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지만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 화가로 생을 마친 망명자였다. 샤갈이 태어난 러시아 유대인 마을은 ‘화가’라는 어휘조차 낯선 열악한 환경이었다. 샤갈 특유의 소재들인 소와 닭은 어릴 적 푸주한 외할아버지 댁 풍경이고, 괘종시계는 어머니의 가게에 걸려 있는 물건이고, 바이올린 연주자는 어릴 적 옆집 아저씨의 모습이며, 지붕과 십자가는 러시아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샤갈은 프랑스 모더니즘이 제공한 새로운 표현법에 자신만의 창조물들을 채웠는데,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애착이었기에 환상적이고 몽환적이었다. 가장 국제적인 감각과 앞선 예술 감각이 지배한 파리에서조차 샤갈의 그림은 “낯선 침입자”처럼 충격적이었으며, 당시 가장 영향력이 큰 예술 비평가였던 아폴리네르의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샤갈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절대주의 작가 말레비치와의 미학 논쟁에 밀려 조국을 떠나 영원히 망명자로 살아야 했다. 그런 샤갈에게 벨라는 아름다운 뮤즈 이상이었다. 그녀는 평생의 망명 생활에서 샤갈이 자신의 예술적 원천인 러시아와 유대주의를 이어 주는 끈이자 고향 마을의 화신이었다. 그런 벨라가 갑자기 죽었을 때 샤갈은 생애 처음으로 캔버스들을 벽 쪽으로 돌리고는 붓을 놓는다.

 

샤갈과 벨라(1910년)

 

민음사 편집부 양희정 

출간일 2010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