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표지 디자인은 1988년부터 2011년까지 총 네 번 바뀌었다. 소설 속 인물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를 떠올릴 법한 그림들을 연결시켰다는 것— 이 정도가 큰 틀이었던 것 같다.

 

1993년과 이후에 세계문학전집까지 사용된 첫 그림. 프란시스 피카비아의 「열대」에서는 토마시와 사비나가 연상된다. 밀란 쿤데라 작가 전집에서 사용된 르네 마그리트의 「중산모를 쓴 남자」에서는 토마시가 연상된다. 앞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표지가 더 바뀐다 해도 인간 존재와 사랑, 이 두 가지 ‘무거운’ 단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표지를 준비하던 중 영미권과 독일어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쓰인 개 스케치 이미지를 전달받았다. 개라니…… 그것도 밀란 쿤데라가 그린 개. 밀란 쿤데라만이 이 소설과 연결되는 이미지로 크루아상을 좋아하는 개, ‘카레닌’을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이렇게 철학적인 질문을 500쪽 넘게 던져 놓고도) 쓱— 그려 넣을 수 있었겠지.

 

밀란 쿤데라가 그린 카레닌을 본 뒤로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카레닌’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다섯 번째 표지로 쓰지 않는다면 앞서 나온 네 가지의 표지와 동어 반복을 다시 하는 것밖엔 의미가 없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11년에 박연미가 작업한 밀란 쿤데라 전집이 앞으로 더 이상의 다른 표지는 필요 없다는 듯 명제처럼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만들자면 그런 거고…… 사실 그저 카레닌을 표지에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갖고 싶었음을 고백한다.) 원서에 쓰인 그림이라 새롭지 않으니 다른 시안을 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마음은 확고했다. 결국 편집자와 함께 박 교정까지 여럿 내어 다른 부서에 보여 주며 이 표지의 장점을 어필했다.

 

북디자이너의 개인적인 취향과 의미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작업에서 그런 의지가 보이는 것이 좋다. 눈에 잘 띄고 세련되고 화려하고 예쁜 것은 넘쳐난다. 그 중에서 작업자의 병든 마음일지언정 사적인 취향이 드러나는 걸 보는 것이 즐겁다. 또 그걸 드러내는 것이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번 30주년 특별판은 새롭거나 대중적이진 않을지언정 사적인 취향과 이 책에 부여했던 의미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작업이라 즐거웠고, 앞으로 또 어떤 표지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언젠가 카레닌이 물고 다닌 ‘크루아상’을 쓱— 그려 넣은 ……을 상상하며……. 여러 모로 이 세상 모든 것이 더 가벼워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민음사 미술부 최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