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이동, 수송, 바퀴, 길 등을 인간 사회에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철도는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있던 각종 기능들의 규모를 가속화시키고 확대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도시들과 노동과 여가 생활을 창출해 냈다. 이런 일은 철도의 가설 지역이 적도 지대냐 한대 지대냐와는 무관하게 일어났으며, 철도라는 미디어가 운반하는 화물이나 내용이 무엇인가와도 관계없는 일이었다. 다른 한편 어디에 사용되든 비행기는 수송을 가속화함으로써, 철도에 바탕을 둔 도시, 정치, 공동체 등을 해소시키려 하고 있다.
전깃불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그 빛이 뇌 수술을 위해 사용되느냐 아니면 야간의 야구 경기를 위해 사용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전깃불이 없으면 뇌 수술이나 야간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할 때, 뇌 수술이나 야간 경기가 전깃불의 ‘내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요점을 강조해 줄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와 결사의 규모와 형태를 형성하고 제어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의 내용이나 용도가 너무 다양해서 인간의 결사의 형태를 갖추는 데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다름 아닌 미디어의 ‘내용’ 때문에 그 미디어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 각종 산업들이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일들에 관해 알게 된 것은 겨우 오늘날에 와서였다. 예를 들어 IBM 사는 자신들이 사무 장비나 기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명확한 비전 속에서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 반면에 제너럴 일렉트릭 사는 전구와 전기 시설을 판매해 상당한 이윤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AT&T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이동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전깃불은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미디어를 제대로 연구하지 못하게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왜냐하면 전깃불은 네온사인 등에서처럼 어떤 브랜드 이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미디어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전깃불이 아니라 ‘내용’(사실상 또 하나의 미디어)이다. 전깃불의 메시지는 산업에서의 전력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매우 철저하고 광범위하며 탈집중적(혹은 분산적)이다. 왜냐하면 전깃불과 전력은 용도 면에서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의 결사에서 시간적, 공간적 요인들을 제거한다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들은 심도 깊은 관여를 창출해 내는 라디오, 전보, 전화, 텔레비전 등과 같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가지고 우리는 인간의 확장물들, 즉 미디어 연구에 대한 거의 완벽한 안내서를 만들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다음 행들을 보고 어쩌면 그가 텔레비전을 언급한 것인지 모른다고 익살을 떠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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