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이었던 8월 20일(월), 『막다른 골목의 추억』 출간을 기념하며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러 서울에 왔습니다. 늘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과 이야기로 맞아주었던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와의 기분 좋은 만남, 지금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보문고 광화문 배움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한여름의 힐링 캠프’, 강연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많은 독자님들께서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강연이 시간되자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으로 작가님께서도 함께해주셨습니다. 얼굴 가득 미소를 품고 계신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여분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많은 독자님들께서 강연장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님과 함께하는 ‘한여름의 힐링 캠프’는 독자 분들께서 사전에 댓글을 통해 전해주신 작가님 작품 속 문장과 각각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이 되었습니다.

먼저 작가님께서 직접 이번 신간 『막다른 골목의 추억』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전해주셨는데요, 작가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밝힌 이 작품은 그야말로 바나나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독자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첫 번째 독자님께서 뽑아주신 『하드보일드 하드럭』 속 구절과 사연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님께서는 시간이 간다는 것, 그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목욕탕에서 옛날에 언니에게서 해외여행 기념으로 받은, 좀처럼 닳지 않았던 불가리 동물 모양 비누가, 이제는 동물 모양이 아니라 그저 딱딱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또 엉엉 울었다. 시간이 가버린다.” ― 『하드보일드 하드럭』

독자 사연: 가장 위로를 받았던 문장은 이 문장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었거든요. 시간의 흐름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문득. 아주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일. 그 느낌.

요시모토 바나나: 그대로 멈추어버린 것들이 있죠. 잃어버렸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물건이라든가, 카페에 들어갔을 때 ‘아, 그때는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었다’ 라든가, 겨울이 되면 코트를 입는데 ‘작년에 그 사람은 살아 있었네’ 라든가…  소설을 통해서 그런 마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응고된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해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독자님께서는 『안녕 시모키타자와』 속 한 문장을 선택해주셨습니다. 돌아간다는 것, 귀향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시모키타자와로 가 주세요.”
지금 나의 고향,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의 이름. ― 『안녕 시모키타자와』

독자 사연: 고향을 떠나와 타향살이를 하는 저에게 언제가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그리움을, 그리고 언젠가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주네요.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타자와는 한국의 홍대와 같은 분위기를 간직한 곳입니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잃고 시모키타자와로 이사해 살면서부터 정말로 자기다운 면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사람이 돌아가는 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정말 돌아가야겠다는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태어난 곳이라기 보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독자님께서 선택해주신 문장은 『무지개』 속 한 문장입니다. ‘결심’에 대한 작가님의 멋진 이야기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담담하게 일하고, 들뜨지 말고, 복잡하고 성가신 일에 휘말리지도 말고, 자기 발이 딛고 있는 땅을 찬찬히 내려다 보면서 걸어갈 것. 그리고 하루하루의 생활과 자연의 힘에서 얻은 행복과 즐거운 기억을 잊지 말 것.” ― 『무지개』

 독자 사연: 삶에 지쳤을 때, 여행을 하다가 숨이 막히도록 멋진 장면을 볼 때, 이 글이 떠오릅니다. 살다 보면 그러한 멋진 장면을 보면서 결심했던 것들이 흔들리거나 잊혀질 때가 있는데, 이 글귀를 보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해주거든요.

요시모토 바나나: 일본은 80년대에 경기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다들 돈이 많았고, 다들 자기 돈을 쓰지 않는 생활을 했습니다. 드라마처럼 쇼핑을 하고 돌아오면 집에는 밥을 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런 생활을 잠깐이나마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헬리콥터를 산다거나, 살지 않는 맨션을 임대한다거나 하는. 물론 저에게는 그렇게 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웃음)

그런 호사스러운 생활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소설 쓰기도 쉽겠지요. 그러나 그런 생활을 보내면, 자기가 쓰는 글이 자기답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때 저는 특별한 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만. (웃음)

자기 손을 쓰지 않고, 자기 발을 쓰지 않으면 머리도 완전히 멈춰버리게 될 것입니다. 자기 손과 발을 쓰지 않으면, 결국 남들이 생각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전철을 탔을 때 사람들이 말을 걸고… 그런 생활을 지금까지 지켜왔습니다. 결심이라는 건,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렸던 독자님의 문장은 『왕국』 속 이야기 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심경이 참담한 사람은 나뿐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누군가가, 그리고 모두가 지나가는 길이라고.” ― 『왕국3: 비밀의 화원』

독자 사연: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2008년, 『왕국』 시리즈는 저의 힐링 북이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사회에서 적응을 해 가는 시즈쿠이시의 모습은 사회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저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너무 힘에 부쳐 견디기 힘들었을 때 할머니가 시즈쿠이시에게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꼭 저를 토닥거려 주는 할머니의 손 같았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여러 사람이 다양한 일에 대해 상담을 해 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거운 일이라도 본인에게는 가벼운 일이겠지요.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잘 살아가는구나 싶은 것도 있고, 저런 일로 고민하는구나 싶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평범하게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잘 보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이 보이는데 정작 그 사람은 그런 점은 보지 못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슬플 때는 오히려 더 슬픈 내용의 책을 읽습니다. 힘들 때에는 그보다 더 힘들거나 슬픈 내용이 있는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어느새 한 시간에 가까운 ‘힐링 캠프’가 끝나자, 작가님께서는 즉석에서 시간을 내셔서 현장에 계신 독자님들께도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작가님의 글씨도 정말 작가님의 글처럼 소담스러운 느낌입니다. ‘힐링 캠프’를 모두 마친 다음 일곱 시부터는 교보문고 광화문 내 구서재로 이동해 작가님과 함께하는 사인회 자리를 다시 마련하였습니다. 단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사인회에도 그 시간을 끝까지 채울 정도로 학생부터 직장인, 일본에서 오신 분들까지 많은 독자님들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한글로 많은 이름을 쓰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끝까지 하나하나 정성 들여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절로 따라서 웃게 되는 작가님의 맑고 큰 미소!

이날 작가님을 뵙고 눈물을 흘리셨던 독자님들도 계셨습니다. ‘힐링 캠프’ 때에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울컥하셔서 사연을 미처 다 읽지 못하기도 하셨고요. ‘바나나 우유’를 선물하시는 독자님들의 재치와 재기는 덤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이야기로 저희의 마음에 크나큰 위로를 전해주셨던 작가님, 이번 신간 『막다른 골목의 추억』을 통해 보다 많은 독자님들께서도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언어들을 만나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과 끝까지 좋은 시간 이끌어주신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는 『막다른 골목의 추억』 책 이야기로 계속해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