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용

원고를 받아들고 출력물 상태로 읽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선풍기 바람이 강풍으로 불어오는 듯, 페이지는 금세 넘어갔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상한 기분. 누군가의 맨얼굴을 본 것만 같고, 궁금하긴 한데 대면하고 싶지는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보고야 만 누군가의 비밀 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하면 너무 긴 문장인 것 같지만, 내게는 이 소설이 그랬다.

서경이라는 인물은 정말 이상했다. 비호감이었다. 소설에 몰입하면 할수록 이상한 방식의 호감이 생겨났다. 서경은 왜 사랑도 없는 섹스를 나누나. 서경은 왜 돈을 요구하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격하시키는가. 서경은 왜 눈치도 없나. 서경은 왜 이 와중에 성실한가, 서경은 왜? 서경은 대체 왜! 자꾸만 왜를 생각하다 보니, 서경과 마음으로 가까워진 것 같았다. 우연히도 소설 속 서경의 나이와 지금 내 나이는 동갑이다. 서경아, 왜 그래, 서경아 왜 그러니 반복하다 어느새 서경과 오래 알아 온 친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서경, 사랑을 주지 못한 서경, 세상에 혼자인 서경, 세상에 노출된 서경……. 어쩐지 짠하고 어쩐지 애잔한데 어쩐지 이 나이 먹어서는 가까이하게 되지 않게 되는, 그런 친구. 한 30만원은 주는 셈치고 빌려주겠지만, 나중에 거액을 바라거나 보증을 원하면  어떡하나 괜히 걱정되면서도, 안부는 늘 궁금한 그런 친구. 잘 됐으면 하는 친구. 서경에 대한 비호감은 소설을 거듭 읽을수록 서경에 대한 이해와 응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조금 울었던가. 울었다기보다는 화가 났던가. 화가 났다기보다는 안타까웠던가……, 역시나 너무 길고 복잡한 심사이지만, 내게 서경은 그런 인물이었다.

소설 속 남자들은 이기적이다. 타인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정확한 성형외과 의사 성환도 서경에게 있어서는 이기적이다. 가족에게 현금인출기 노릇을 하는 재희도 물론 서경을 대할 때는 본인의 욕구만을 앞세웠다. 둘 사이를 좌충우돌하는 서경은 욕심을 낸다. 그러다 오해하고 실수한다. 분노하다 체념한다. 나는 어느새 편집자의 친구가 된 인물, 서경의 편이 되어 그들을 욕하고 있었다. 강남대로 어디선가 만나면 오래 두고 째려볼 것만 같았다. 또한 서경에게 한마디라도 덧붙이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너의 잘못이 아냐.”

길고 복잡하며 온전히 이해 불가능한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중 사랑은 더하겠지. 사랑의 맨얼굴을 봤다고 하여 내가 서경의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친구 서경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좋아했던 서경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직장에서 온 전화를 서경은 이렇게 받는다. “오늘 오후에 상담 잡혀 계시잖아요.” / “아, 그렇지.” 그날 서경은 ‘조금’ 늦게 출근한다. 그녀는 어떻게든 삶을 유지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지속되는 사랑을 원했다. 『사랑의 맨얼굴』은 그것을 허했을까? 결말이 무엇이든 나는 다시 말할 것이다. “너의 잘못이 아냐, 서경아. 너의 잘못이 아냐.”

민음사 편집부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