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미용실 2호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만나면, ‘눈에 불을 켜고’ 또는 ‘내심 기대하며’라는 수식어만 다를 뿐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언제 사랑에 빠질지 지켜본다. 그들은 마치 연애라는 숙명을 타고난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다가도, 흉악한 버스 인질범을 쫓다가도, 파스타를 만들다가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이 결국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야마자키 나오코라의 장편소설 『가발 미용실 2호점』에는 가슴 두근거리는 여러 해프닝을 겪고도 결국 사랑에 빠지지 않는 남녀가 등장한다. 선배의 소개로 ‘가발 미용실 2호점’의 미용사 에리를 알게 된 스물일곱 살 샐러리맨 준노스케. 에리를 향한 준노스케의 생각은 이렇게 흘러간다.

1. 한 번 더 만나면 뭔가가 시작될 듯한 느낌이 든다.
2. 그런 상상은 내 마음에 질투 같은, 조금은 달콤한 통증을 남긴다.
3. 한 달 이상 안 만나니 에리에 대한 마음이 발효되어 간다. 연애 감정이 아니라, 아는 사람에 대한 깊은 정으로.
4. 피곤한 여자와 있는 것보다 집에서 우유를 데우는 게 낫다.
5. 아아, 에리랑 한 번쯤 자 보고 싶었는데. 지금 같아선 꿈속에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에리와 준노스케는 함께 전시회를 보고, 술을 마시고, 벚꽃놀이를 하면서도, 세상의 모든 남녀 주인공들과는 달리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나오코라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과 관계를 말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관계의 단면을 정확히 표현해 낸다. 읽고 나면 문득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나오코라 식 연애 소설이다. 그렇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란 우리 주변 어디에나 널려 있다.

[민음사 편집부 박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