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못다 한 사랑 노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 전시가 한창이다. 마리 로랑생 하면 파스텔 빛깔 여인상 그림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이다. 한국인에게는 샹송의 가사로도 잘 알려진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와 연인을 위한 헌정시 「마리」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마리 로랑생이다. 세계시인선 19번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황현산 역)에는 짧았던 아폴리네르의 생에 깊은 영향을 끼친 로랑생이 곳곳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황현산 선생의 도저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아폴리네르의 시를 감상해 보자.

소녀여 그대는 저기서 춤추었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춤추려나

그것은 깡충거리는 마클로트 춤

모든 종들이 다 함께 울리련만

도대체 언제 돌아오려나 그대 마리

가면들은 조용하고

음악은 하늘에서 들려오듯

저리도 아득한데

그래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싶다오 그러나 애타게 사랑하고 싶다오

그래서 내 고통은 달콤하지요

털 송이 은 송이

암양들이 눈 속으로 사라지고

병정들이 지나가는데 내겐 왜 없는가

내 것인 마음 하나 변하고

또 변하여 내 아직도 알 수 없는 그 마음

 ―기욤 아폴리네르, 「마리」,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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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까지 약속한 열렬한 사랑을 했던, 서로를 영혼의 단짝이라 여겼던 두 사람이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이별이 서로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둘의 서글픈 관계를 알고 나면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마리 로랑생의 예술은 우리 시대의 명예(아폴리네르)”라는 헌사는 다르게 읽힌다.

앙리 루소

앙리 루소가 그린 로랑생과 아폴리네르(「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1909)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이었던 파리 몽마르트르의 세탁선(Bateau-Lavoir)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둘은 만났다. 5년간 지속된 세기의 로맨스로 인해 서로 더 아름다운 작품 활동을 영위해 갔다.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녀 또한 추후에 시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마리 로랑생의 부모는 문학도인 아폴리네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폴리네르는 1911년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휘말린다. 루브르에서 조각을 샀던 전력이 있던 피카소와 아폴리네르가 경찰 수사망에 올랐는데, 피카소가 아폴리네르를 모른다고 발뺌하는 바람에 애꿎은 아폴리네르만 수감되었던 사건이다.(아폴리네르는 그 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2년 후 진범이 우피치 박물관에 모나리자를 팔겠다고 나타나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가뜩이나 마뜩치 않던 딸의 약혼자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이 여파로 둘은 결국 헤어지고 만다. 1912년 아폴리네르는 실연의 아픔을 담아 「미라보 다리」를 발표한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기욤 아폴리네르, 「라보 다리」,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서

124쪽_그림3_Guillaume_Apollinaire,_1902,_Colo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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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두 예술가의 삶의 방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공통점이 있다면 전쟁의 상흔을 깊게 입었다는 점일까.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기욤 아폴리네르는 1916년 1차 세계대전에서 뜻하지 않게 유탄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1918년 이른 생을 마감한다. 마리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뒤 급하게 독일인 남작과 결혼하지만, 신혼여행 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스페인으로 망명 생활을 떠난다. 이때 마드리드에 머물며 프라도 미술관에 자주 드나들며 프란시스코 고야와 디에고 벨라스케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시기 그림들에 사용된 섬세한 회색에는 고독과 절망이 부각된다.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 남편과 이혼한 후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 이 시기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스텔 빛깔 여인상 그림 연작을 그린 화가 마리 로랑생의 황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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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에는 마리 로랑생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을 비롯해 마리 로랑생이 1942년 출간한 시집 겸 수필집 『밤의 수첩』 이 전시 중이다. 또 관람을 마친 후에는 시를 직접 필사해 보는 특별한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한번 들러 보는 건 어떨까?

민음사 편집부 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