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색다른 선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어 보자. 인문학자라면 좀처럼 소개하지 않는 SF코미디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눈에 이 소설은 매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소설은 지구가 바로 이 질문을 풀기 위한 하나의 시뮬레이션 장으로서의 거대한 컴퓨터였다는 것. 그런데 이 사실을 까먹고는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해 지구를 철거해 버린 우주 공무원들의 해프닝 앞에서 과학자는 박장대소하는 한편, ‘질문’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해답의 의미 역시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색다른 시각
과학자가 『픽션들』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보통 보르헤스 하면 마르케스와 함께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로 소개된다. 그러나 과학자는 보르헤스를 환상문학의 개척자보다는 미래학자로 쳐다본다. 단편 「원형의 폐허들」에서 주인공 마술사는 자신이 꿈의 세계에서 창조한 인간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데, 나중에 마술사 자신 또한 타인의 꿈속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세계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AI 시대를 예감하고 있는 과학자에게 보르헤스는 “현실과 허상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오늘날” 미래학적 입장에서 꼭 다시 읽어야 하는 텍스트다.
3. 색다른 결론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나 오스토예프스키 같은 대문호들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이다. 모스크바에 악마가 나타나 별별 사태가 일어나는데 배꼽 잡고 웃으며 읽을 수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소련공산당의 검열이라는 어두운 그늘에 대한 블랙코미디다. 하지만 과학자가 강조하는 건 문학비평가로서의 주제가 아니다. 러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는 독서 경험을 얘기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중요한 학문적 태도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리고 해답보다 질문을!
김대식 교수는 전쟁 같은 무의미한 경쟁과 피로 얼룩진 이데올로기 역사에 반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과학자가 특히 아끼는 작가다. 『장미의 이름』에서 범인은 단 하나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한다. 웃음과 유머를 허락하지 않는 중세철학과는 달리 『시학』 2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미디의 중요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의미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언제나 폭력과 불행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책 전반에 걸쳐 깔려 있는 메인 테마다. 결국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21세기에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처럼 인간은 결국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닐까. 결국 다시 묻는다, 9장에서처럼 ‘나’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지를. 여기서부터 출발하기를.
민음사 편집부 양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