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버지가 ‘60세’가 되셨다. 그런데 그는 나이를 직접 일컫는 대신, 혹은 1958년생이라는 우회적 표현 대신 늘 ‘58년 개 띠’라는 말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 표현엔 단지 나이보다 많은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 띠’ 혹은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면 단순히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출생한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표현은 휴전 이후 갑작스러운 사회적 안정 속에서 생존에 대한 불안을 안고 태어나, 1970~80년대 경제 성장기를 이끌었으며 한편으론 그 혜택을 누렸던 한 세대를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바라보는 후대의 시선에는 존경과 원망이 뒤섞여 있다.
비슷한 시기, 1950년대 중국에서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인 ‘우링허우(五零後)’는 더욱 뚜렷한 명과 암을 간직하고 있다. 문화혁명기 농촌으로 들어가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그들은,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청춘을 바친 중국 근현대사의 영웅들이자, 세속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혁명의 추억만 곱씹는 중년의 얼굴이기도 하다.
“들은 일부 지식 엘리트들에 의해 어제는 반드시 퇴출시켜야 할 사람이었으며(들리는 말에 따르면, 효율을 위해서), 또한 똑같은 한 무리의 엘리트들에 의해 시끄럽게 길거리에 내몰리는 사람이기도 하였고(들리는 말에 따르면, 공평을 위하여), 유행하는 이론에 따라 수시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총애를 받는 그런 그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혁명의 꿈을 품고 만났던 열두 명의 ‘지식 청년’들이 훗날 자부심과 조소가 뒤섞여 왕년을 곱씹는 ‘아저씨’가 될 때까지, 혁명의 증인이 된 한 세대를 예리하게 추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부분에서는 웃음이 피식 올라오는 연애담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당시의 젠더 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불편한 통속극이고, 어떤 지점에서는 인간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반짝이는 통찰이 가득한 자서전이며, 격동하는 중국 근현대사를 그려낸 생생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이렇듯 형식이 오히려 내용을 결정하는 일들이 많다. 용좌에서 성지를 내린 사람은 황제가 아니어도 황제이다. 비밀 전보로 정보를 보낸 사람은 스파이가 아니어도 스파이다. 신분이 없는 행위 자체가 신분이며, 내용이 없는 형식 자체가 바로 내용이다. 고독한 현대 남녀가 함께 바에서 만나 영화를 보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변을 거닐고 서로 상대방의 아픈 배나 넥타이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이렇게 연애의 모든 형식을 갖추었다면 연애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본문 중에서
혁명의 시대를 살아 낸 인간 군상의 이야기. 혁명의 낮(日)과 밤(夜)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두 가지로 이해된다. 첫째는 인물들의 상처를 역사의 이름으로 보편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식색에의 욕망에 속절없이 굴복하고, 기본적인 가치관조차 흔들리는 불완전한 인간을 그리는 데 몰두한다. 이로써 ‘시대의 트라우마’라는 이름에 가려진 상처를 개인의 특수한 무게와 질감으로 복원한다.
두 번째는 인물들의 삶을 역사의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지식 청년들을 무조건 적으로 영웅화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한 삶의 질곡을 평평하게 날려 버리는 빛의 필터를 거부한다. 대신 사라진 청춘의 이상과 무너진 인간성을 조망하는 거장의 나안은 예리하고 또한 따뜻하다.
아버지 조수석에 앉아 듣는 7080 음악이 때로는 마냥 좋다. 그러나 그 위에 아버지가 얹어 내시는 ‘그 시절’ 이야기는 조금 지겹다. 그러나 다 큰 딸의 눈치를 보시며 띄엄띄엄 왕년을 곱씹는 아버지의 옆모습은 다시금 좋다. 이렇듯 한 시절의 낮과 밤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매일 교차한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