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의 눈을 달랜다』 죽은 시계를 차고 그와 함께 떠나는 여행

 

 

뛰어난 시적 재능과 수려한 외모. 대필 작가, 야설 작가 등의 독특한 이력. 대학을 네 군데나 옮겨 다니는가 하면, 1년에 두세 달 이상 꼭 여행을 하고, 한꺼번에 30여 가지의 일을 하는 에너자이저. 이쯤 되면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를 그, 바로 김경주 시인이다.
여행이 삶이자 일상 그 자체인 그에게 여행은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닌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돌아왔을 때의 여진” 즉 시차에 의한 여독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차(時差)를 겪고 나면 시차(視差)가 생김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순간을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시간 속에 산다. 또한 과거를 추억하는 일, 미래를 꿈꾸는 일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일종의 시차를 겪는 현상이다. 거기서 생겨나는 시간의 차이, 그 시차가 인간을 외롭게 만든다. 그런 인간들을 위로하는 노래,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시집은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시인’, ‘현대 시를 이끌어 갈 시인’, ‘2000년대 시단이 낳은 최고의 스타’ 등으로 불리는 김경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자,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이기도 하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시가 죽었다는 시대에 시집으로선 밀리언셀러에 해당하는 1만 7000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경주 시의 매력은 감각에 있다. 방랑자의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의 시는 결코 방 안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살을 익히는 고비사막을 건너는가 하면, 살을 에는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도 한다. 그렇게 직접 감각한 것들은 『패스포트』, 『레인보우 동경』 등의 여행 산문집뿐 아니라 그의 시집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진정한 보헤미안인 그는 죽은 시계를 차고 여행을 한다. “시계를 차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시간에 맞춰서 살게 돼요. 그 속도감을 없애고 싶었어요. 죽은 시계는 문학의 이미지예요. 시계를 아예 차지 않고 가는 것은 예술이 뭔지는 알지만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죽은 시계를 구태여 차고 여행 가는 사람은 끊임없이 환기하고 갈등하며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문단의 괴물’, ‘문단의 이종(異種)’으로 불리는 그에게는 도무지 경계가 없다. 복합문화창작집단 ‘츄리닝바람’ 소장이기도 한 그는 영화, 연극, 음악, 사진, 미술 등 텍스트를 넘어선 다양한 전방위 문화 활동을 펼치며 시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전남 광주가 고향인 그는 2003년 등단 직후 서울로 올라왔다. 군인 출신 강력계 형사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란 그는 각 지역의 사투리가 섞인 독특한 말투 때문에 한때 실어증을 앓기도 하고, 표준어 학원을 다녀 볼까 하는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만약 그가 표준어 학원을 다녔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목소리를 닮은 그의 매력적인 시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언제나 자신의 언어가 가장 낯설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새롭고 낯선 것들을 찾아 달력에 없는 시간, 지도에 없는 공간으로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지독한 여독을 앓은 후, 쓸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당신의 눈을 달래 줄 그만의 노래를.

[민음사 편집부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