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수)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 마련된
민음 아카데미 여섯 번째 강연 시간에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이끌고 계신
서동진 교수님과 함께 <아르바이트 경제: 우리 시대 노동의 초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 일, 바로 노동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 적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취업을 하면 일에 대한 근심에서 모두 벗어난 것처럼 생각을 하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1990년대에는 이른 바 구조조정, 슬림화, 다운사이드와 같은 우아한 용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의 세계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가 흔히 일에 대해 구분을 하는 용어로 Work와 Labor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Work란 없습니다.
Work로 대변되는 일은 대표적으로 예술가들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들의 작품을 Works로 일컫기도 하지요.
즉, Work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활동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노동력을 제공하면 돈을 받고, 그것으로 먹고사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즉, 현대에는 자본주의적인 임금노동이 등장한 것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즉 돈을 얻기 위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지,
또는 어떤 속도로 어떤 종류의 일을 해야할지, 그외 사회적인 관계들을 어떻게 고민해야할지는
이제 전혀 내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고려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이 시간입니다.
그 특징은 대표적으로 일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임금에 대한 네이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제는 월급, 연봉, 시급, 혹은 일당과 같은 방식으로 보상의 형태에 이름을 붙입니다. 모두 시간과 짝을 이루고 있지요.
제일 별 볼일 없는 보상의 형태로 전락한 것이 바로 월급입니다.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연봉이기 때문이지요.
시간이라 불리우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맹위를 떨친, 인간의 관념 속에는 존재하지 않던 표현인 ‘생산성’을 의미합니다.
생산성과 짝을 이루는 것이 바로 능률과 효율이지요. 이 용어들은 2차 대전 전후로 전 세계를 휩쓸게 됩니다.
그렇다면 능률은 과연 무엇일까요?
효율성, 즉 당연히 시간 당 몇 개를 뽑아내느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일을 하는 방식을 모두 시간에 따라 조율하는 새로운 형태의 일터를 조직하게 되지요.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한 자본주의는 일의 세계를 큰 판도로 바꾸어 냅니다.
더불어 이제는 일에 대한 관념이 바뀌어, 노동의 심미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먹고살기 위해 노가다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것을 예술처럼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쟁점은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드라마 「파스타」에서 열정에 불타고 있는 주인공들을 보면, 더이상 그 자리에 국수 노동자는 없습니다. 셰프만 있을 뿐이지요.
더이상 빵집 노동자는 없고, 파티셰만 있습니다. 꽃집 노동자가 아니라 플로리스트입니다.
선생님께서 느꼈던 제일 충격적인 사례로는,
롯데리아에서 배달부를 모집하는 포스터에 ‘라이더 모집’이라는 문구를 썼다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철가방, 배달부라는 이름 대신 우아한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흥미로운 일은 좌파적인 지식인으로 불리우는 사람들도 이러한 직업적인 이름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비정규직 자유기고가일 뿐인 사람들 ‘자유생활놀이꾼’같은 방식으로 포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술가처럼 스스로를 포장함으로써, 노동의 심미화 현상에 그들도 편승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노동’은 대대적으로 ‘일’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나의 능력과 끼를 실현하는 수단인 것처럼 일이, 예술가들에게만 전적으로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던 것 같은
바로 그 일이 되돌아온 것입니다. 사물 전체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속물의 세계로 말입니다.
노동의 심미화라고 불리우는, 즉 노동이 미학화되었다는 것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노동의 세계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은 망각한채, 혹은 무지한 채
노동을 단지 자아 실현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당에 월급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건 예술가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상의 문제에 스스로 주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일은,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보상되고 있을까요?
첫 번째는 배움을 얻는 것입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향상시킴으로 대가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턴의 조건은 ‘공짜’입니다.
현장학습과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데 무슨 돈을 받겠냐는 것이지요.
얼마 전 현대카드가 Moma에서 인턴직 15명을 한국에서 뽑아서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냈는데,
경쟁률이 무려 1,000:1에 달했다고 합니다. 물론 등록비와 왕복항공비는 일체 본인 부담이었습니다.
그일의 본질은 ‘노가다 6개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청춘의 착취자들』이라고 번역된 영국의 젊은 대학원생이 쓴 책이 있는데,
이책에서는 플로리다에 있는 월트 디즈니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안전 장치를 점검하고, 제지를 하는 등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 필요한 디즈니랜드는
2만 명이 넘는 월트 디즈니 패밀리 멤버들을 거의 다 해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자원봉사에도 빈 자리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보상의 형태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이 바로 ‘자원봉사’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단체의 자원활동가는 모두 몇명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자원봉사라는 이름은 뭘까?
자원봉사의 본질은, 공무원이라는 일자리를 뺏는 것입니다.
한 세기 전에, 백 여년에 걸친 싸움을 물거품으로 만든 전환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턴, 자원봉사의 등장입니다.
한국에만 자리하고 있는 해괴망측한 아르바이트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었습니다.
한국은 아르바이트, 인턴, 자원봉사라는 희안한 삼대 업종으로 조직된 일의 세계에 진입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동의 심미화 속에서, 노동자는 과연 누굴까?
단언컨대, 노동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셰프는 있지만, 국수 노동자는 없는 것입니다.
우아한 셰프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 국수 노조에 가입하고 싶을까요?
자아를 실현하고 있는, 마치 자신의 일의 세계를 예술로 생각하는, 노동 없는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노동 없는 노동자는 무권리적, 즉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동안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단결함으로써 놀라운 변화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임금이었습니다. 회사가 번 만큼, 노동자가 일한 만큼 가져가는.
예전에는 완전 고용만이 목표였고,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실업이었습니다.
지금은 실업은 악도 아니고 병도 아니고, 그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병리적 현상도 아닌,
일정 정도만 되면 꽤 좋은 일이라고 생각케하면서 실업을 악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마치 좋은 일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얼마나 임금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고려했을 때
해당 분야의 업종에서 일하는 평균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물가가 올랐을 경우 물가상승분과 연동되었습니다.
즉, 예전에는 노동자의 임금이 ‘사회적으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일의 세계에서 노동이 미학화되게 되는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연봉제의 등장입니다.
보상의 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개인이 보여준 성과과 능력,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연봉제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장이 그 연봉을 결정합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한 명, 즉 노동자가 퇴장한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제도인 연봉제는 빠른 속도로 정착하였으며,
이는 노동자들이 받아들였던 최대의 패배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즉 노골적인 비밀로서 임금은 더이상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완전히 패배한 것입니다.
자본의 대대적인 역습, 즉 자본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본가의 삶에서만 자기의 삶을 이해하는 세계가 등장한 것입니다.
선생님께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변화 중 하나가 자본이 일러주는 스크립트 대로 일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성과’란 예전에는 없던 표현입니다. 성실함과 근면함 대신 등장한 ‘끼’ 이러한 말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장 큰 변화는 일의 능력에 관련된 담론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열정, 끼, 몰입은 일상에 자리잡은 전문적인 심리학적 용어가 됐습니다.
청년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것은 불안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저항의 정신 밖에 없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거부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은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노동의 세계, 혹은 노동의 의미의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착수해야 하는 것은 ‘초상’을 그리는 일입니다.
그 초상화의 단편을 그려보는 속에서 새로운 일의 세계, 노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각자가 살아가야 할 세계는 바로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르바이트 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시대 노동의 초상을 그려보려고 했었던 이날 강의의 함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