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9일(수)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는
2013 민음 아카데미 1학기 마지막 강연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자리에서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님과 함께
<스마트미디어 시대 인문학: 인간의 조건, 광장의 밀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연의 주제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선생님께서는 ‘문학은 꿈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의 상실을 문학으로 시현해보는 것, 억압된 소망을 실현시키는 존재로서 기능하는 문학의 역할은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를테면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있었던 시인으로,
그는 낮에 했던 말 때문에 밤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겪었던 굴곡진 감정들을
고스란히 껴안고 나오게 되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잉태된 문학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좌절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문학이 가능한 것이며, ‘문학은 연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셨는데요
연꽃은 항상 시궁창이나 진흙창에서 피기 때문에 썩은 내가 나야하고,
그 연꽃의 향취가 좋은면 좋을수록 우리는 그것이 시궁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즉, 문학의 화려함과 향취의 이면에서 거꾸로 악취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요.
소설가는 ‘소설을 읽어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소설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의 자본이지만 문제는 그 양식일 뿐입니다.
외국에서 뭐가 들어오든지 간에 상관 없이 자신에 맞게 뿌리를 내리면 됩니다.
가지고 와서 우리 몸에 맞게 자르면 되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고양되면 됩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게 잘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0세기 이후, 과연 우리나라 말로 소설을 쓴 작가는 누가 있을까.
강신주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최고의 작가는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소설을 썼던 첫 소설가가 김승옥이며,
한글 첫 세대의 작품인 『무진기행』은 아주 잘 읽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인문학의 가능성은 바로 김승옥에서 시작했다고요.
그에 반해 강연 시간에 주요하게 다뤘던 『광장』의 최인훈 작가는 소위 ‘에이급’ 작가는 아니라고 합니다.
일단 문체가 좋지 못하고, 스타일이라는 게 없다고요. 그럼에도 거듭해서 ‘최인훈’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지성인에 가깝고 사상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야만의 논리에 따라 분단이 된 것이고 생겨난 이데올로기를 학습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슬픔은 거기 있는 것으로, ‘분단국가’라는 것을 우리 문학으로 규정을 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성인이고 문학인이라면, 그 중심에 서야 한다고요. 문학을 하겠다면 당장 판문점에 가서 응시를 해야 한다고.
지금 우리의 문학은 너무 많이 피해있고, 우회해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역시 진실이지만, 낭만에 집중하는 작가들을 보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며
비겁을 자초한 독자들만이 역시 그 비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최인훈은 1961년, 『광장』을 통해 ‘이명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결국 그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못하는 존재로서 『광장』 이후의 모든 문학에서 계속 변주가 됩니다.
성장하고 계속 변화하는 그의 종착지가 바로, 최인훈의 마지막 단편인 「바다의 편지」라고요.
강신주 선생님께서는 ’20세기에 단 한 문장만 남기라면 이 서문을 뽑겠다’며
1961년판 『광장』에 쓰인 최인훈의 서문을 낭독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주셨습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1961년 2월 5일, 『광장』(1961년 판) 서문 중에서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광장과 밀실’이 매우 소중한 개념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문학은 지금 밀실로 들어가는 것만 팽배하다며,
시대를 겪어 내며 그것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언론 검열이 아직도 있고 좌빨이니 종북이니 하는 시대에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에 문인들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요.
1950년 이후에 한국 민주화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문인들입니다. 본인들의 작품을 검열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만약 누군가가 ‘문학’을 했는데 너무 편하다면, 그 작품은 끝난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해야 하고 진지해야 하며, 직면해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선생님께서 김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라고요.
김수영이 그러한 시대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김수영이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직면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 자기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졸도는 문학이 아닙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광장과 밀실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최인훈의 성찰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합니다.
최인훈의 말처럼 밀실이 없을 때, 광장에는 폭동의 피가 흐르게 될 것이며
반대로 광장이 사라질 때에는 광란의 울부짖음이 새어나오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광장과 밀실 사이의 충분한 거리입니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광장과 밀실 이 두 공간이 우리에게 가능해야만 하고,
동시에 우리는 자유롭게 두 공간을 오고갈 수 있어야만 한다고요.
그러나 스마트폰이 생활의 필수품이 된 지금
광장과 밀실 사이의 거리는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들었습니다.
광장과 밀실의 식별 불가능성,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열어준 현기증 나는 세계라고요.
타자에 직면해야만 하는 광장에 불편하게 서 있기보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이 열어놓은 가상 밀실로 쉽게 도망치곤 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만든 가상세계는 광장에 당당히 진입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밀실에 편안히 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를 증식시킬 뿐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폰의 세계는 시각과 청각의 세계이며, 촉각의 세계, 즉 땀냄새가 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리얼리티는 접촉하는 것, 즉 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필요한 것 역시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밀실과 광장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그 거리가 크면 클수록, 길면 길수록 작품의 질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는 매체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며칠, 혹은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도 좋다. 이제 스마트폰을 잠시라도 꺼놓도록 하자.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최인훈이 말한 광장과 밀실, 두 공간은 점점 커질 테니까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에게는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힘을 회복하는 ‘광장과 밀실의 거리’에 대한 강신주 선생님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2013 민음 아카데미 8강의 연속 강연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민음 아카데미 시즌2는 올 10월부터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자세히 보기 클릭)
그간 민음 아카데미 연속 강연에 함께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