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나를 위해) 카프카를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들었던 말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도슨트 교육을 받는 중이었는데, 그 후 박물관에서 일하는 내내 이 말 한마디가 그곳의 대리석보다 빛났다. 시간이 흘러 박물관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된 후에도 나는 유난히 고단한 하루나, 너절한 계절 뒤에 그곳을 찾았다. 특히 수요일의 야간개장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때를 이용하면 텅 빈 궁전을 내 발소리만으로 채울 수도 있었다. 값을 따질 수 없는 것, 시간의 아우라를 가진 ‘진짜’들은 곁에 서 있는 이에게 기꺼이 그 빛을 나눠 준다. 돈이 없어 남자친구와 학식을 나눠 먹던 시절에도, 우리는 그곳에 있으면 가질 수 없는 것들 사이를 당당히 걸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나에게 고전을 한마디로 말하면, ‘수요일 밤의 박물관’이 아닐까?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돈을 벌고 있지만, 가난한 하루와 힘든 순간은 여전히 있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비좁은 인간관계의 틈을 간신히 빠져나와 마음이 무거운 저녁이면, 나는 고전을 읽는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마음껏 나를 고양할 자유. 그저 그런 책들은 다음 생으로 미루고, 진짜 좋은 것들로만 책꽂이를 채우는 작은 사치를 누린다. 버지니아 울프, 알베르 카뮈, 이탈로 칼비노를 읽으며 아무나 살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문장들 사이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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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구원할 무언가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당신이라면, 어쩌면 이 책이 놓일 자리가 당신 안에 이미 있지 않을까? 열세 편의 고전을 만화로 그려 ‘작심’의 부담도 ‘완독’의 책임도 잠시 미뤄 둔 이 책은 대신 한눈에 영롱할 진품의 ‘첫인상’을 담았다. 셰익스피어부터 카프카를 지나 하루키까지, 이 중에 당신의 ‘인생고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박물관의 로비까지는 데려다줄 것이다. 일단 그곳에서 ‘진짜’의 냄새를 맡으면 어떤 보물이라도 찾아내고야 말 테니, 당신의 밤을 밝힐 야간개장을 기다린다.

 

*깨알 정보: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수/토 야간개장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문학 1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