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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문득 느낀다.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만난 많은 소중한 친구들과 일상의 모습이 참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누군가는 결혼을 했다.(에서 끝나지 않고 벌써 아이가 둘이다.) 누군가는 유학을 떠났다.(에서 끝나지 않고 벌써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다.) 또 누군가는 한 회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만날 때마다 회사 욕과 연애 상담을 하는 건 10년째 비슷하다.) 같은 길을 걷던 가까운 친구끼리도 일상과 고민이 달라지면서 여간해서 보기 쉽지 않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래도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와 더 자주 연락을 하게 되니까.

나와 꽤나 멀어진 친구 중에는 세 명의 ‘아이 엄마’가 있다. 두 명은 첫아이를 낳아 한참 키우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지난 연말 둘째까지 낳았다. 그 중 한 명은 워킹맘이기도 하다. 삶의 큰 획을 그은 그들에게 친구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 줘야 할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 찾아가거나 태어난 아이를 보러 놀러 가서 아기 용품을 선물로 주면서도, 그리고 종종 볼 때마다 자라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을 위해 무얼 해 주는 게 좋을지 뭘 해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사실 육아서나 아동 도서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친구들이 가끔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해 줄 수가 없기도 했다.

작년 늦가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신작 《Dear Ijeawele or a Feminist Manifesto in Fifteen Suggestions》을 검토하면서, 그 부족한 느낌을 채울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평소에 책을 조금 더 많이 접하며 사는 친구로서, 페미니즘을 조금 더 많이 접한 친구로서, 친구들이 아이를 키울 때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막연하게 있었는데, 그 마음에 딱 맞는 책을 발견한 느낌. 바로 이거였다. 아디치에가 아이를 낳은 친구를 위해 쓴 편지라서,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이 양육에 바쁜 친구들이 읽기에 무리 없이 짧고 다정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책을 더 예쁘게 포장하기 위해 ‘마더 앤 도터’, ‘파더 앤 도터’라는 멋진 책을 내기도 한 일러스트레이터 제로퍼제로의 일러스트를 넣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간이 흘러 올해 여름, 『엄마는 페미니스트』라고 제목을 정한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올해 들어 어쩐지 더욱 보기 힘들어진 그 세 친구들이, 신기하게도 딱 그맘때쯤 내게 잘 지내냐고 연락해 온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그들을 오랜만에 만나러 나가는 자리마다 책을 내밀었다. 그들에게 책을 읽은 감상을 듣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부담될까 봐 소심하게 덧붙였다. “이번에 만든 건데, 너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나왔어.” 평소에 출판사에 다녀 자주 책을 읽어 보라며 주는 친구의 평소와 다름없는 말에 그들은 “오오! 멋지다! 읽어볼게!”라고 하며 가방 속에 넣었다. 그들이 알지 모르겠다. 내가 그들에 대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했고, 그들을 떠올리며 책을 만들었다는 것을. 다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여전히 많은 수다 거리가 있고, 그들이 바쁜 와중에도 아이를 잠시 맡기고 날 만나러 와 주었으며, 다들 내 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으로 충분한 만남이었다. 어쩌면 그 책은 그저 자꾸만 멀어지는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여전히 너희를 사랑해.”라는 나의 작디작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