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만 꾸는 꿈으로도 나는 셀 수 없는 편지를 쓴다” —「지붕 위의 여우들」에서
시집처럼 보이는 편지를 한 통, 편지처럼 보이는 시집을 한 권 건네 봅니다.
이 시집은 소년이 오래 공들여 쓴 뒤 부치지는 못하고 서랍 속에만 차곡차곡 넣어 둔 편지 뭉치 같습니다. 이 시집을 읽는 일은 편지를 손에 쥐고 오도 가도 못하는 작은 소년을 바라보는 일과 비슷합니다.
시집을 손에 들고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는 일이 더 외로울까,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더 외로울까를 고민합니다. 어느 쪽이든 닿지 못하고, 틔워지지 못하고, 안착하지 못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런 마음은 뭉근하게 오래 남습니다. 보낸 적 없고, 떠난 적 없고, 받은 적 없기 때문에 가슴 아래, 갈비뼈 아래에서 들끓고 있겠지요.
먼먼 곳에서 온 듯한, 먼먼 곳에서 아직 오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듯한 소년의 편지는 왜 쓰여진 것인지 생각합니다. 긴 시간과 먼 공간으로부터 온 정서가 그대로 배어 있는 편지에서 소년은 대체로 안부를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녕이라고 말하면 붉게 물드는 얼굴을 보고 싶었어” —「구름 속에서는 안부를」에서
안녕에는 수많은 뜻이 있지만 이때의 안녕은 거기 잘 있니, 하는 물음처럼 보입니다. 이 안부 뒤에는 “나와 만나는 눈물은 언제나 새로워서 나는 너를 모른다”는 고백이 따라오고, 이 고백 뒤에는 “성가대 합창에 묻힌 네 목소리를 찾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이윽고, “낙천적인 자세로 말을 걸겠다”고 말하지요. 소년은 그렇게 편지를 건네려고 합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당신의 불운이 될게 휴일 아침 잠을 깨우는 소란이 될게” —「묵음」에서
더 좋은 말을 고르려고 뒤척이며 쓰인 편지, 건네질 수 있을지 없을지 한참을 머뭇거린 시간 속에서 소년은 보다 적극적으로 당신의 뭔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시집에 담긴 문장을 따라 읽는 일은 어떤 말을 내뱉을지 모르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계절의 빗방울이 좋아요 귀엽게 구르다 쉽게 얼어 버리니까” —「오랜, 고요한 복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