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소설이라고 하면 누구나 『돈키호테』를 떠올리겠지만, 그다음으로는 언뜻 떠오르는 작품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스페인 소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꼭 기억해야 할 작가가 있다. 바로 카밀로 호세 셀라이다. 유럽 작품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그는 스페인의 전통과 역사가 살아 있는 작품을 남겨 스페인 소설가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를 단번에 스페인 문단의 중심에 서게 한 데뷔작이자 대표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는 선혈이 난무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떠돌이 무산자인 피카로(惡子)가 가정이나 나라를 떠나서 생존을 건 모험을 하는 피카레스크 소설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지만, 아무리 풍자적인 유머가 살아 있다고 해도 파스쿠알은 300년 전의 돈키호테보다 현실과 더욱 격렬하게, 비참하게 충돌한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한 흉악 범죄자의 수기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연쇄살인범의 기괴한 욕망이나 이상심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린 불우하고 가혹한 삶에 대해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군주제 사회부터 공화정이 자리 잡기까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당시 내전을 치른 스페인 사회에 깊게 깔린 불안하고 황폐한 대중 심리를 생생하게 반영해, 나약한 개인을 단죄하기보다 비정하고 혹독한 사회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이 작품은 결국 저주받은 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한 주인공이 마침내 어머니의 목에 칼을 꽂으며 마무리되는데, 1940년대 스페인의 강도 높은 검열은 이 작품의 출판을 금지했다. 셀라가 평소 존경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손꼽던 당대의 문호 바로하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했을 때 “거절하겠네. 만일 자네가 감옥에 가고 싶다면, 혼자 가게나. 그러기에는 젊지만 말이야. 난 자네의 책에 서문은 쓰지 않겠네.”라고 단칼에 거절당했다는 일화에서도 이 ‘위험한’ 소설이 당시에 얼마나 큰 위협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는 그 잔혹함과 비극성으로 스페인 국민들이 겪은 내전의 상흔을 위로했고, 198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에도 드러나듯 『돈키호테』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페인 소설이 되었다.
[민음사 편집부 윤인영]