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촘촘한 자수처럼, 오묘한 문양처럼―박민정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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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는 항공사 승무원인 딸의 죽음과 그 진실을 밝히려는 아버지의 분투의 과정이 담긴 소설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봐 온 익숙한 구조일 것이다. 피해자인 딸을 둔 아버지가 등장하는 부성애 서사. 그러나 박민정이 쓰는 ‘피해자 아버지 서사’는 딸을 잃은 아버지가 복수심으로 뜨겁게 타오르며 질주하거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복수에 성공하는 권선징악식 결말로 끝맺지 않는다. 작가는 단지 장르적 특징을 표면으로 둔 채, 그 속을 채울 중요한 서사 다발을 다른 방식으로 마련한다.

 

박민정의 소설은 개인과 집단, 동시대성과 역사성을 촘촘히 엮어 낸 자수 같다. 소설의 모티브나 배경이 되는 사회적 사건과 박민정의 플롯과 인물이 겹쳐져 만들어 내는 문양은 악마의 얼굴인 동시에 천사의 얼굴처럼 보인다. 박민정의 소설적 윤리는 바로 이 ‘정의할 수 없음’의 상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에 있을 것이다.

 

여러 이야기 다발이 한데 겹쳐지며 완성되는 이 소설에서 특히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군인의 딸로 살던 유년부터 서른한 살의 ‘미스 플라이트’가 되기까지, 부당한 일에 부끄러움을 알고 함께 싸우며 ‘똑바로’ 살고 싶어 하던 유나의 삶이다. 답습되는 부성애 서사에서 피해자인 딸은 아버지의 복수심을 추동하는 소품에 그치지만, 『미스 플라이트』에서 유나는 유구한 폭력의 구조를 체화하고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윤리를 거듭 확인하며 부단히 성장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박민정이 썼고, 독자에게 가닿게 될 이 소설은 부성애 서사의 탈을 쓴 여성 성장 서사다. 이제까지의 박민정 소설에서 보지 못한, 특유의 차갑고 집요한 시선에 어린 물기를 눈치 챘다면, 그것은 아마 살아오는 내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중력을 거스르고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던 ‘미스 플라이트’ 유나에게 보내는 작가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는 유나를 둘러싼 파편적인 기억들이 등장한다. 친구인 철용이 기억하는 “맑은물만들기사업” 현장에 훼방을 놓으러 떠났던 도보순례, 연인인 주한이 기억하는 주한의 고향 광주에 대해 유나가 지녔던 특별한 관심, 오래전 유나의 아버지 정근의 운전병이었던 영훈이 기억하는 어린 유나의 사려 깊은 태도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딸인 유나와 아버지인 정근의 기억이 겹쳐지는 곳은 바로 ‘KF-16 비리 사건’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방산 업체가 수십억을 횡령하고, 그로 인해 KF-16이 추락해 사망자가 발생한 이 사건으로 공군 대령인 정근과 유나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진다. 유나의 죽음으로 정근은 자신이 연루되었던, 그리고 끝내 외면했던 그 사건을 거듭 떠올리게 된다. 너무 늦게, 혹은 생각보다 일찍. 딸의 죽음이 불러온 질문은 아버지가 고집스러운 태도로 연신 주장하던 ‘책임 없음’, ‘어쩔 수 없음’을 겨냥한다.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라는 정근의 서술은 한 인물이 평생 믿어 왔던 것을 점차 의심하게 되는 순간을 보여 준다.

 

작품 안에서 유나의 편지를 읽은 아버지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처럼, 이 소설을 읽은 독자 역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박민정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새로운 질문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만든다. 유나를 둘러싼 여러 입장에 대해서, 가해와 피해가 겹치는 자리에 대해서, 이 소설이 남겨 놓은 결말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박민정의 ‘질문의 소설’에 연루되고 감염될 순간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