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7일(월) 저녁 7시, 신사동 민음사 본사에서 『눈먼 시계공』 출간을 기념하여,
특별 기획 대담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눈먼 시계공』의 저자 김탁환 작가님, 정재승 교수님, 그리고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인터넷 파워 블로거 여러 분들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김탁환: 김탁환입니다. 소설가입니다. 『눈먼 시계공』이라는 작품, 정재승 선생님과 함께 펴냈습니다. 1년 정도 준비하고1년
정도 집필, 1년 정도 퇴고했습니다. 요즘은,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왠지 견디기 힘든 시기입니다.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작품에 많은 시간을 투여했지만, 요즘은 책과 거리를 두는 시기기도 합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의 시간이라고나 할까요? 여러분을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정재승: 정재승입니다. 반갑습니다. 말이 간담회지만, 자연스럽게 궁금하셨던 점들 이야기 나눴으면 합니다. 1999년에 첫 책을 낸 이후 이제 1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너무 어리고, 세상 무서운 줄 몰라, 제가 읽고 싶은 책을 냈습니다. 조심하기보다는 과감하게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10년간 글을 쓰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소설을 써 보니 예전 글과 다르게 어떻게 읽히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의 글이 과학에 대한 글,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글이었다면, 이번엔 과학적 상상력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문학적 상상력과 어떻게 만나는가에 대한 것이 어서 기대가 큽니다. 소설에 실렸던 김한민 씨의 그림을 보면서 작업도 되돌아보고,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 이런 협업이 어떤 의미인가 등 여러 이야기 나눠 보았으면 합니다.
독자: 그림보다 글이 인물 묘사가 더 뛰어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림도 뛰어났고 피카소가 나왔구나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림에 일렉트릭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그림보다는 글이 더 와 닿았습니다.
정재승: 독자 분께서 글을 읽고 상상하시는 내용이 그림을 압도한 듯합니다. (웃음) 통상은 텍스트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림을 넣거나 아예 넣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유례 없이 그림을 많이 넣은 이유는, 사실 이번처럼 이렇게 매일 연재를 위해 이런 좋은 일러스트가 들어간 경우도 없고, 책으로 따로 묶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림이 훌륭했던 탓입니다.
독자: 삽화가 있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좀 달랐습니다. 그림 자체가 세련되었고, 그래픽 노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과 그림을 따로 읽기도 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글을 읽느라 그림을 잘 보지 않기도 했어요. 따로 챕터를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탁환: 줄거리는 짜놓고 보니 꽤 복잡하더군요. 폭력, 화, 로봇 이야기,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 문제 등. 좁혀서 들어가든가 버라이어티하게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후자를 택한 셈입니다. 사실, 저는 줄거리가 정리가 안 되는 소설이 가장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줄거리를 정리하려고 하면 중요한 것들이, 빠져 나가는 느낌입니다. 이번 소설은 제게 모자이크 같은 느낌이었죠. 빛을 어디에 쏘느냐에 따라 반사되는 부분이 다르듯 여러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독자: 줄거리를 정리하실 수 없다 한 이유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김탁환: 추리 소설이니깐 범인을 잡는 과정을 요약하는 게 줄거리 요약이 될 텐데, 실제로 추리물에서는 범인을 어떻게 잡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범인을 그렇게 설정한 이유 등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물들을 범인을 쫓고 쫓는 관계만으로 정리
하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의 3분의 1도 전달을 못 합니다. 쫓고 쫓는 관계를 그리는 것이 추리 소설의 본질이라는 점에
서 이율배반적인 부분이긴 하지만요.
독자: 저는 다양한 점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 산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조율이 좀 부족했던 건 아닌지요.
정재승: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정의할 방식이 많은 소설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작가의 욕망 때문이기
도 할 것입니다. 어떤 뛰어난 능력의 주인공이 어떤 뛰어난 능력의 범인을 잡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은 인간과 로봇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인간의 이성과 어두운 감성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로봇 얘기기도 하지만 문명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산만하게 열린 구조로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면 좋은 소설이 아닌 게 되겠지만, 뭔가 메시지를느끼셨다면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독자: 저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는데, 100여 년 전에 쓰일 때는 혁신이었겠지만, 지금 읽으면 지금과 흡사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눈먼 시계공』에서도 자연 옹호적인 부분이 있는데…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좀 비약한 것이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있고요.『멋진 신세계』와 연관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재승: 그 책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고, 직접적으로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영향을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탁환 작가님이 다 쓰고 나서 깨달으셨듯이 저도 그랬는데, 쓰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힘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밤의 문명과 낮의 문명을 대조하며 낮의 문명을 전두엽과 연결시켰던 부분이 있는데, 막상 책으로 읽어 보니 그리멋있지않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애정이 가는 부분은, 눈보라 마을이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마을이 왜 생태주의자들의 아지트가 되었나, 그리고 사이버 테러 당해 죽는 장면 등 이런 장면들은 참 한국적이고 자연스럽게 쓰인 것 같고, 나중에 보니 이런 장면들이 더 와 닿아서 한국에서 한국인이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독자: 두 분이 작업을 또 하시나요? 저는 리처드 도키슨의 『눈먼 시계공』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고, 김탁환 선생님은 역사 소설가, 정재승 선생님은 대중 과학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 삼박자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구르믄 버서난 달처럼」을 찍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독자들은 준비가 덜 되어 있지 않을까요? 역사 소설가 김탁환 선생님이 미래 소설을 쓴 것도 의외고, 정재승 선생님은 소설을 통해 대중 과학을 어필하려 하는 건지, 소설을 쓰고싶은 건지 헷갈렸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리처드 도키슨의 『눈먼 시계공』에서 차용했지만, 소설에 담긴 일상들은 원 작품과 잘리 진화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발전에 대한 것이라는 부분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재승: 그렇다면 우리의 독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했을까요? (웃음)
독자: 그건 아니죠. 창작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정재승: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오히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독자: 제가 또 하실 건지 물어본 이유는, 김탁환과 정재승만의 장르가 나왔으면 해서였습니다.
독자: 저는 밤 2시, 3시까지 책 읽는 사람 싫어하는데, 제가 이 책 때문에 이틀을 꼬박 그렇게 했습니다. 참 재밌게 읽었고, 그런 면에서 눈먼 시계공은 ‘잡탕밥’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잡탕밥이라는 것이 비싸고, 오묘한 맛이 나는데 참 맛있습니다. (웃음) 잡탕밥이라 하는 이유는, 뇌 과학, 심리학, 생물학, 로맨스 등 다 담겨 있으니깐요.
김탁환: 『눈먼 시계공』은 2~3년 동안 했던 작업입니다. 제 글쓰기 스타일은, 나름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 잡아 쓰는 편이고, 이 이야기에 가장 적당한 옷, 적당한 장르가 무엇인지 고민해서 쓰는 쪽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의 이미지가 세긴 센가 봅니다. 이걸로 역사 소설가가 되어야지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과학 내에서 소재를 잡아 쓴 것도 평소 글 쓰던 스타일대로일 뿐입니다. 최근 관심을 두는 것은 인간이 아닌 것들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하며 놀라웠던 이야기를 쓴 것이, 『노서아 가비』입니다. 강영호와 『99』를 냈는데, 이 소설은 또 호러였습니다. 홍대에서 만난 귀신들 이야기이죠. 『눈먼 시계공』도 인간의 인간됨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것들, 로봇이나 사이보그를 보면서 인간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죠. 역사 소설가로 이름이 났지만, 전 이렇게 날아다닙니다. 독자들도 이해하지 않을까요. 『노서아 가비』에서 『99』, 그리고 2049년 이야기,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지 않을까 하네요.
독자: 저는 SF소설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두 분이 SF를 쓰신 게 매우 기쁘지만 “이것은 SF가 아니다.”라며 “미래 소설이다.”라고 발언하셔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시도도 좋고 독특한 작품이지만 너무 퍼즐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100만 피스 두고 맞추는 느낌이었죠. 굉장히 많은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모두 설명하려 드는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했고요. 스토리는 좋았지만,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면이 너무 많은 것보다는 줄거리가 좀 더 집약적이었으면 합니다. 특히나 대중적인 작품을 원하신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김탁환: 다시 한 번 작업하면 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와 과학자가 함께 쓴 것이 처음이라 이런 시도 자체가 모험이었습니다. 다른 선례가 없었기에, 이렇게 섞일 수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고, 작업하면서도 계속 신기해했어요. 그래서 아마 필요 없는 듯한 장면도 애틋한 마음에 넣기도 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저 둘이 이런 건 잘했지만 저런 것은 못했다고 평가하며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대중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내 말을 참고 들어줄 수 있는 정재승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독자: 저는 컨텐츠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공학과 예술을 융합해서 보려면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부 중입니다. 두 분은 한 분야를 각각 잘하시는 분이어서 협업이 빛났던 것이 아닐까요. 문과와 이과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 인상 깊었지만, 아직도 사회에서는 하나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정재승: 그런 문제 의식을 느끼고, 문학하는 분 중 가장 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을 만나, 이런 것을 시도해 볼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과학자와 소설가를 연결해서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정도는 없습니다. 한 분야를 깊이 들어간 사람들이 같이 하는 거나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시도해 보는 거나. 하지만 융합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더 정교하게 결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을 원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런 것이 있다면 로봇에서 구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뇌에 있는가 몸에 있는가, 그걸 로봇에 넣어 주면 인간이 되는 것인가, 그런 작업을 해도 되는 것인가 등등. 이와 같은 논의를 하려면 사회학, 인류학 등 한 가지로 답할 수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모두 아우르는 지식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질문하고 답해 보려면 우리가 아는 모든 성찰을 담을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왜 미래 건축물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지?”라고 물을지도 모를 사람에게 답하고 싶은 욕망이 많아서, 그래서 소설에 그런 것까지 모두 담으려 욕심 부리다 보니 잡다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 저 또한 SF 독자로서, 이 소설은 테크노 스릴러라 정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릴러 구조의 스토리에 방점이 있고, SF 장르 클리셰를 따르거나 SF에 경외감을 느끼지는 않는 작품 같습니다. 주변의 SF 독자들에게 질문할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왔는데요. SF를 공상과학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기자 간담회 때 “공상과학과 달리…”와 같은 발언을 하신 탓에 분개한 SF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국내에 토양이 없다고 하신 발언에 대해서도 SF 독자들은 문제가 있다 느꼈고요. 국내 SF를 많이 읽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SF라는 장르에 어떤 애정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SF란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내적 논리를 쌓아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닌가요? SF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고, 이미 SF 자체에 있는 개념으로 이 소설을 정의하며, SF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탁환: 저 또한 SF 장르를 좋아하고 많은 SF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다는 걸 왜 사람들이 모를까 싶을 정도로요. (웃음) 특정 장르가 끌리면 끼적여 보고 습작을 해 보다가 결국 발을 들이게 되는데, 『눈먼 시계공』이 장편으로는 처음이지만 사실 제게는 세 번째 SF입니다. 『여인의 초상』이라는 중편소설도 쓴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정재승을 만나서 쓴 것이 아니고, 카이스트도 어쩌면 SF를 쓰고 싶어서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2049년이 어떤 모습일지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구체적으로 조사를 해서 내용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막연하게 2300년에는 어떨 것이다, 라고 그린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선에서 내용을 그린 것이 기존 SF와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네요.
정재승: 전 공상과학이란 말은 안 쓰기 때문에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자 간담회에서는, 대중들을 상대로 발언을 한다는 생각에 용어를 섬세하게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SF 팬덤 안에 있어 봤기 때문에 SF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어이없어했을 거예요. 경솔했던 듯합니다. 제가 《크로스로드》 편집장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것은 최고의 원고료를 주고, 모두 번역해서 과학소설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죠. 다들 제가 편집장이었던 것에 충격받은 것 같아요. 제가 아직 국내 SF의 토양이 부족하다고 했던 것은, 저도 그 팬덤 안에 있지만, 사실 그 팬덤에 계신 분들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팬덤 안에서 작품과 비평이 모두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순수문학, 소위 주류문학 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뭐가 다른가, 용어부터 바꿔라 누가 주류냐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죠. 이번 작품이 그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이것이 진정 과학 소설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것은 과학소설이라고 보기보다는 테크노 스릴러라고 해야 옳다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것은 본질적인 딜레마일지 모르겠습니다. 3000명의 SF 팬덤이 지지할 만한 책인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고요. 주류문학에서 가치 평가할 책인가, 하면 또 아닙니다. 굉장히 대중적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죠.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서로 우리 거라고 하기보다 서로 우리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소설입니다. 주류문학 하시는 분들이 읽고 주류문학 관점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의의가 있구나, 라고 한다면 굉장히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사이언스 소설 쪽에서도 어떤 의미를 말해 준다면, 또는 대중적으로 이런 소설 쓸 만한구나 또는 출판사에서 이런 책 낼 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정도라면, 이 책의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과학자가 소설 쓰는 것, 과학계에서 환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들이 과학계에서 늘 환영받는 작업들은 아닙니다. 과학은 쉽고 재밌는 게 아니니깐요.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크고, 그래서 이런 작업을 하는 다음 세대 과학자가 다음엔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 과학이 뭔가를 해 주기 전에, 문학이 과학을 향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지 않나요? 나중에 내가 그때 그 책을 읽었기에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정재승: 2049년 미래 서울의 모습을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40년 안으로 진위 여부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웃음) 영미 문학권의 SF를 읽다 보니, 자꾸 그 모드로 가게 되어서, 그래서 나와의 싸움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영미 문학권의 상상력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2049년 서울의 모습이 과연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래 도시와 어떻게 다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국가, 대학 등 주도로 2030년, 2040년을 상상하는 프로젝트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인터넷에 그 자료들이 모두 올라와 있고요. 뭘 쓰든 이미 누군가가 제시한 것과 같을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 상상의 범위를 모두 파악해야 새로운 것을 쓸 수 있는 것이었고,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그리는 미래 서울의 모습은 테크노피아입니다. 발달한 과학의 혜택을 받은 도시를 주로 상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들을 피하다 보니, 좀 더 과격한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에서 서울을 감싼 안개나 도시가 자연을 벽 삼는 것 등이 그랬죠.
독자: 재미있었지만 유니크하지 않아 아쉬웠고, 설명이 너무 많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공상과학이니 SF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소설로서 재밌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동차가 어떻게 나는지 제게는 안 중요합니다. 너무 과학적 설명이 많았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전문 지식을 다루는 소설들의 맹점들일 텐데,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도 그런 면에서 흡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정재승: 그런 것들이 일종의 강박일 수도 있습니다. 서양 과학 소설 많이 읽다 보니, 설명 없이 차용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뭔가 근거를 가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무쪼록 『눈먼 시계공』에 가져주신 관심과 책에 대한 긍정적 비판 모두 감사히 들었습니다.
SF 도서관 운영, SF 동호회 운영자, 소설가, 건축가, 디지털 컨텐츠 전공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여러 파워 블로거 독자 분들께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 주셨고, 『눈먼 시계공』의 저자 김탁환 작가님, 정재승 교수님께서도 독자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열심히 답해 주셨습니다. 과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나 탄생한 『눈먼 시계공』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풍성히 나눴던 무척 유익한 대담이었습니다.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여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