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젊은작가17_딸에대하여_입체북

김혜진 작가와는 2012년 겨울에 처음 만났다. 작가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치킨런」이 당선된 후였고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우리 사이에는 공통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날은 그 친구가 만든 영화를 보러 간 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국밥을 먹으러 갔던가. 「치킨런」 읽었다는 걸 표 내고 싶어 지속적으로 알은체하는 내 유난스러움과 달리 작가는 정말이지 별말 않고, 나를 좀 궁금해하지도 않고 밥만 먹었더랬다. ‘무뚝뚝한 사람이구만.’ 김 작가는 기억조차 못할 우리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단편소설 「한밤의 산행」을 읽었을 때, 김혜진 작가의 소설집을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력 한 줄 더하려고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 해체 임무를 맡은 용역 등에 업혀 때아닌 산행을 하게 된 두 사람의 부조리하고 우스워 보이는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단순하게 깊이 있고 간결하게 심오했다. 요즘 뭐 읽어요? 어떤 작가 읽어요? 누가 물어보기만 하면 나는 김혜진 김혜진 노래를 불렀더랬다. “김혜진 소설 읽어 보셨어요?!” “김혜진 소설 좋아요!” 작가는 상상도 못할 내 외사랑에 대한 고백, 그리고 이것은 『어비』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저녁, 이제 막 제본된 『딸에 대하여』가 도착했다. 아직 잉크 냄새가 묻어 있는 책을 나는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김혜진 작가와 함께한 두 번째 책이고 그의 독자로서 읽는 세 번째 책이다. 이 소설에는 당연히, 그가 쓴 다른 작품들의 색깔들이 배어 있다.『중앙역』에서 홈리스 남녀의 사랑을 썼던 것처럼 『딸에 대하여』에서 두 여성의 사랑, 마찬가지로 변방에 있는 ‘왜소한’ 사랑을 썼다. 『어비』에 수록된 단편「아웃포커스」에 등장하는 엄마는 내가 실존 인물처럼 모시는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한 명인데, 해고된 직장 앞에서 휴대폰 모양의 상자를 뒤집어쓰고 1인 시위를 벌이며 외롭게 싸우던 고된 투쟁의 풍경은 길 위에서 시위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부활했다. 평생 타인을 위해 헌신했지만 누구도 돌보지 않는 비참한 여생만 남겨둔 치매 환자 젠, 그들을 돌보며 끝도 없는 노동 속에서 살아가는 엄마. 소외된 자리에서 자신의 싸움 같은 삶을 살아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쩐지 익숙하고 그런가 하면 낯설다.

5년은 긴 시간일까? 그 시간 동안 나는 김혜진 작가가 무뚝뚝과는 거리 먼, 그저 한 발치 떨어져서 지켜보길 좋아하는 신중한 관찰가라는 걸 알게 됐고 그 한 발치의 거리감은 다정과 반대가 아니라 줌인의 반대라는 것도 얼마만큼은 알 것 같다. 소설을 쓸 때 김혜진 작가의 시선은 아웃포커스된다. 중심에서 벗어나고 초점은 흐려진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거기서 발견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확실한 중심과 초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중심과 초점이 분명한 사람들이 던지는 단단한 질문들. 그러니까, 누구의 잘못일까. 무엇이 잘못일까. 성소수자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배제에 대해서, 누군가를 돌보는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이 모든 걸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엄마에 대해서, 엄마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번 답해 보고 싶다. 무엇이 잘못인지, 누구의 잘못인지. 그리하여 무언가에 끌리듯 나는 또 『딸에 대하여』 첫 문장을 읽고 있다.  “종업원이 뜨거운 우동 두 그릇을 내온다. 수저통을 뒤져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는 딸애의 얼굴은 조금 지친 것 같기도, 마른 것 같기도, 늙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민음사 편집부 (문학2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