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이 남자(들), 지독하다

 

 

1952년생인 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에는 어린 오르한 파묵이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그 소파는 여전히 그의 집필실에 놓여 있어서, 그의 인터뷰 사진에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커버만 조금 달라졌을 뿐 오십 년 전 바로 그 소파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순수 박물관』의 주인공 케말. 평생 동안 사랑한 여자 퓌순의 집에서 그녀가 피운 담배의 꽁초 4213개를 가져와 모은다. 모을 뿐인가, 전시한다. 그녀의 입술과 손이 닿았던 것이므로, 그것을 피울 때 그녀의 심리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으므로. 그녀의 귀걸이, 머리핀, 빗, 구두, 손수건, 원피스는 물론이고, 그녀가 마셨던 사이다의 빈 병이나 먹다 버린 아이스크림의 콘까지 하나하나 모아들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오르한 파묵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순수 박물관』도 파묵 자신의 경험이 상당 부분 녹아든 소설이다. 주인공 케말은 오르한 파묵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많다. 특히 이렇게 물건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렇다. 삶의 중요한 시절을 함께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에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다는 파묵(케말)의 말에는 공감하지만 이 정도는 심하다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지독했기에 30년이나 그 사랑에서 헤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평생을 사랑했기에 그토록 처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손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