아로 소녀 시절을 보냈고, 처녀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은 뒤 얼마 안 있어 산림지기와 결혼을 했다. 아이 없이 3년을 살다 4년째 되던 해 봄에 산림지기가 곰에 물려 죽었다. 이바니하는 산림지기의 오두막에 남아 곰을 잡기 시작했다.
세르가치 숲은 이 짐승이 많기로 유명했고, 1870년대까지 ‘세르가치의’ 농부들은 러시아 전체에서 최고의 곰 조련사이자 곰사냥 ‘안내자’였다.
이바니하는 이 짐승을 ‘모르도바식으로’ 때려잡았다. 오른팔에는 부목을 두르고 생가죽 끈을 어깨까지 휘감은 채로 손에 칼을 움켜쥐고, 왼손에는 괭이 비슷한 짧은 도끼를 들었다. 짐승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면 괭이로 발을 치면서 입에다 칼을 꽂아 넣어 곰의 목을 찢었다.
“모르도바인들만 이런 식으로 곰을 잡지, 그렇게 잡으려면 곰 못지않은 힘이 있어야 하거든. 그렇지만 열일곱 번째 놈이 그 여자 갈빗대 하나를 부러뜨렸고, 서른 몇 번째 놈인가가 목을 약간 비틀어 놓았지. 그 여자 목 잘 못 쓰는 것 봤지? 그때 그런 거라고. 마흔 마리째까지는 그녀도 가지 못했지. 두려웠던 거야.
마흔 번째 곰은 곧 마지막 곰이 될 수 있으니까. 이게 사냥꾼한테는 운명의 숫자라 살아남는 이가 드물지. 온 세상이 다 아는 것이, 마흔 번째 곰이 바로 사냥꾼의 수명을 정한다는 것이네.” 
그의 이야기는 밤이 되기 전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된 듯해서 이바니하의 집이 어딘지 물었다.
 “저—기 저쪽, 반듯하게 보이는 외딴 오두막이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통 따로 떨어져서 살잖아…….”

나는 그녀가 어떻게 곰들을 잡았는지 조심스레 캐물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해 주었는데 일부러 더욱더 불분명하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했다. 
 “그 당시엔 내가 강했지. 이 근방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남정네는 둘뿐이었지. 남편 빼고. 실은 남편도 때려눕힐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을 뿐이지, 남편이니까. 장난으로 싸워 본 적은 있지만 진짜로는 할 수 없었어.”
마흔 번째 곰에 대해 그녀는 말했다.
“곰이라는 짐승은 신을 섬기지. 케레메트(모르도바인이 섬기는 신)는 하늘 위에서 곰들을 타고 다니며 해를 운반한다고. 해가 아주 크잖아, 커다란 호수만 한 데다 무겁고, 전부 순금으로 돼 있다고. 신도 사람들이 필요하지. 벌은 사람을 섬기고, 사람은 신을 섬기니까.
케레메트가 말했지. ‘곰을 잡되 내가 봐줄 때까지만 잡거라. 너무 많이 죽이면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기억하라! 그때는 내가 강한 놈을 네게 보낼 것이고, 그놈이 너를 죽일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 사람은 가축이 아까웠고, 꿀도 귀리도 아까웠거든. 곰이 죄다 망쳐 놓으니까 말이야.” 
나는 여자 마법사에게 크레메트가 어떤 신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차를 다 마시고 그릇을 씻어 치운 뒤 탁자에 앉아 양말을 뜰 때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불쾌한 듯 두꺼운 입술을 오므리고,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뜨개바늘을 번뜩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는 신부도 아니고 신에 대해서 잘 몰라.”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케레메트는 좋은 신인가요?”
“신은 말이 아니라서 이빨을 보고 알 수가 없어. 신의 이빨을 들여다볼 도리가 없잖나…….”

그녀는 뾰로통하게 냉담한 태도로 한동안 대답에 응했지만 나는 그녀를 건드리는 몇 마디 말을 찾는 데 성공했다. 콧구멍을 부풀리고 초록빛이 도는 양 같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그녀는 짜증을 내며 으르렁댔다.
“대체 뭘 그렇게 두드려 대는 거야, 통쟁이처럼? 신, 신을? 인간을 신에게 갖다 바칠 수는 없어. 젊은 처녀를 늙은 영감에게 갖다 바치듯 말이야. 억지로 신한테로 끌고 갈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런다고 한 가족이 되는 게 아냐. 진실이 없잖아.”
놀랍게도 나는 이 노파가 러시아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로 그녀가 거침없이 조리 있게 말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자네들의 신은 믿음을 사랑하지만, 케레메트는 진실을 사랑하네.” 그녀가 말했다.
“진실은 믿음보다 위에 있지. 케레메트는 신과 인간이 우정을 나눌 때 진실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간의 영혼이 곧 그의 영혼일 때, 신은 그것을 악마에게 넘겨주지 않지.
자네들의 신 그리스도는 오로지 믿음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케레메트는 사람을 원해. 그는 신과 인간이 함께할 때 진실이 있고, 신만으로는 진실이 없다는 것을 알지. 그리스도는 믿으라고 말하지만 케레메트는 말하지, 진실을 행하라! 그리하면 내 친구가 될 것이다.
돈으로는 진실을 행할 수 없어. 사제들은 돈을 좋아하지. 그들은 그리스도와 케레메트를 마치 개처럼 싸움 붙여 놓았지. 자네들 신이 우리 신에게, 우리 신이 자네들 신에게 서로 치고받으며 으르렁거리도록 말이야.”

그녀는 양말 뜨기를 멈추고 탁자 위에 털실과 뜨개바늘을 내던지고는 입술을 다시며 희미하고 음울하게 말했다. 

 
“신도 못됐고, 인간도 못됐고, 사제는 가장 못됐지. 사람은 공평하게 나뉘어야 해. 이쪽 사람들은 이쪽 신에, 저쪽 사람들은 저쪽 신에. 그래야 신들이 사이 좋게 살 수가 있지. 각자 끼리끼리 모여서 말이야.
좋은 주인은 서로 다투며 살지 않지. 그런 말이 있잖아. ‘신은 진실을 보지만, 서둘러 말하지 않는다.’고. 왜 서두르지 않는 걸까? 알면 지금 말해 보라고!
케레메트는 알고 있지. 진실이 믿음보다 낫다는 걸. 그는 말을 했었지만 사람들이 그를 깔아뭉개기 시작하면서 침묵하게 되었지. 모욕을 당해서, 나 없이 살아라 하는 거지. 이건 우리한텐 안 좋은 거야. 악마한테 좋은 거지…….” 
 
한밤중에 굴뚝에서 나는 바람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무겁고 그렁그렁한 속삭임에 잠이 깼다. 살그머니 판자 침대 아래쪽을 살피다 이바니하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위에서 보니 그녀는 회색의 모난 덩어리 같았다. 마치 돌덩이 비슷했다. 그녀의 이상하고 희미한 목소리는 기이하게 그렁그렁대고 있었다. 마치 물이 펄펄 끓거나 목을 헹구는 소리 같았다. 이어서 그 끓음으로부터 기이하게 조합된 말들이 솟아나왔다.
“아이고, 그리스도여, 아이고…… 이게 뭔 일입니까, 그리스도여! 일리야도 화가 났고, 당신도 화가 났고, 케레메트도 화가 났습니다. 당신은 강하고 당신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너그러워야 합니다. 신께서 못되게 하시면 누가 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대해 주겠습니까?
아이고, 그리스도여! 제 말을 좀 들어 보세요. 들어 보세요.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여자들이 고통받고 있고, 남자들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아이고, 아이고…….”

그녀는 성호를 긋지도 않고 손을 휘젓다가 어두운 얼룩이 진 창문을 향해 뻗었다가는, 다시 허리춤을 꽉 잡는가 하면 손으로 가슴을 치기도 했다. 내내 희미하게 소곤거리고 있었으나 목에 걸려 끓어오르는 말들로 매섭게 꾸짖었다.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힘듭니다.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이반은 어째서 그리 일찍 죽어 버렸나요? 미슈카는요? 외아들에다 그렇게 똘똘했던 아이 미슈카는 어째서 죽은 겁니까?
누구를 보살피시는 겁니까, 그리스도여? 사람들을 보살피기나 하는 겁니까, 예? 여기 저는 여자이지만 사람들을 보살핍니다. 당신네 사람들도 보살피고, 타타르 사람들이나 추바시 사람들도 보살핍니다. 제게는 모두 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어요?
당신의 사제들은 당신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있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당신네 사람들조차 사랑하지 않습니다, 않아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에이그, 그래선 안 되지 않겠어요?
저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 보세요,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당신네 사람들을 보세요. 좋은 사람들인데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오, 그리스도여! 알아 두세요. 사람들이 뭐라는지 귀를 기울여야 신도 잘사는 겁니다. 사람들도 신에게 귀를 기울일 때 잘 살 듯이요.
제 말을 좀 들으세요. 제가 틀린 말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걸 이해해야 합니다. 신은 사람들보다 진실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고 늙은 할멈인 내가 당신보다 진실을 더 잘 알고 있네요, 아이고, 그리스도여 당신도 참…….”
그렇게 그녀는 그리스도를 한참 동안 나무랐다. 그녀의 희미한 목소리는 무척 섬뜩하게 웅웅거렸고, 그녀의 목에서 그렁그렁대며 끓어오르는 말들은 애처롭게도 고통과 분노를 담고 울려 나왔다.
동틀 무렵 마을을 떠나오며 나는 인간이 신과 나눈 가장 훌륭한 대화들 중의 하나를, 어쩌면 내가 들은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대화를 기억 속에 담아가지고 왔다.
“아, 그리스도여…….”
─ 막심 고리키, 오관기 옮김, 『가난한 사람들』, 60~78쪽

막심 고리키(Maxim Gorky, 1868-1936)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와 같은 대문호의 시대였던 19세기와 혁명의 시대 20세기를 잇는 작가로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격동기에 필력으로 세상을 명료히 분석하고자 했던 러시아 대표 지식인.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스코프이며, 러시아어 ‘최대’라는 뜻의 ‘막심’과 ‘맛이 쓰다’라는 뜻의 ‘고리키’를 필명으로 짓고는 ‘삶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겠다.’는 의지로 글을 썼다. 열 살 때 엄마를 여의고 생계를 위해 접시닦이로 일하던 중 요리사의 조언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카잔에서 사회활동가들을 만나 지적 세계를 넓혀 나갔다. 당시 지식인들의 관념적인 태도에 실망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스물세 살 때 러시아 전역을 도보여행하며 샅샅이 훑음으로써 고리키 문학 특유의 생생한 이야기의 원천을 얻게 된다.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에서 시위 주도자로 체포와 가택연금을 당하다가, 혁명 자금을 모금하며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이때 집필한 대표작 『어머니』는 러시아 혁명기를 상징하는 소설로서 술주정뱅이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비로운 어머니가 아들의 체포를 목격하고는 혁명을 위해 희생하는 변신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작가가 노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의 감시 아래 삶을 마감해야 했다. 그의 대표 산문을 모은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작가의 깊은 경외심을 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심지어 바보들조차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어리석고, 게으름뱅이조차 무언가 쓸 만한 자기만의 재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