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 ‘시대를 훔친 미술’이 아니라 ‘시대를 담은 미술’을 보여 줍니다! ―박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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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선생님은 미술평론가로서 전문성도 뛰어나지만, 미학뿐만 아니라 문학과 역사를 이해하는 폭도 넓은 인문학자입니다. 독문학과 출신의 386세대로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셨다는 특이한 이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깊고 넓은 독서에 그치지 않고 그만큼의 깊고 넓은 생각에 끈질기게 매달리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훔친 미술』에는 인사이트를 지닌 성숙한 저자의 향기가 있습니다.

 

나쁜 시대는 자칫하면 나쁜 예술을 낳는다. 그러나 책에서 살펴보겠지만 나쁜 시대에도 좋은 예술은 태어날 수 있다. 예술에는 현실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함께 담기기 때문이다. 나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꿈은 한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꿈을 함께 지지하고 함께한 공동체의 꿈이기도 하며, 후대가 놓치지 않고 이어 나가야 하는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전이 된 작품들을 귀히 여기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지혜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에서

 

또 저자의 강의와 책은 모두 정보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콘텐츠에 스토리와 감동이 모두 담겨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되고 팔 아픈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좋은 강의와 집필을 통해 꾸준히 경계면을 넓히고 계신 저자는 훌륭한 인문교양 저술가로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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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시대를 훔친 미술』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데, 독자는 저자가 전하는 지식의 무게만큼 또 다른 성찰을 하도록 이끕니다.

 

1478년 다빈치가 그린 자그마한 성모자상은 이런 낙관적인 견해를 잘 드러낸다. 유달리 어린 십 대처럼 보이는 성모는 보기 드물게 입을 벌려 활짝 웃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여러 ‘우아한’ 성모들과는 거리가 멀다. 중세 때의 성모들은 감히 웃지 못했다. (…) 그 사랑스러운 아들은 서른세 살이 되면 고통스러운 수난을 겪고 말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낙관성, 그리고 ‘지금, 여기’를 중시하는 마음은 다빈치의 성모를 환하게 웃게 했다. (…) 성모는 자그마한 들꽃을 들어 아기 예수에게 보여 주고, 아기 예수는 이런 자연의 일부를 과학자처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과학자 같은 아기 예수의 표정 역시 중세적 관념에서는 절대 탄생할 수 없었다. 중세적 관념에서는 이 세상은 신의 창조물인데,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이렇게 호기심을 품고 바라볼 리가 없다. 이는 자연을 호기심과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 표정이다.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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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책이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선생님의 따듯한 눈에도 들어왔지요. 역시 능력 있는 저자들은 훌륭한 책을 알아보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시대를 훔친 미술’이 아니라 ‘시대를 담은 미술’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미술 작품을 보면 그 안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시대정신이 없었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가 없었고요. 이런 시대적인 문맥을 가지고 그림을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에게 여쭤봤습니다, 그토록 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꿰뚫어 내는 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시는지. 그 답은 바로 “나의 사랑 샤넬”이라고 합니다. 앞서 보여 드린 까만 반려견이 바로 명품 가족의 이름입니다.

양희정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