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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시나리오가 궁금해진다. 그 때문인지 최근 박찬욱, 이경미 감독 등 소위 아트하우스 영화감독들은 각본집을 함께 출간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읽는 행위 자체가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길로 인도한다는 작가의 주장처럼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에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명작 영화의 시나리오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박찬욱
이 책을 편집하면서 좋은 고전 영화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차이나타운」과 「콜래트럴」은 여운이 남달랐다. 직접 인용된 시나리오 부분을 편집하면서 각 대사의 발화자가 누구인지 구분하기 위해 영화를 다시 감상해야 했는데, 돌이켜 보니 이 기회가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다. 신작 영화가 매주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톰 크루즈가 나온 2004년작 영화를 다시 볼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유의 색을 띄게 되는 고전이 가진 깊은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게다가 좋은 영화는 거듭 볼수록 좋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TV에서 방영하는 「나 홀로 집에」를 곁눈질로라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나리오 쓰기 교재인 이 책은 좋은 시나리오를 보여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나리오를 쓰는 정교한 기술을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는 첫 열 쪽 내에서 관객들을 강렬하게 사로잡아야 한다는 규칙이나, “만일 영화가 성공하면 시리즈물을 만들어라.”라는 할리우드의 오래된 격언을 들려 준다. 또한 전체 구성을 할 때 시간순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카드 십 여 장을 늘어놓고 순서를 앞뒤로 바꿔 보는 방법을 일러 주기도 한다. 사십여 년 가깝게 전 세계 45개국에서 백만 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시나리오 쓰는 법과는 무관하지만 이 책을 편집하며 의외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어 F. 스콧 피츠제럴드(그는 성공한 소설가였지만 실패한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다.)가 마지막 완성작인 『밤은 부드러워』가 실패한 이유를 궁리하는 대목이다. 재판에서 배치를 달리하며 몇 번이고 고쳐 썼지만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밤은 부드러워』에 대해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가장 큰 실수는, 진정한 시작(스위스의 젊은 정신과 의사)이어야 할 부분이 책 중간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라고. 재판이 인쇄될 무렵 그는 1부와 2부를 바꾸고 다이버의 구애와 결혼에 관한 미스터리를 설명하기 위해 전쟁 중 스위스에서의 딕 다이버로 소설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도 먹혀들지 않았고, 피츠제럴드는 무너져 내렸다. 피츠제럴드의 천재성이 인정받을 때까지 몇 년간 이 소설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시드 필드,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에서

민음사 편집부 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