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여인_입체북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는 결국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계속 새로워지고 진화하는 것은 문장뿐이다. 설령 똑같은 내용이라도 문장이 바뀌면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노벨 문학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열 번째 신작, 『빨강 머리 여인』의 경우는 어떠할까. 이번 소설에 배경이 되는 파묵의 뮤즈 이스탄불, 또 우물과 살인의 묘한 긴밀함은 그의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크게 낯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펼친 순간 이 소설이 파묵의 작품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더 깊어졌을 뿐 아니라,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교한 이야기가,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면?

이야기는 주인공 젬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젬은 학비를 벌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30마일 떨어진 왼괴렌으로 우물을 파는 마흐무트를 따라 간다. 딱히 우물을 파는 장비도 없던 시절, 뙤약볕에서 삽으로 우물을 파는 고된 과정 속에서 마흐무트는 젬에게 없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 돈독한 관계는 묘령의 빨강 머리 여인이 나타나면서 흔들린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그녀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젬은 마흐무트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인생의 첫 경험을 그녀와 보낸 다음날, 흥분과 수면 부족 상태에서 젬은 실수로 25미터 아래로, 그러니까 우물 바닥으로 흙이 가득 찬 양동이를 떨어뜨린다. 깊은 땅 속에서 마흐무트의 짧은 비명 소리가 울리고, 정적이 이어진다. 마을과 먼 곳, 아무도 없는 곳, 젬은 도움을 청할 사람을 미처 찾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없이 이스탄불로 도망쳐 버린다. 마흐무트는 죽은 것일까?

그날 이후 소설가를 꿈꾸던 젬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RostamMournsSohrab

 

 

출간 즉시 40만 부, 놀라운 반전이 있는 결말

젬의 운명을 관통하는 두 가지 신화가 있다. 하나는 페르시아의 신화 『왕서』다. 왕서 속에서 페르시아의 왕 뤼스템은 아들 쉬흐랍을 제 손으로 죽이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머지 하나는 『오이디푸스 왕』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해 왕좌에 앉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와 같았던 마흐무트를 우물 밑바닥에 버려두고 온 젬은 어떻게 될까. 그는 절대로 알지 못했던 빨강 머리 여인과 자신의 관계, 어릴 적 사라진 아버지와의 관계, 마흐무트의 결말이 거대한 어둠처럼 입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빨강 머리 여인』은 터키 출간 즉시 40만 부가 판매되었다. 오르한 파묵의 경이로운 기록이 다시 깨졌다. 이 소설이 파묵의 작품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최고 경지의 오른 장인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독보적인 흥행과 함께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증명한 오르한 파묵. 신화와 삶, 운명과 의지가 절묘하게 뒤섞인 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나 보자. 누구나 첫 페이지부터 정신없이 끌려들어갈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박지아

연령 7세 이상 | 출간일 2018년 6월 29일
수상/추천 뉴욕 타임스 외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