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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생각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볼까?”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고자 모인 TBWA 0팀이 무모한 모험가이자 몽상가인 돈키호테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광고 프로젝트를 잡지처럼 만들어보자는 편집부의 기획을 듣고 가장 먼저 한 고민은 판형이었다.

책에 실릴 다양한 콘텐츠 중에서 1분짜리 영상과 짧은 카피를 지면에 풀어내는 것이 첫 번째 미션이었기 때문에 긴 호흡을 가진 텍스트 위주의 단행본과는 다른 방법으로 본문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독립출판물 《잡지 쿨》과 《매거진 B》 등을 참고해 그동안 작업했던 일반적인 단행본보다 큰 판형을 먼저 시도했지만, 당시 파악할 수 있었던 일부의 원고만으로 전체적인 틀을 잡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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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익숙한 단행본 판형으로 돌아와 팀장님께 본문 구성과 흐름, 요소들의 강약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을 거듭했다. 영상의 화면이 바뀌듯 분위기 전환을 빠르게 도우며 작지만 알차고 풍성하게 보여 주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박웅현 선생님과 TBWA 0팀의 목소리, 돈키호테와 외부 작가의 목소리, 편집부가 더한 목소리 등 다양한 톤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한곳에 모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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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전체 분위기를 결정할 글꼴을 고르기로 했다. 평소 SM견출고딕으로 타입세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엔 셰리프체(한글의 명조계열)인 센토(Centaur)와 견출고딕을 섞어 큰 글씨로 강조하는 카피 부분에 적용하기도 했다. 견출고딕의 돌기와 센토의 문장부호에서 드러나는 부드러운 굴곡의 조화가 마음에 든다.

마지막까지 디테일을 물고 늘어지며 한 발짝 떨어져서 독자의 눈으로 읽어 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자꾸 생기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고 나도 모르게 타협하게 된다. 어째서 고치고 싶은 부분은 늘 책이 나온 후에야 눈에 들어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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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jaen.com

보다 많은 이들이 만족할 표지를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하비에르 하엔(Javier Jaén)을 알게 되었다. 표지에 쓰인 이미지를 만든 하비에르 하엔은 다양한 고객들과 작업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그래픽디자이너이다.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여 아이디어와 실행력만으로 쉽고 똑똑한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그의 작품이 『안녕 돈키호테』와 여러 가지로 맞닿은 지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표지디자인에 정답은 없기 마련이다. 하비에르 하엔의 작품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 많은 이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확고했으며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반대를 무릅쓸 용기!) 애써 준 편집부 덕분에 최종 결정권자의 승인이 떨어졌다. (허락해 주신 ‘최종 결정권자=사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하비에르 하엔 역시 표지 시안을 확인한 후 흔쾌히 이미지 사용을 허락해 주었다. 출판사와도 일을 해온 그가 여러 가지 내부 사정을 이해해 준 덕분에 무사히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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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ntbuchholz.de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막스 아저씨는 놓치기 쉬운 순간을 수집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지와 단어를 수집해 친근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일을 한다.”

표지와도 맞아떨어지는 부제목을 기분 좋게 받아 적고 마음에 드는 뒤표지까지 만들고 난 후, 모든 갈증을 해소했다고 생각했으나 남은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에필로그에 넣을 사진과 아무 말 몇 마디. (내 사진 대신 우리 개의 사진을 넣고 싶었지만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수천 부 책에 기록으로 남겼을 때 그 어떤 찜찜함도 없도록 최선을 다해 단어와 사진을 골랐다. 박웅현 선생님이 『안녕 돈키호테』를 통해 독자들에게 좋은 여행을 선물하고 싶으셨던 것처럼, 나 역시 순간을 잃지 않고 나를 잃지 않게 만들어 준 긴 여행을 끝낸 기분이 든다.

민음사 미술부 유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