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아리스토텔레스: 듣는 사람을 고려하세요

한편을 같이 읽어요! 인문잡지 《한편》 2호 ‘인플루언서’가 제작 중입니다. 2020년 5월에서 8월까지 《한편》이 탐구할 주제는 ‘인플루언서와 영향력’. 고대의 영향력자들을 살펴보는 서양고전학자 김헌 선생님의 원고와 함께, 새단장한 뉴스레터로 구독자 여러분에게만 2호를 미리 보여드려요. 

연설가는 어떻게 청중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내 안의 감정과 관념, 의견을 언어로 표현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설득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을 경탄한 시인 헤시오도스(기원전 8~7세기)는 그것이 음악과 시의 여신 무사(Mousa)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라고 했다. 무사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난관을 타개할 지혜로운 의견을 달콤한 목소리와 감미로운 언어에 담아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단다. 심지어 수사학 교사이자 소피스트로 알려진 고르기아스도 “말(logos)이란 병든 몸도 치료하는 약(pharmakon)과 같은 신비로운 효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연설가의 매력을 그럴싸하게 그려 내는 묘사이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신화의 영역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려 지성의 실험대 위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체계화했다. 연설가는 어떻게 청중을 설득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따져 묻고, 그 이전의 설명과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가 『수사학』이라는 저술이다. 수사학이란 rhētorikē의 번역인데, ‘연설가(rhētōr)의 기술(-ikē)’이라는 뜻이다. 연설가의 목적은 설득이라는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므로 수사학은 ‘설득의 기술’이며, 나아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연설가와 청중, 그리고 그 둘을 이어 주는 말. 일반 용어로 말하자면 발화자, 수신자, 메시지이다. 발화자의 메시지가 어떻게 수신자에게 안착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수사학인 한, 모든 종류의 의사소통을 탐구하는 학문은 결국 수사학적 요소를 가지며, 따라서 수사학을 방법론으로 활용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과 스피치, SNS, 광고, 마케팅 등의 연구에는 직접적으로 유효하며, 정치가가 말을 통해 유권자와 소통하는 한 정치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란 정치학에서 솟아난 가지이며, 수사학이 정치학의 가면(skhēma)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와 독자, 작곡가/연주가와 관객의 관계에 주목하면 수사학은 문학적, 미학적인 분석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가장 포괄적으로는 모든 인간관계에 일정 부분 개입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설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설득은 몸이 아니라 정신의 작용이므로 그 비결 또한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의 구성 요소를 세 가지로 나눈 뒤, 각각에 적절한 영향을 줄 때 설득이 이루어진다고 밝힌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가 나온다.

첫째, 이성(logos)을 공략해야 한다. 연설가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청중에게 명확하게 설명한 뒤, 해결을 위한 자신의 의견이 어떻게 타당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청중이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고 수긍해도 연설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연설가의 설득이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감성(pathos)을 자극하는 것이 둘째다. 연설가는 청중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차분하게 논리에 따를 수 있도록 진정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지우고 호감을 심어야 한다. 
 
째는 품성(ēthos, 성격으로도 번역된다.)을 통한 접근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요소가 영향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연설가가 청중의 ‘도덕적, 윤리적 의식에 맞는(ēthikos)’ 사람이며, 그래서 ‘정말 믿을 만한 인물이다’라는 인상을 줄 때 설득력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후일 중세 수사학에서는 이 세 구성 요소 이외에도 영성이 있음을 강조하며 영성을 깨우는 설교수사학을 발전시킨다.
 
설득이라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를 기억할 것. 그렇다면 2500년 전의 인플루언서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그리고 지금 인플루언서를 둘러싼 문제는 무엇인지는 2호 속에서 확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편》의 이한솔 편집자가 출연한 민음사TV에서 잡지 뒷이야기도 함께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