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여, 바다여』 그림 속 인물들이 튀어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면?

 

 

아이리스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에는 주인공 찰스가 혼란스러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월리스 미술관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자주 들렀던 곳이라 한다. 어린 머독은 월리스 미술관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림을 감상했을까? 그림 속 인물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며 즐거운 상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바다여, 바다여』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월리스 미술관에 걸린 초상화의 인물 이름에서 따왔다. 소설에서도 월리스 미술관에 들른 찰스는  테르보르히의 「리지」, 마스의 「진」, 도메니키노의 「리타」, 루벤스의 「로시나」, 그뢰즈의 「클레멘트」를 보고, 자신이 아는 여자들이 모두 여기 있다며 같은 이름의 여자들을 떠올린다. 또한 미술관에 있는 두 그림, 티치아노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와 렘브란트의 「화가의 아들, 타이터스」는 찰스가 그의 첫사랑 하틀리와 그녀의 양아들 타이터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중요한 그림으로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는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를 구해 내어 그녀를 아내로 삼는다. 이에 찰스는 그림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를 보고 자신을 페르세우스와 동일시하면서 다시 만난 첫사랑 하틀리를 불행한 결혼 생활로부터 구해 내겠다는 백일몽을 꾼다. 한편 그는 렘브란트의 「화가의 아들, 타이터스」를 보며 애틋한 감상에 빠지기도 하는데, 렘브란트가 사랑했던 아내 사스키아가 낳은 네 아이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가 타이터스이고, 찰스는 하틀리의 양아들 타이터스를 자신의 아들로 삼아 마치 렘브란트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에게 극진한 애정을 쏟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술 작품과 자신의 소설을 도상학적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머독의 재주는 놀랍기만 하다. 그녀가 사랑했던 월리스 미술관은 영국 런던의 맨체스터 광장에 있는 미술관으로, 특히 로코코 미술 분야에서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다음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런던의 월리스 미술관에서 머독이 서 있던 그 자리, 찰스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아래 그림들을 감상해 보고 싶다. 

티치아노,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렘브란트, 「화가의 아들, 타이터스」

 

[민음사 편집부 박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